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학종
2021-11-05 (금) 08:53목매는 순간 열반 이룬 씨하 대장군의 조카 ‘씨하’
대각을 성취 후 4년째, 부처님이 라자가하의 웰루와나(죽림정사)에 머물 때였다. 화려한 저택과 동산이 즐비해 부유하고 행복한 삶을 누려왔던 왓지 연맹의 수도 웨살리(Vesāli)에 돌연 재앙이 찾아왔다.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더니, 파종한 씨앗들은 싹도 틔워보지 못한 채 말라죽었고 나무도 열매를 맺지 못했다. 굶주림에 지친 사람들은 구걸할 기력조차 잃어버렸고, 역병이 창궐해 썩어가는 시체들이 거리를 메웠다. 사람들은 악취에 시달리며 갑자기 찾아온 병마의 공포에 떨었다. 대중의 공의를 중시하던 웨살리의 릿차위 족 사람들은 공회당에 모여 대대적인 회의를 열었다. 브라만의 전통에 따라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혜성처럼 나타나 신성한 가르침으로 마가다 국 등을 휩쓸고 있는 사끼야 족 출신의 젊은 성자 고따마 부처님을 모시기로 했다.
마가다 국이 왓지동맹과 견제 관계에 있던 터라 부처님은 빔비사라 왕의 양해를 얻고 나서야 웨살리로 향했다. 놀랍게도 부처님께서 막 왓지 연맹의 땅에 발을 딛는 순간, 천둥 번개가 치더니 폭우가 사흘 동안 쏟아져 내렸다. 먼지가 풀풀 날리던 왓지 국의 대지에 파란 싹들이 다시 돋아나기 시작했다. 웨살리의 성문에 도착한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바리때를 건네주며 왓지 연맹의 왕자들과 함께 깨끗한 물을 담아 성 주변은 물론 거리마다 뿌리며 라따나(Ratana, 보배)의 게송을 외우도록 했다.
땅에 있는 것이나 하늘에 있는 것이나
모든 존재들은 다 행복하라.
그리고 내가 하는 이 말을 잘 새겨들어라.
모든 존재들이여 귀를 기울이라.
밤낮으로 그대들에게 제물을 올리는 인간들에게
자애를 베풀어 그들을 괴로움으로부터 성심껏 보호하라.
어떤 종류의 보배라 할지라도
이 세상 것이든 천상의 것이든
따타가따(Tathāgata,여래)와 견줄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소중한 보배는 부처님께 있는 최고의 보배이다.
이런 부처님의 진리에 의해 모든 존재들에게 평안이 있기를!
사끼야 족의 성자는 선정삼매를 통하여
욕망의 소멸을 깨달았고
죽음이 없는 온전한 평화를 깨달았다.
이것과 견줄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소중한 보배는 가르침 안에 있다.
이런 부처님의 진리에 의해 모든 존재들에게 평안이 있기를!
아난다와 5백 비구, 왓지 연맹의 왕자들과 대신들이 라따나 게송을 읊으며 웨살리의 거리를 돌자 시민들도 줄지어 그 뒤를 따랐다. 행렬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라따나 게송을 염송하는 소리가 웨살리 시 전체에 가득했다. 이렇게 칠 일 동안을 계속하자 신이하게도 질병으로 곧 죽는 사람이 더는 발생하지 않았다. 또한 골목골목을 메웠던 악취와 질병의 기운도 씻은 듯 가셨다.
부처님의 신통과 감화에 감복한 릿차위 족 사람들은 은혜에 보답하는 뜻으로 웨살리 근교의 큰 숲에 이층 강당 꾸따가라살라((Kūtāgārasālā, 중각강당)를 건립해 부처님의 상가에 기증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이 보여준 위신력과 탁월한 설법에 감동해 다투어 제자가 되었다.
