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보기20세기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논쟁은 돈점(頓漸)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성철<<STRONG>사진>에 의해 제기된 이른바 ‘돈오돈수, 돈오점수 논쟁’은 당시 불교계는 물론 한국사회를 달군 매우 뜨거운 이슈였으며, 그 여진은 21세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성철 탄생 100주년을 맞아 돈점 논쟁이 재연될 조짐이다. 성철스님 탄신 100주년 기념해 백련문화재단(이사장 원택 스님)이 오는 3월 29일 진행하는 제5차 학술포럼에서 다시 한 번 돈점 논쟁이 벌어진다. 이번 포럼의 주제는 ‘돈점사상의 역사와 의미’이다. 백련문화재단은 올 한 해 동안 ‘퇴옹성철과 한국불교의 수행’이라는 주제로 성철스님 사상의 본질인 돈오돈수와 한국불교의 수행법을 밝힌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고, 이번 포럼은 그 첫 번째이다. 이 포럼은 동국대 불교학술원 종학연구소와 공동 개최한다.

서울대학교 윤원철 교수의 사회로 진행되는 이번 포럼에서는 경북대 임승택 교수의 ‘초기불교 경전에 나타난 돈(頓)과 점(漸)’, 동국대 종호스님의 ‘중국 선사들의 돈점론과 그 이해’, 동국대 정영식 HK연구초빙교수의 ‘돈오돈수와 조사선 : 한국 선의 특질’, 울산대 박태원 교수의 ‘돈점논쟁 새로 읽기’ 등 총 네 편의 주제논문이 발표된다. 논평으로는 각각 서울불교대학원대학 김재성 교수,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김진무 교수, 철학사상연구소 변희욱 연구원, 서강대 서명원 교수가 나선다.

특히 이번 포럼에서 발표될 발제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돈점 논쟁 새로 읽기’(박태원 울산대 철학과)이다.

박태원 교수는 이번 발제를 통해 돈점 논쟁을 새로운 독법으로 조명하는 시도를 선보일 예정이다. 박 교수는 미리 배포한 발제문을 통해 “성철에 의해 촉발된 돈점 논쟁을 구성하는 주제들은 ‘돈오(頓悟)’ 증오(‘證悟)’ ‘해오(解悟)’ ‘지해(知解)/해애(解碍)’ ‘화엄적 해오/화엄 성기사상에 의거한 원돈신해/화엄선’의 문제로 그 초점이 수렴된다”는 점에 주목 자신의 돈점에 대한 견해를 펼치고 있다. 박 교수는 지눌에 대한 성철의 비판이론은 ‘지눌의 돈오(頓悟)=해오(解悟)=지해(知解)=해애(解碍)=화엄(華嚴)=교가(敎家)’의 일관된 등식으로 구성되고 있음을 밝힌다. 따라서 돈점 논쟁에서 대답해야 할 핵심 질문은 두 가지, 즉 ‘지눌의 돈오/해오는 분별 알음알이 지해(知解)인가?’와 ‘지눌의 돈오는 화엄사상, 특히 성기사상의 반영이고 그 禪門的 전개인가?’라는 것으로 정리한다. 그리고는 이 두 질문에 대한 대답은 ‘돈오란 무엇이고, 해오와 증오와 구경각은 어떻게 겹치고 어떻게 갈라지는가?’ ‘돈오와 점수의 관계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의 문제와 곧바로 얽힌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박 교수는 지눌의 돈오/해오는 ‘화엄적 돈오/해오’에 국한되지 않고 두 가지 맥락의 돈오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화엄적 돈오/해오’와 ‘선문적(禪門的)/정학적(定學的) 돈오’가 그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화엄적 돈오/해오’는 삼학적(三學的) 불교 수행론의 분별 극복방식 가운데 ‘정견/혜학적 돈오’ 계열에 속하고, ‘선문적 돈오’는 ‘정학적 돈오’의 계승이라고 주장한다.

