불교계 수장격인 한 스님이 ‘(국민이) 광우병 괴담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며 애먼 걱정을 하고 있을 때,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위원회 위원장’ 김희중 주교는 “주인(국민)의 의견을 무시하는 머슴은 쫓겨날 것”이라고 현 정권을 강하게 비판했다. 두 사람 모두 지난 4월 29일 각 교단의 대표로 청와대를 방문해 대통령과 대화를 나눴던 분들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종교지도자의, 동일한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쩜 이렇게 상반될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사실 이런 일들이 벌어진 것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니 새삼 드러낼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천주교는 지난 70∼80년대 민주화에 공헌한 인과로 오늘날 한국사회를 주도하는 지도적 세력으로 급부상했고, 상대적으로 시대인식에 어둡거나 그것을 외면했던 불교는 그 과보로 사회 각 분야에서 주변으로 밀려났으니 그냥 넘길 일은 아니다.
김희중 주교의 말을 더 들어보자. 불교미디어에서 스님의 말이 아닌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하는 연유는 우리 불교계에도 이런 탁월한 시대인식, 상황인식을 가진 지도자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19일 오후 5.18기념성당인 광주 남동성당에서 열린 '5.18 28주년 기념미사'에서 김희중 주교는 이른바 '머슴 추방론'을 제기하며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김 주교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잘못을 예리하게 지적했다.
먼저 오락가락 하고 있는 혁신도시 건설 문제에 대해 수십 년 동안 정치·경제·사회·문화정책은 우리나라 두 세 개 지역에 집중돼, 나머지 지역은 상대적으로 자립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러 이전 정권(노무현 정부) 때 추진한 사업인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다시 바뀐다면 국민이 나라를 믿을 수가 없는 불행한 상황이 되지 않을까, 국민이 나라를 믿지 않는다면 그 나라는 이미 '아사 상태'에 이른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고 비판했다.
김 주교는 광우병 쇠고기와 대운하 문제에 대해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이다. 혹시 주인이 어떤 문제를 오해했다면 주인이 이해할 때까지 기다리고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설명해야 한다. 머슴은 주인(국민)의 뜻과 어긋난 어떠한 일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말아야 하며, 주인의 의견을 무시하는 머슴은 쫓겨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론 불교계에도 이런 지도자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알다시피 법정 스님은 대운하 문제에 대해 길상사 법문을 통해 강력한 비판을 거듭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법정 스님은 세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고, 불교계에서 어떤 직책도 갖지 않은 분이기에, 아무래도 말씀 하나하나가 상징적 영향력에 그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지도자들의 상황인식 수준이 더 더욱 안타까운 것이다.
부처님오신날을 즈음해 발표된 여러 종단의 종정 및 총무원장들의 봉축 메시지에는, 또 얼마 전의 하안거 결제법어 등에는 중생이 겪는 고통에 대한 관심도, 지도자로서의 책임감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일반 언론을 통해서도 보도되는 불교계 지도자의 메시지나 법어에, 김희중 주교의 그것처럼, 정확한 시국인식에다 중생과 함께하는 종교인으로서의 자기소신이 담겼다면 얼마나 신선하고 좋았을까.
사실 나는 그동안 촛불집회에 여러 번 참여했다. 앞으로도 가능한 참여할 생각이다. 미국에서는 애완견에도 먹이지 않는다는 30개월이 넘는 소고기를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시와의 약속을 어길 수 없다는 이유로, 굳이 우리 국민에게 먹여야 하겠다는 현 정권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독선에 촛불 하나라도 거들지 않는다면 자녀와 역사 앞에 너무 부끄러울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집회의 현장으로 이끈 ‘배후’다.
기자가 아닌 시민의 입장으로 참여한 집회 현장에서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줄지어 참석한 천주교 수녀님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또 그분들을 향해 환호하는 시민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런 순간마다 나는 저 자리에 스님들도 계셨다면, 가사장삼을 여법하게 걸친 수십, 수백 명의 스님들이, 그것도 불교교단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스님들이 위의를 갖춰 대열의 선두를 이끌고 있다면 얼마나 장엄했을까 하는 장면을 부지불식간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는 이내 쓴 웃음을 짓고 거두기를 거듭했다. ‘바랄 것을 바라야지’라는 생각(이 생각이 제발 망상이길 바란다)이 곧바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렁이며 타오르는 촛불을 보고 있는 동안, 이념이나 사상의 문제가 아닌 국민의 생명에 관한 문제에도 한국불교는 언제까지나 무관심할 것인지, 20세기에 이어 21세기에도 중생들의 현실적인 고통을 외면할 것인지,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깨달음이 과연 온전한 깨달음일 수 있는지, 지옥중생까지 모두 구제한다는 보살정신은 일주문 안에서만 유효한 것인지 따위의 ‘망상’들이 걷잡을 수 없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광우병이 발생하면 그때 가서 쇠고기 수입을 중단하겠다’며 끝내 국민에게 ‘죽음의 십자가’를 지우려는 ‘장로정권’의 횡포 앞에, 시민의 한 사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거리에서 ‘고시철회! 협상무효!’를 외치며 작은 목청을 더하는 일밖에 다른 것이 없었다.
‘한국불교총본산 조계사와 조계종총무원 청사’의 턱밑에서 연일 열리고 있는 촛불집회는 그날 밤도 처절하게 저물었다. 중생의 함성이 공권력에 의해 무참히 스러져 가는 늦은 시간에도 언제나처럼 조계사에서는 목탁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그 소리는 일체중생이 함께 이고득락으로 가자는 서원의 소리로 들려오지 않았다. 도리어 한국불교의 현주소가 안타깝고 슬퍼 뚜욱 뚝∼ 귓전에 떨어지는 제불보살의 울음(鳴聲)에 다름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