웨살리는 니간타 나따뿟따(Nigathanataputta)의 본향인 터라 수많은 왕족과 백성들이 나체 수행자 집단의 교도들이었다. 그러나 가뭄과 역병을 해결한 사건을 계기로 웨살리를 비롯한 왓지 연맹의 땅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수많은 니간타 나따뿟따의 교도들도 다투어 붓다의 가르침과 상가에 귀의하게 되었다. 그들 중 대표적인 사람이 웨살리의 총사령관 씨하(Sīhā) 대장군이었다.
붓다가 웨살리의 큰 숲에 있는 중각강당에 머무르던 때의 어느 날이었다. 수많은 릿차위 족 사람들이 한 집회소에 모여 앉아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처님을 칭송하고, 그분의 가르침과 상가를 한목소리로 칭송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는 왓지 연맹의 실력자 씨하 대장군도 앉아 있었다. 씨하 대장군은 니간타 나따뿟따의 두 번에 걸친 만류에도 부처님의 법석을 찾아온 것이었다. 최상의 예를 올린 씨하 대장군이 부처님께 물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사문 고따마는 업 지음 없음을 말하는 자라서 업 지음 없음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고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런 소문은 사실입니까? 세존을 거짓으로 헐뜯지 않고 세존께서 설하신 것을 반복한 것입니까? 저는 세존을 비방하고 싶지 않습니다.”
“씨하여, 한 가지 이유가 있으니, 그 이유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사문 고따마는 업 지음 없음을 말하는 자라서 업 지음 없음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씨하여, 같은 이유로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사람이 또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사문 고따마는 단멸을 말하는 자(단멸론자)라서 단멸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 사문 고따마는 혐오를 느끼는 자라서 혐오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 폐지론자라서 폐지하기 위하여 법을 설하고 제자들을 인도한다, 고행자라서 고행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 모태에 들지 않는 자라서 모태에 들지 않게 하기 위해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 편안한 자라서 안식을 위해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부처님은 자신의 말에 깊이 집중하고 있는 씨하 대장군을 잠시 응시하더니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씨하여, 어떤 이유가 있어,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사문 고따마는 업 지음 없음을 말하는 자라서 업 지음 없음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씨하여, 나는 업 지음 없음을 가르칩니다. 나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는 자에게 여러 가지 나쁜 업을 짓지 말 것을 가르칩니다. 씨하여, 이것이 그 이유이니,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사문 고따마는 업 지음 없음을 말하는 자라서 업 지음 없음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시하여, 마찬가지로 나는 몸으로 좋은 행위를 짓고 말로 좋은 행위를 짓고 마음으로 좋은 행위를 짓는 자에게 여러 가지 선법들을 지을 것을 가르칩니다. 씨하여 나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단멸을 가르칩니다. 씨하여, 나는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나쁜 행위를 혐오하고 여러 가지 불선법들을 혐오합니다. 씨하여, 나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폐지하기 위해서 법을 설합니다. 또한 나는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나쁜 행위에 대해서 고행할 것을 말합니다. 고행을 통해서 불선법들이 제거되고 그 뿌리가 잘리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되고 멸절되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된 자를 나는 고행자라고 말합니다. 씨하여, 내생에 모태에 들어 다시 존재[再有]를 받아 태어남이 제거되고 그 뿌리가 잘리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되고 멸절되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된 자를 나는 모태에 들지 않는 자라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씨하여, 나는 편안한 자여서 최고의 편안함으로 안식을 위해 법을 설하고 이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합니다. 씨하여. 바로 이런 것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사문 고따마는 업 지음을 가르치고, 단멸의 법을 설하고 혐오의 법을 설하고, 폐지론자라고 말하고, 고행의 법을 설하고, 모태에 들지 않기 위한 법을 설하고, 안식을 위해 법을 설하는 자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부처님의 세간의 소문에 대한 답변을 듣고 씨하 대장군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세존이시여, 경이롭습니다.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 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재가 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씨하 장군의 청을 조용히 만류했다.
“대장군이여, 그대처럼 명망 있는 사람은 심사숙고하여 행동해야 합니다.”