“‘화엄적 돈오/해오’는 ‘정견/혜학적 돈오’ 계열이기에 정견/혜학적 돈오의 문제점과 한계를 계승한다”고 전제한 박 교수는 “‘지식/이성/논리를 통한 이해와 관점의 교정’인 ‘정견/혜학적 돈오’가 안고 있는 한계는 그 내용상 성철이 비판하는 지해/해애의 문제다. 따라서 지눌의 돈오를 화엄적 돈오/해오로 규정하고 돈오점수를 화엄 성기사상을 담는 선문적 용기(禪門的 容器)로 간주하는 시선을 유지하는 한, 지눌의 돈오/해오는 지해(知解)에 불과하고 선문(禪門)에서 화엄선(華嚴禪)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야 한다는 성철의 주장은 타당하다”고 설명한다. 지식/이성/논리를 통한 정견적 돈오만으로는 내면화된 분별문법에서 탈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박 교수는 “선문(禪門)은 마음의 분별문법에서 빠져나오는 정학적 돈오에 집중하는 전통이며 정학적 돈오인 선종 선문의 돈오를 성취하는 수행방법의 요점을, 선종에서는 ‘반조/회광반조’라는 말에 담고 있다”고 전제한 후 “지눌은 돈오와 반조를 연결시키고, 반조에 의해 ‘언어에 의한 분별적 이해’의 극복을 설하고 있으므로 지눌이 설하는 ‘반조를 통해 성취하는 돈오’는 화엄적 돈오/해오가 아니라 정학적 돈오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학적 돈오로서의 지눌의 돈오는 지해(知解)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방식의 속성상 지해(知解) 범주에서 탈출하기가 좀처럼 어려운 정견적 돈오와는 달리, 지해적(知解的) 문법에서 통째로 빠져나오는 것이 반조/회광반조(返照/廻光返照)를 통한 정학적 돈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지눌은 이 정학적 돈오를 성취하는 최고의 수행법으로서 간화선을 지목했으며, 간화선은 반조/회광반조법의 새로운 버전이므로, ‘반조를 통한 정학적 돈오’와 ‘화두 참구를 통한 정학적 돈오’는 지눌에게 불화나 단절이 아닌 연속”이라고 강조했다.

