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두 엽편葉片소설 ‘철수와 영희’, 그 열두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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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이쯤에서 다시 철수 오빠의 옛날이야기로 돌아가 보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 같다. 여러 차례 말했지만 우리 철수 오빠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다는 대학교 법대를 졸업했다. 오빠 말로는 고등학교에 다니던 1960년에 이미 ‘3.15부정선거’ 규탄 시위를 주도했다고 하고, 오빠와 가까운 친구들은 그 말을 믿는 눈치이지만 동생인 나는 솔직히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오빠 친구들이 그 이야기를 꺼낼 때에는 맞장구를 치면서 이야기를 더 과장해서, “그때 대단했어요. 철수오빠가 김주열 열사를 부축하면서 교복에 피가 묻은 채 경찰을 피해 집으로 들어오셨기에, 제가 부모님 몰래 그 교복을 재빠르게 빨아드린 적도 있는 걸요. 그런데 여러 오빠들이 아시다시피 철수 오빠는 자신의 공을 자랑하거나 그런 스타일이 아니라 이 일을 자기만 알고 밖으로 떠들지 않았기 때문에 4.19 공훈功勳자 명단에 빠진 것 아닙니까? 요즘 와서 오빠가 왜 그 시절 이야기를 공개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정계에 진출하려는 그 꿈 때문인가요? ……”라며 오빠를 거들어드린다. 아마도 오빠가 건설업과 아무 인연도 없던 내게 수련원 공사를 맡겨서 돈을 벌게 해줄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이런 식으로 오빠의 ‘과거사 부풀리기와 왜곡歪曲’을 적극 도와드린 일에 대한 보답의 마음이 있을 것이다.

오빠가 그 최고 대학교 법대에 들어갔을 때 그곳에 척사회拓士會라고 하는 서클이 있었고 철수 오빠도 그곳의 중요한 구성원이 되어 다양한 활동을 한 것으로 안다. 이 모임 이름은 구한말의 척사파斥邪派를 연상시키는데, 그 멤버들의 말로는 ‘선비 정신을 개척하여 나라를 구하겠다’는 뜻에서 이 이름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름 덕분인지 이 척사회 출신들 중에는 법조계 고위직 ‧ 언론계 중진 ‧ 여야與野 거물 정치인 등등 쟁쟁한 인물이 많이 나왔다.

아마 오빠가 요즈음 세상 분위기를 불만스럽게 여기는 이유 중에는, ‘그때 나보다 못하던 놈들이 다 출세했는데, 나만 국회의원 자리 하나 못하고 말았다. 세상이 잘못 된 것 아니냐? 아니면 세상을 다 흔들 기세를 타고 났지만 결국 실패하여 울부짖었던 초패왕楚霸王 항우項羽처럼 나도 하늘이 도와주지 않은 것 아니냐? 이런 하늘을 믿어야 하느냐? ……’ 뭐 이런 복합적인 심사가 숨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척사회拓士會 활동을 열심히 했던 오빠의 다른 친구들은 이름 그대로 ‘선비 정신을 개척하는 척사拓士’에 뜻을 두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우리 철수 오빠는 그보다는 ‘윷을 던져서 어느 쪽에 줄을 설까 하는 윷놀이 점을 치는 척사擲柶’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요리 조리’ 눈치를 살피느라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였을 것이고, 그래서 양김兩金씨를 비롯해 무엇보다도 의리義理와 신의信義를 중요하게 여기던 당시 정계 지도자들의 낙점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철수 오빠의 ‘척사擲柶’ 버릇은 그 뒤로 나름 효과를 내서 지금 최고 책임자 자리를 맡아서 모든 것을 오로지하게 된 재단법인을 장악하는 과정에서도 그 ‘윷놀이’ 점괘가 큰 역할을 하였으니 오빠가 척사회拓士會에 가입하여 ‘척사擲柶[윷놀이]’ 솜씨를 갖추게 된 것은 오빠의 일생 중에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던 셈이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오빠의 이 ‘윷놀이[擲柶] 점치기’에서 신통력이 사라진 것 같아 걱정이다. 남들이 들으면 웃겠지만 철수 오빠가 재단을 장악한 뒤에는 그와 관련된 언론기관을 완전히 손아귀에 넣고 그것을 배경으로 다시 한 번 정계 진출의 꿈을 이루어 70대 중반에 국무총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꿈’을 꾸고 있었다. 오빠는 ‘고목나무에 새 순이 돋는다’는 옛말을 자기 입맛에 맞추어 그것이 순전히 당신을 위해서 오래 전에 만들어진 말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물 건너간 것 같으니 이를 어떻게 하느냐 말이다.

