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향의 대상은 주로 유학자나 나라에 충성한 신료들이다. 억불숭유 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했던 조선시대에 승려인 서산대사에 대한 제향을 국가가 봉행했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임란을 맞아 서산대사가 승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한 것에 대한 국가의 예우가 억불정책을 썼던 조선시대에도 연면히 이어져 왔으니 여느 제향과는 사뭇 그 의미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종풍(宗風)을 발현하고 국난(國難)엔 홍제(弘濟)하셨다. 의려(義旅)를 모아 근왕병(勤王兵)이 되어 원훈(元勳)을 쌓을 때 성전(腥專)이 요분(妖氛)하고 응수곽청(應手廓淸)하였다. 지금은 엄전(嚴全)하고 따뜻한 모습을 바라보고서 서남(西南) 향불 피는 곳에서 정례(頂禮)를 드린다. 나는 서쪽과 남쪽의 관찰사가 영당(影堂)의 사액(賜額)을 요청하기에 남쪽은 표충(表忠), 서쪽은 수충(酬忠)이라 하고 해마다 제사 때는 관청에서 제수를 내리게 하였다. 내가 왕위에 오른 지 18년 갑인 1794년 4월 8일에 표충사와 수충사에 봉안케 했다. -내가 왕위에 오른 지 18년 갑인년 갑인, 1974년 4월 8일에 표충사와 수층사에 봉안케 하였다-”-정조 친필 서산대사 화상당명(보물 1357호)

조선의 임금이 친히 글을 모아 대사를 찬양한 글에서도 서산대사가 국난을 극복하고 나라를 구한 공적이 얼마나 대단했던가를 알 수 있다.

이런 호국대성사 서산 대사 휴정 스님의 충혼을 기리는 ‘서산대제’가 탄신 492주년을 맞아 4월 16일 국가제향으로 복원돼 봉행됐다. 일제 강점기 이후 맥이 끊긴 지 60여 년만의 일로서 정부와 지방정부 인사들, 지역국회의원과 각지에서 온 고승대덕들이 운집한 가운데 성스럽게 치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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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 탄신492주년 제향이 유교식과 불교식으로 해남 대흥사 표충사에서 엄숙히 봉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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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식으로 봉행되고 있는 서산대사 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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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의 호국정신을 기려 지어진 표충사.서산대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본래 서산대사 제향은 조선 정조 이래 예조와 경양찰방, 장흥부사, 흥양현감, 해남현감, 진도군수, 낙안군수 등과 함께 매년 춘추에 봉향해왔으나 60년 전 일제에 의해 끊어졌다. 이날 제향은 정조 당시의 문헌(대흥사 성보박물관 소장)인 ‘춘추사향예홀기’와 제물배치도인 ‘진설도’를 중심으로 ‘춘추시향제문’에 근거해 서산대사의 호국충혼을 추모 선양하는 유교식 제향으로 엄수돼 끊어진 호국행사의 복원이라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 행사였다.

박철환 해남군수가 초헌관, 이종록 해남군의회 의장이 아헌관, 안동준 해남경찰서장이 종헌관으로 제향을 올렸으며, 김용환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과 김찬 문화재청장이 중앙정부 대표자격으로 함께 참석했다.

이날 제례는 오전10시부터 표충사향례홀기에 따라 행존폐례(전례), 행초헌례, 행아헌례, 행종헌례, 행음복례(음복의 예를 올림), 철변두(제수와 제기를 거둠), 행망예례, 수인헌관출(헌관을 인도해 따라 나감) 순으로 오전11시 30분까지 엄수했다.

이에 앞서 오전 9시 40분 예조 예제관 추모봉향 행렬이 대흥사 해탈문에서 표충사까지 장엄하게 이어졌다.

표충사와 수충사는 서산 휴정, 사명 유정 스님의 충정을 기리기 위해 정조의 어명으로 지은 유교 형식의 사당이다.

유교식 제례에 이어 불교식 서산대제 법요식이 한 시간 가량 진행됐다. 명종, 영상시연, 국민의례, 삼귀의, 묵념, 군의장대 조총발사,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 대흥사 주지 범각 스님,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의 헌다, 조계종 원로 암도 스님과 종회의장 보선 스님 등의 헌향 헌화, 행장소개(법인 스님), 봉행사, 기념사, 법어, 축사, 사홍서원 순으로 봉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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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제향의식 복원이라는 취지에 맞게 이날의 서산대제에는 군의장대의 조총발사 의식이 함께 봉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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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 예제관 추모봉향 행렬이 표충사로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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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신 492주년을 맞아 복원된 호국대성사 서산대제를 원력을 갖고 성대히 치러낸 대흥사 주지 범각스님이 서산대사유물전시관 개관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대흥사 주지 범각 스님은 이날 표충사와 호국대전(護國大殿) 성역화 사업을 발원했다. 범각 스님은 “호국대성사 서산대제의 국가적 제향의 완성, 표충사(해남 대흥사)와 수충사(평안도 묘햐안 보현사) 남북 공동제향의 염원, 선조어가 환도 팔백의승군 호위행렬의 재현, 오천여명에 이르는 무명 의승군과 의승수군의 위령대제 거행 등을 반드시 완성하는 것이 선산 대사의 유지를 계승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제향의 봉행이 이런 원력사업의 성취를 위한 단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범각 스님의 이같은 발원에 대해 정부 관계자들도 축사로 화답했다.

김용환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은 축사에서 “일본이 끊임없이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며 국토침탈을 공언하는 시대에 서산 추모대제를 봉행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어 높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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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제는 정신교육의 장이자 대표적인 국가브랜드라고 역설하고 있는 국가브랜드위원회 이배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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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년 전 선조의 어가를 팔백의승군이 호위해 환도했던 의식을 계사년인 내년에 반드시 재현해야 한다는 의지를 담은 플래카드가 표충사에 내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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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의 유물이 보관 전시되어 있는 서산대사유물전시관이 83억 여원의 예산을 들여 완공돼 이날 함께 개관됐다.

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장도 축사를 통해 “대제는 정신 교육의 장이자 대표적인 국가브랜드”라며 “사찰을 유네스코에 등재하는 일에 총대를 메고 고귀한 정신과 문화를 세계에 자랑하는 것이 이 시대의 책임이자 서산대사의 화합과 평화의 정신을 잇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송석구 사회통합위원장은 “조선은 불교를 배척했지만 서산 휴정 스님 등은 풍전등화와 같은 처지에 처한 나라를 구했으며 조정에서 서산 대사의 국가제례를 지내주었다”며 “우리는 이제 이 자랑스러운 제향을 복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이날 탄신492주년 서산대제는 제향과 함께 서산대사유물전시관 개관식, 보살계 수계 금강대법회, 나라사랑 글쓰기 사생대회도 함께 열렸다. 83여억 원을 들여 건립한 서산대사유물전시관에는 서산 대사의 의발 등 서산 대사의 유품을 비롯해 다성(茶聖) 초의선사 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