“진정하고 완전한 돈오인가 아닌가의 문제는, 돈오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돈오의 수준 문제”라고 지적한 박 교수는 “돈점론의 돈오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일차적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정학(定學)에 집중하는 선문(禪門)에서 ‘점(漸)’과 대비되는 의미로서의 ‘돈(頓)’에 어떤 내용을 부여해야 하는가”라는 점을 들었다. ‘돈(頓)’ 고유의 정체성이 어떤 내용으로든 부여된 이후에야, 그 ‘돈’의 수준이 거론될 수 있으며 ‘돈오의 정체성’과 ‘돈오의 수준’은 구분되어 거론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논리적으로든 현실적으로든, ‘정체성 따지기’가 ‘수준 따지기’에 선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분별지해의 문법에서 통째로 빠져 나오는가 아닌가를 돈오 정체성의 기준으로 삼고, 그것이 정학적 돈오의 핵심이며 돈오점수의 돈오도 그런 것이라면, ‘점수(漸修)’는 돈오의 수준 문제가 된다”며 “‘분별문법에서 통째로 빠져나옴’이라고 총칭될 수 있는 돈오의, ‘다양한 정도와 수준’을 인정 하는가 아닌가의 문제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남종선문(南宗禪門) 전통에서 지해종사(知解宗師)가 아닌 본문종사(本分宗師)로 존숭되는 분들도 돈오(頓悟) 이후의 수행 노력을 역설하고 있고, 간화선을 집대성한 대혜선사 역시 오매일여(寤寐一如)로까지 나아가야 함을 설하는 동시에, 돈오 이후 돈오에 의거한 점수라 할 수 있는 오후보임(悟後保任)의 필요성을 설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한 “수행 현장을 보거나 역사적 증언을 보더라도, 돈오를 곧장 깨달음의 궁극적 경지(究竟覺)와 동일시하기는 어렵다”며 “돈오와 구경각(究竟覺) 사이의 중간지대가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수행의 실제와 현실에 부응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이 중간지대는 ‘분별문법에서 통째로 빠져나온 국면/자리를 지속적으로 간수해 갈 수 있는 정도나 수준의 편차’를 의미한다”며 “그 ‘통째로 빠져나옴/휘말리지 않음’이 선명하고 강할수록 그 국면을 지속시켜 가기도 용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휘말려 들어감과 휘말리지 않음’의 분기점과 차이가 직접 체험으로 확보되고 간별(揀別)되지만, 대상을 대할 때 방심하는 순간 또 다시 분별문법의 소용돌이에 빠져버리는 경우가 수행 현실에서는 다수일 것이다. 놓쳤다가도 언제든지 반조를 챙겨(화두를 챙겨) ‘말려들지 않는 자리’를 다시 확보할 수 있는 정도의 돈오가, 아마도 돈오와 구경각 사이 그 중간지대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문득 ‘통째로 빠져 나온 국면’을 챙긴 사람이라 해도, 그 빠져나옴의 선명도와 강도가 아직 미흡하여, 방심하면 곧 빠져들고 챙기면 곧 다시 빠져나오는 정도의 돈오가 일반 유형일 것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이어 “‘삼관(三關) 돌파’며 ‘돈오돈수적 완결’이며 하는 지침은 돈오와 구경각의 중간지대에서 어기적거리거나 안주하는 태도를 겨냥한 것이라면 타당하다”는 점에 동의한다. 박 교수는 “니까야가 전하는 붓다의 자신에 관한 증언 역시 ‘자나 깨나 탐/진/치에 전혀 물들지 않는다.’는 것이니, 부처 되고자 뜻한 장부라면 ‘다시는 빠져들지 않는 돈오’ ‘안 빠져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휘말리지 않고, 지키려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환하게 드러난 돈오’로까지 나아가야 한다”며 “그러나 이 지당한 지침이 수행 현장에서는 힘을 잃어버리기 쉽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즉 ‘통째로 빠져나옴’과 ‘못 빠져나옴’의 그 현격한 차이를 체험적으로 확보한 것만 해도 존재 차원의 엄청난 도약이기에, 자칫 그 성취에 도취하거나 허세를 부리며 ‘안 말려들기의 오매일여적 완결’을 향한 행보에 느슨해지기 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성철의 장군죽비는 이러한 정황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성철은 정견/혜학적 돈오의 한계와 문제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화엄 원돈신해의 언어를 통해 선문 안에 정견/혜학적 돈오가 혼입되면 정학적 돈오와의 차이가 불투명하게 되고, 그 결과 선문의 초점인 정학적 돈오의 정체성과 지위가 혼탁해지는 것을 염려했을지 모른다”고 전제하고 “간화선을 찬양하면서도 집요할 정도로 화엄 원돈문을 선문 안에 포섭하는 지눌의 태도에서, 성철은 정학적 돈오의 면모와 생명력이 자칫 묻혀버릴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고, 그리하여 배타적으로 보일 정도의 강한 어조로 지눌의 화엄 수용을 비판하며 선문(禪門)과 원돈문(圓頓門)을 분리시키려 했는지 모른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이어 “어쩌면 성철의 유일한 관심사이자 최대 공헌은 불교 수행론에서 ‘정학적 돈오의 제자리 돌려놓기’일 수 있다”며 “그러나 ‘오직 화두 의심으로 삼관돌파하여 구경각인 증오(證悟)를 성취해야 돈오’라는 식의 정의(定義)는 돈오에 대한 너무 과격한 단순화이며, 이 점에서는 수행 현장에서 확인되고 증언되는 다양한 ‘돈오群’을 수용할 수 있는 언어적 공간이 성철에게 요구된다”고 결론지었다.

3월 29일 열리는 돈점 포럼은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지하공연장에서 오후 2시부터 열린다.

문의: 최원섭/02) 2198-5100 / 010-3311-0623 / kosa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