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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동

미디어붓다 | mediabuddha@hanmail.net | 2019-06-18 (화) 10:53

마하연터와 연화대
 

만폭동 (萬瀑洞) 정선 그림
 
 
백운동은 마하연 터로 부터 만회암 터를 거쳐 백운대에 이르는 산악 경치와 기암준봉을 이룬 내금강의 전망경치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명승지이다. 백운동 일대는 험준한 봉우리들이 이리 불쑥 저리 불쑥 마주 서고 수림이 우거져 그 자체의 풍경도 좋지만 벼랑길을 힘겹게 오르면 아름다운 장관을 펼치곤 하여 어려운 등산길을 이겨낸 쾌감을 맛보게 하는 전망대로서 더욱 좋다.
 

일제강점기 때 발행한 엽서에 소개된 마하연.  53칸의 방이 있었다는 본채.
 
 
만폭팔담의 미자막 못인 화룡담에서 숲속으로 뻗어간 길을 따라 한참 가로라면 골 안이 확 트이면서 넓은 공지가 나지는데 여기에 마하연중건비와 마하연에 토지를 기증하였다는 사실을 기록해 놓은 “공덕비”가 있다. 높이 846m의 평평한 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 마하연 터는 전망경치가 좋은 곳일 뿐 아니라 여기에는 묘길상을 거쳐 비로봉과 외금강 안무재령(내무재령)으로 가는 길과 설옥동, 영추봉을 거쳐 수미암 터로 가는 길이 있어 금강산 등산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마하연(“대승”이라는 뜻)은 원래 사방 8자 짜리 방이 무려 53칸이나 되는 큰 절이었다. 661년에 처음 세워진 이후 여러 차례 중소 개건하여 왔는데 지난 6.25때 까지 있었던 건물은 1831년에 고쳐 지은 것이었다.
 

만폭동 진주담
 
 
지난날 마하연은 금강산의 한복판에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내외 금강을 유람하는 등산객의 숙소로도 사용하였다. 이 절은 살던 대사와 김삿갓(김병연)이 시 짓기를 하여 금강산의 절경을 찬미하였다는 “백운동마하연”전설도 이미 19세기에 창조된 것이다.
 
마하연 터에서 왼쪽으로 갈라진 작은 개울을 따라 올라가면 마하연 부속 건물인 칠성각이 옛 모습대로 보존되어 있다. 칠성각은 앞면 3칸, 옆면 1칸의 작고 아담한 건물로서 비바람을 막기 위해 배집 지붕을 건물 높이의 3분의 2정도로 내려오게 한 것이 특이하다.
 
칠성각에서 작은 개울을 건너 얼마 쯤 가면 만회암 터에 이르게 된다. 만회암 터에는 영추봉으로 오르는 길과 백운대로 가는 길이 있는데, 왼쪽으로 비탈길을 따라 오르면 연화대(만회대)가 있다.
 

마하연 (摩訶衍) 김홍도 그림
 
 
연화대는 작은 봉우리 위에 설옥동 개울을 향해 앉은 아담한 8각 정자이다. 주위에는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 등이 키 높이 자라 아름다운 수림이 우거졌다. 연화대 옆에는 방아 찧는 돌확처럼 구멍이 패어진 큰 돌이 있는데 거기에 “연화대”라는 글이 새겨져있다.
 
설옥동 골짜기가 환히 내려다보이며 혈망봉, 망군대, 초대봉, 칠성 바위와 만폭동 일대의 산봉우리들이 첩첩히 바라보이는 연화대는 예로부터 하나의 전망대로서 이름난 곳이다.
 
연화대 일대는 여러 가지 꽃나무들이 자라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금강산에만 있는 특수식물인 은방울을 방불케하는 금강초롱꽃은 진한 남색과 청자색의 독특한 색깔, 그 초롱같은 묘한 생김새로 하여 새로운 정서를 불러일으킨다.(계속)
 

금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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