이제까지는 순탄하게 굴러왔었던 재단, 오빠가 아무리 전횡을 해도 다 모른 척 해주고 그랬는데 그것마저 장애물이 등장하고 있다. 그 범인은 민주화라는 못된 놈이다. 이놈의 망령이 이 나라에 골고루 퍼져나간 뒤로 곳곳에서 ‘민주’를 떠들어대고 있어도, 오빠가 자리 잡은 그 재단만은 안전할 줄로 여기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곳에까지 그 못된 균菌이 침범하여 오빠의 철옹성에 금이 가게 하고 있으니 이제 ‘70대의 중량감 있는 금(錦 ‧ 禽 ‧ 金)철수 국무총리’가 깜짝 등장해서 국민들을 웃기게 해주는 멋진 코미디 공연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우리 국민들에게 모처럼 웃음을 선사해줄 수 없게 하는 못된 연놈들은 동빙고동에 있었다는 옛날 보안사 지하실에 끌어다 ‘국민 즐거움 방해죄’로 엄하게 다스려야 당연하지만, 이 ‘민주화’라는 놈 때문에 그럴 수도 없으니 오빠 속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거듭 말하지만, 철수 오빠처럼 살공성사殺公成私할 수 있는 인물을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분의 길을 가로막는 연놈들은 정말 인간 말종末種이 아닌가 말이다.

오빠 같은 분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야 가족을 도와주고, 동생인 내가 공사를 엉터리로 해서 돈을 벌고, 엉터리로 했으니 보수공사를 두 번 세 번이라도 거듭하게 하여 경기를 살려내고 일자리 창출도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뿐인가. 공사불이公私不二의 정신을 살려 오빠의 아련한 추억 여행을 위해 ‘수련원 점검’의 명분으로 프랑스 출장을 자주 하게 되니 관광산업 진흥에도 기여할 것이고 그 덕분에 오빠와 올케 언니 사이가 더욱 사랑이 깊어지니 이게 바로 나라 사랑의 시작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이 나쁜 연놈들이 우리 철수 오빠의 이 가족 사랑과 나라 사랑의 깊은 마음을 몰라주니 참으로 답답하다. 내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이 연놈들을 혼내야겠다. 그런데 어떻게 혼을 내지? ……

 * <미디어붓다>는 <이병두 엽편(葉片)소설 '철수와 영희'>를 6월 9일부터 연재하고 있습니다. 종교평화연구원장으로 활동하는 필자(사진)는 오랜 기간 불교계를 비롯한 종교계와 함께 생활하면서 현장의 상황에 남다르게 주목하고 발언해왔습니다. 그동안 보고 듣고 느꼈던 경험들을 이번엔 엽편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고자 합니다.

 

아시다시피 엽편소설이란 인생에 대한 유머, 기지, 풍자가 들어 있는 가벼운 내용의 아주 짧은 이야기를 지칭합니다. 필자가 펼치는 새로운 글쓰기 마당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합니다.

 

아울러 <이병두 엽편(葉片)소설 ‘철수와 영희’>를 좀 더 재미있고 풍성하게 쓸 수 있도록 재료를 제공해주실 분은 필자의 E-메일 <beneditto@hanmail.net>로 연락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