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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타건 위빳사나건 고비 잘 넘겨야”

빤딧짜스님 | ashinpandicca@hanmail.com | 2015-06-18 (목) 10:02

‘삼마사나 냐나’라고 하는 세 번째 단계인 무상·고·무아를 아는 지혜가 일어나면 생겨나는 모든 것이 끊임없이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원인과 결과를 아는 단계에서 다시 한 단계 올라선 이 단계에서는 모든 것이 매우 빠르게 변화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뭐든지 보면 변하거나 사라지고, 더위, 추위, 딱딱함, 부드러움, 아픔 등의 변화가 매우 다양하고 빠르며, 아픈 것도 여러 가지이고 아픈 정도가 몹시 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 세 번째 단계가 되면 관찰하는 대상들이 쏟아지듯이 많아져서 관찰이 힘들다고 느낍니다.

 

위빳사나 수행의 첫 단계 때에는 수행자가 대상을 잡고 있으면서 관찰하는 속도가 매우 느립니다. 하나 관찰하고 한참 있다가 다시 하나 관찰하는 식으로 느리게 진행됩니다. 그런데 세 번째 지혜가 되면 관찰하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지고 빠른 만큼 대상들도 많이 보이니까 그 대상이 쏟아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내가 관찰하겠다는 마음으로 하나를 관찰하는데 한꺼번에 넷, 다섯, 여섯……, 이렇게 다양한 대상들이 쉴 새 없이 몰려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제대로 관찰하기도 전에, 미처 다 알아차리기도 전에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힘이 들고, 계속 사라지기만 하니 모든 것이 무상하게 여겨지게 됩니다.

몸의 여기가 조금 불편하여 여기를 보면 보는 순간 그것이 없어지고, 또 다른 데가 이상이 있어 그곳을 보면 그 즉시 없어지고, 그래서 ‘아, 진짜 무상하구나. 모든 것이 보면 변하는구나. 모든 것이 가만히 있는 게 하나도 없구나.’ 그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리고 무상한 게 고통스럽게 느껴지고 몸과 마음도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수행 도중에 몸도 마음도 몹시 괴로워서 수행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생깁니다. 그렇지만 아직 이 단계까지는 아무래도 물질 쪽을 많이 봅니다. 물론 처음 1단계 때의 물질보다는 많이 미세해진 물질이고, 보면 다 해체되는 느낌이 듭니다. 그 세 번째 단계까지는 몸이 완전히 사라지는 느낌은 별로 없습니다. 부분적으로는 사라진 느낌이어서 손발, 머리, 다리 등 몸의 어떤 부분은 없는 것 같고 어떤 부분은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들인데 그 상태에서 집중이 더 강해지면 점점 대상이 사라져 감을 느낍니다.

 

뭔가가 있는 것 같아 관찰하면 그것들이 해체되면서 흩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다리를 봐도 처음에는 분명하게 느껴지던 것이 계속 관찰하다 보면 차츰 아무것도 없는 느낌으로 변합니다. 그런 식으로 내가 관찰하는 부분이 다 흩어지고 해체가 되면서 처음에 알고 있던 모양과 크기가 없어지고 나중에는 지·수·화·풍의 느낌들만 남습니다. 따뜻함이나 차가움, 가볍고 무거움 등의 느낌만 남고 손으로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물질적 느낌은 모두 사라진다면 세 번째 단계의 수행이 잘 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면 세 번째 단계에서 무조건 다 아파야 되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다른데 원래 마음이 아주 평온한 사람들이나 별로 화가 나지 않는 사람들은 아프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많지는 않습니다. 또 사마타 집중수행을 많이 했던 사람들도 별로 아픈 것을 모르고 바로 바로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 번째 단계에서 엄청난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오만 가지가 통째로 다 나타나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안 아픈 데가 없습니다. 여기 아프다가 없어지고, 저기 아프다가 없어지는 그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집니다. 너무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일어나니 무엇부터 관찰해야 하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게 됩니다.

 

이걸 관찰하면 또 다른 무엇이 생기고, 그것을 보다 보면 또 다른 것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습니다. 뭔가 괴로운 것이 되게 많고, 아픈 곳도 엄청 많고, 병이 나는 곳도 아주 많습니다. 딱딱한 것을 보면 딱딱한 것이 없어지고, 몸이 뜨거웠다가 그것을 보면 다시 뜨거운 것이 없어지고, 이런 식으로 보면 없어지는데 처음 그 단계를 시작할 때는 오래가기도 합니다. 처음 보면 오래가는데 한 번 제대로 보면서 변하면 ‘아, 진짜 무상하다.’ 이런 마음이 확고하게 생깁니다.