예상치 않은 부처님의 충고에 씨하 장군은 놀랐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깃발을 들고 시내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개종 사실을 선전했을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오히려 자신의 개종을 말리고 있지 않은가. 부처님의 만류는 그에게서 부처님에 대한 더 신뢰를 더 크게 만들었다. 시하 장군은 더욱 깊이 머리 숙이며 맹세했다.
“세존이시여, 오늘부터 저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에게만 공양을 올리겠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씨하 장군의 그 다짐마저 만류했다.
“그 말씀은 거두십시오. 그대의 가문은 오랫동안 니간타 나따뿟따와 그 추종자들에게 공양을 올릴 준비가 되어 있는 우물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찾아오면 그들에게도 평등하게 공양해야 합니다.”
부처님은 씨하 대장군에게 시주(施主)의 다섯 가지 공덕에 대해 설법했다.
“시주에는 다섯 가지 공덕이 있습니다. 첫째 명예가 널리 퍼지고, 둘째 누구를 만나도 두렵지 않으며, 셋째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고, 넷째 기쁨을 누리며, 다섯째 죽어서는 천상에 태어납니다.”
부처님은 다시 게송으로 시주의 공덕을 강조했다.
베풂은 중생을 위한 복의 그릇이요
참된 진리에 이르는 길이니
누구라도 보시의 공덕을 생각하거든
기쁘고 즐거운 마음을 내라.
베풂은 널리 공평하게 하 돼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아야만
베푸는 마음속에서
구제받는 인연을 만나리라.
선과 악은 늘 제 과보를 받는 법
과보는 사라져 없어지지 않는다.
그 사람이 행한 바를 알려거든
지금 받는 과보로서 알 수 있나니
선행에는 선의 과보가
악행에는 악의 과보가 따르는 법
씨앗을 뿌려 그 열매를 거두듯이
선악의 결과도 그 자신이 거두리라.
즐거운 마음으로 널리 베풀면
뭇사람의 사랑과 칭찬이 따른다.
어디를 가든 두려울 것이 없고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는다.
지혜로운 사람의 베풂은
온갖 나쁜 생각을 멀리 떨쳐 버리고
태어나는 곳곳마다 좋은 곳이리니
모든 하늘이 칭찬할 것이다.
그러므로 진실한 베풂을 하려거든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대하고
옳다 그르다 시비하는 마음을
결코 일으키지 말아야 하리.
부처님은 씨하 대장군의 세 번에 걸친 귀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가르침을 받아들일 마음이 갖춰진 것을 꿰뚫어 본 후 순차적인 가르침을 설했다. 먼저 보시의 가르침, 계의 가르침, 천상세계에 대한 가르침을 설하고 이어 감각적 욕망들의 위험과 타락과 오염원, 출리에 대한 공덕을 자세하게 일러주었다. 붓다는 마침내 씨하 대장군의 마음이 준비가 되었고, 부드러워져 마음의 장애가 없어지고 마음이 고무되고 마음에 깨끗한 믿음이 생겼음을 확인한 후, 직접 깨달아 성취한 괴로움[苦]과 괴로움의 일어남[集]과 소멸[滅]과 그것을 끊어내는 길[道]에 대한 가르침을 설했다. 그러자 마치 얼룩이 없는 깨끗한 천이 바르게 잘 염색되는 것처럼,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법은 그 무엇이든 그것은 모두 멸하기 마련인 법[集法卽滅法]’이라는 티 없고 때가 없는 법의 눈[法眼]이 씨하 대장군에게 생겼다.
부처님이 씨하 대장군에게 설법을 하는 법석에는 씨하 대장군의 여동생의 딸, 씨하(Sīhā)도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영광스럽게도 외삼촌의 이름을 따라 ‘씨하’라는 이름을 얻었다. 성년이 된 후 삼촌을 따라 부처님의 법석에 참석하곤 했던 그녀는 삼촌과 같이 점차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확신을 얻어 재가의 신자[우바이]가 되었다. 그러고 나서 점차 세속적 욕망에 대한 염오의 마음이 일어났고, 그 마음이 더욱 강렬해지자 마침내 부모님의 허락을 얻어 부처님의 상가에 출가해 비구니가 되었다.
