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2009년)는 진화론을 주창한 찰스 다윈(1809∼1882 사진)의 탄생 200주년과 그의 대표 저서인 ‘종의 기원’ 출간 150년을 맞이하는 ‘다윈의 해’이다. 그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다양한 측면에서 찰스 다윈을 재조명하는 행사가 국내외적으로 다채롭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 미국 뉴욕 자연사박물관에서 열린 다윈 탄생 200주년 기념전에는 40만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TV 다큐멘터리와 영화계도 다윈의 생애와 진화론을 조명하는 작업에 나선 가운데 종교계도 ‘자연선택이나 신의 개입이냐’ 문제를 놓고 학술대회를 준비하는 등 세계가 다윈으로 술렁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벌써 관련 서적이 쏟아지고 전시회가 마련되고 있다.

먼저 다윈 관련 출판이 붐을 이루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다윈 관련 서적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나왔지만, 지난해에만도 20권 가까운 다윈·진화론 연구서가 쏟아졌다. 예전에 나온 책들이 주로 ‘종의 기원’ 번역서이거나 진화론을 학문적으로 해석하는 게 주류였다면, 요즘은 새로운 관점으로 보는 게 대다수다. 어린이용과 만화 등 눈높이를 낮춘 책들도 눈에 띈다.

다윈을 가까이 체험해 볼 수 있는 ‘다윈전’도 내년 5월10일까지 세계에서 5번째로 큰 규모로 최근 개관한 경기 과천 국립과천과학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세계 25개국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영국문화원의 세계적인 과학 전시 ‘다윈 나우(Darwin Now)’가 전시 속의 전시로 구성되며, 영국 켄트주 다운에 있는 다윈의 방을 실제로 재현한다. 또 ‘종의 기원’을 비롯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다윈 관련 도서, 유물 등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현존하는 거북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크며 멸종 위기종인 갈라파고스 코끼리거북 박제를 국내에서 유일하게 볼 수도 있고,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 명예연구원인 장순근 박사가 소장한 다윈 저서 30여종과 화석 8종이 전시된다. 또 지난 10월 자원탐사 전문가 권영인 박사가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를 그대로 따라 여행하고자 기획한 ‘장보고호’ 항해 근황도 소개된다. 체험 프로그램으로는 다윈처럼 관찰해 보기, 비글호 승선 체험, 진화론을 만드는 데 증거가 됐던 핀치새 부리를 직접 체험해 보는 ‘핀치새 부리 체험’ 등이 마련됐다.

한국 기독교계는 진화론의 허구성에 밝히겠다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창조론의 관점에서 진화론을 연구한 내용을 종교적인 관점이 개입됐다며 검토하지 않으려 하는 학계의 풍토를 바로잡겠다는 의욕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계는 1950년대 이후의 진화론의 결정타를 준 두 가지 사건, 즉 하나는 1980년의 시카고 회의에서 진화론자들이 모여서 종은 불변한다는 ‘종의 정지’를 결의한 것을 들고 있다. 이는 결국 ‘진화론이 무의미하다’는 중요한 내용인데, 창조과학자들이 그 자료를 파묻고 모르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2000년대 들어와서 돌연변이를 실제로 관측을 했다는 사실이다. 2003~2005년 시기 DNA가 바뀌는 것을 체크했는데, 돌연변이의 정체가 완전히 밝혀졌고 이를 분석해 들어가면, 보다 확실하고 새로운 정보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기독교계는 진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내용을 과학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많은 학자들을 동원 이를 뒷받침할 방침이다. 또 진화론으로 말미암아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지 못하도록 하는 캠페인, 중고등학생 청년들에게 진화론의 허구를 증명하고 인식시키는 강의 프로그램과 강사 육성 계획도 갖고 있으며, 생물학과 학생들과 생물교사들에게 책을 보급하고 진화론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려 차세대가 바른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대중적으로도 많은 이들이 이 사실을 알 수 있도록 전단지 등을 통해 홍보하는 활동도 계속해 나갈 방침이다.

문제는 불교계다. 전 세계가, 또 한국의 학계와 기독교계가 다윈 열풍에 휩싸여 있지만, 한국 불교계는 다윈 무풍지대로 남아 있다. 잠잠하다 못해 적막하다. 올해가 다윈 탄생 200년이 되는 해인지, ‘종의 이론’을 출간한지 150년이 되는 해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도, 정보도 없어 보인다.

진화론을 불교적 관점에서 살펴보려는 불교학계의 시도는 아직은 눈에 띄지 않는다. 과학과 종교가 날이 갈수록 불가분의 관계로 되어가는 현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과학의 발전이 불교의 교리를 입증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며 자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상하리만큼 한국불교계는 다윈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다윈이 세계 과학사에, 세계사에, 또 세계 종교사에 미친 엄청난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이에 무관심할 수 있는 한국불교계는 ‘대단한’ 용기를 가진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의 10대 명호 중에 세간해(世間解)가 있다. 세간의 움직임과 무관한 깨달음이나 가르침이 존재할리도 없거니와, 그것을 모르는 성불은 있을 수 없다는 상징적 의미가 세간해에 담겨있다고 할 것이다. 다윈의 학문적, 과학적 업적을 불교적으로 해석하고, 발전시키는 시도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09년 다윈의 해를 맞아 한국의 불교계가 다윈과 진화론에 대해 최소한의 관심이라도 기울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