 

이 단계에서 무상을 한 번 보면 머리로는 무상을 천 번 만 번 그려 보게 됩니다. 세 번째 지혜는 그런 것입니다. 무상·고·무아를 수행의 체험으로 아는 사실이 한 번이라면 이것을 계속 반복해서 숙지하는 것은 수없이 반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보다 생각이 많아집니다. 그런 식으로 하다 보니 모든 것이 무상이다, 고통스럽다, 무아이다 이런 마음만 꽉 차게 됩니다. ‘아, 진짜 고통스럽다.’ 하는데 이 단계에서의 고(苦)는 사실 ‘고고’입니다. 정말 아프고, 너무나 괴롭고, 견디기 어려울 만큼 힘듭니다.

 

그때 수행자가 그 고비를 넘어가지 못하면 수행에서 몹시 어려워집니다. 그 고비를 잘 넘겨야 합니다. 그 고비를 못 넘기는 사람은 그 고비가 무섭고 두려워서 다음에 수행하면 진땀부터 납니다. 그 힘든 고비를 넘어서고 나면 ‘아, 너무도 행복하다.’ 하면서 어떤 사람은 자신이 깨달은 줄로 착각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 힘든 것을 넘어가서 행복한 것이지 자신이 깨달은 법이 대단해서가 아닙니다. 너무 고통스러웠던 것이 없어지니까 행복한 것이지요. 처음에 아프다고 울다가 이번에는 너무나 행복하다면서 웁니다. 특히 여자들이 눈물을 많이 흘리는 경향이 있지만 남자들도 눈물이 나게끔 되어 있습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빛 같은 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몸이 날아갈 듯 가볍고 사띠가 아주 좋아집니다. 그때부터 놓치는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자신이 깨달았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기가 태어나서 처음 경험해 보는 경지라서 대단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어린 아기가 자기 아버지를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학교로 따지면 지금 막 유치원 어린이정도랄까, 아직 초등학교도 안 간 상태입니다. 그 정도 단계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사실은 대단한 것입니다. 그 때부터는 수행에 어려움이 사라지고 흔들림도 없어집니다.

그 세 번째 고비를 넘으면 한 시간 앉아도 괜찮고, 두 시간 앉아도 괜찮고 별로 몸에 대한 고통이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앉아서 집중만 되면 이 몸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마타건 위빳사나건 그 세 번째 단계는 공통입니다.

 

화두 수행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날 것입니다. 화두수행 중에도 어떤 때는 너무 힘들다가 그것만 넘어가면 너무 행복해서 울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깨달음이 아닙니다. 위빳사나 수행을 하는 사람은 세 번째 단계에서 네 번째로 갈 때에 계속 물질과 정신을 끊임없이 관찰하기 때문에 무상·고·무아를 반복적으로 보게 됩니다. 사마타로 가는 사람은 지도자가 없으면 거기서 멈추게 됩니다. 백 명 중에 백 명이 멈춰 버리고 죽을 때까지 그 행복했던 상태를 그리워하면서 살게 됩니다. ‘아, 그때 좋았었는데. 아, 그때 내가 대단했었는데…….’ 하면서 현재 자신의 수행이 제자리에 멈춰 있다고 걱정하고, 지난날의 수행에 대해 스스로 백 점 만점의 점수를 주면서 그때를 그리워합니다. 거기서 멈춘 사람은 어떻게 하면 예전처럼 될까를 고민하며 제대로 수행을 하지 못하니 더 이상 수행의 진도가 나아가질 않습니다. 그래서 사마타건 위빳사나이건 그 고비를 잘 넘어가야 합니다.
 
세 번째 지혜의 특징은 고찰하는 것입니다. 이때의 고찰은 생각으로 살피는 것과 비슷합니다. 지혜가 있긴 있지만 꿰뚫어 보는 지혜와 생각하는 지혜가 섞여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모든 것을 무상·고·무아로 봅니다. ‘내가 진짜 무상하네, 영원하지 않네, 계속 변화하네…….’ 이런 생각이 계속 됩니다. 숙지하는 마음이 많은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가다 보면 고통이 올라옵니다. 그 고통을 다시 열심히 관찰하게 되면 수행이 좋아져서 4단계로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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