출가를 한 후 씨하 비구니는 통찰 수행에 매진했으나, 여섯 가지 감각기관에 비치는 여러 대상을 향한 욕망에 이끌리는 마음을 제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무려 칠 년 동안이나 잘못된 사유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 시달리면서 정신적 만족을 얻지 못했던 그녀에게 늘어나는 것은 괴로움과 번뇌에 휩싸이는 시간이었다.
‘수행에 아무런 진전이 없다. 아무래도 나는 수행자의 자격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수행자의 삶을 살 수 없다면, 비속한 세속적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게 될 것이라면 백 번 천 번 이 숲속에서 목을 매어 죽는 것이 차라리 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악한 삶을 더 유지해서 뭐 하겠는가? 차라리 목을 매고 죽으리라.’
씨하 비구니는 끝내 극단적인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속세로 되돌아가볼까 하는 생각도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출가자가 계율을 포기한다는 것은 패배이며, 특히 수행자에게는 일종의 죽음과 같은 것이었다. 특히 출가수행자가 계율을 버리고 다시 속세의 삶을 산다는 것은 저열한 곳에 태어나는 요인이기도 했다.
비장하지만 슬픈 표정의 씨하는 인적 없는 조용한 숲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한 나무 아래에 선 씨하는 잠시 숨을 고른 후 밧줄을 나뭇가지에 걸었다. 그리고는 줄을 자신의 목으로 가져갔다. 이 모든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씨하는 한 찰나도 놓치지 않고 주시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밧줄을 목에 거는 과정에서 시시각각 일어나고 사라지는 복잡한 마음 상태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놓치지 않고 살폈다. 생사가 갈리는 찰나에서 그녀의 몸과 마음은 극도로 집중되었고, 이 놀라운 집중력에 기반한 통찰의 힘이 고압에 감전되듯 솟구쳤다. 지금까지 익히고 실행해온, 그러나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통찰수행에 전적으로 마음을 기울인 것이었다.
이윽고 밧줄의 올가미가 목에 막 걸리는 찰나, 씨하 비구니에게 궁극적인 앎이 성숙해졌다. 그녀는 그 즉시로 더욱 강력해진 통찰의 힘으로 일거에 분석적인 앎을 얻었다. 더불어 그토록 간절히 이루고자 했던 거룩한 경지를 성취했다. 거룩한 경지, 아라한과를 성취하는 순간, 그녀의 목에 걸렸던 밧줄의 올가미가 저절로 풀려 발밑으로 떨어졌다.
‘아, 이 얼마나 간절하게 기다려온 순간이었던가!’
거룩한 경지가 확립되는 순간 씨하 장로니는 터지듯 감흥 어린 시구를 읊었다.
이치에 맞지 않게 정신활동을 기울여
감각적 쾌락의 욕망과 탐욕에 괴로워했고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고
예전에 나는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오염에 사로잡혔으니
아름다운 인상을 따르고
탐욕의 마음에 종속되어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했다.
여위고 창백하고 추하게
칠 년 동안을 헤매었다.
밤이나 낮이나 심히 괴로웠으니,
나는 결코 행복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밧줄을 들고
나는 숲속으로 들어갔다.
비참하게 사느니보다
차라리 나는 목매는 것이 낫겠다.
단단히 밧줄을 엮어서
나뭇가지에 묶고
목에 올가미를 걸었는데,
그때 나의 마음은 해탈되었다.
-전재성 옮김 <테리가타-장로니게경>에서 인용
물론 씨하의 이런 극적인 열반의 성취는 한 두 생에 쌓은 공덕으로는 이뤄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고따마 부처님이 출현하기 이전의 오랜 전생부터 여러 부처님들 아래서 덕성을 닦았고 여기저기 생에서 해탈을 위해 착하고 건전한 공덕을 쌓았다. 이 공덕의 힘으로 그녀는 고따마 부처님께서 태어날 무렵, 웨살리 유명한 실력자였던 시엣 씨하 대장군 여형제의 딸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