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 취임을 축하하는 법어는 팸플릿에 적은 글로 대치하고, 내가 이 자리에서 몇 마디 지적하겠다. 요즘 보린지 밀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공과 사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천지다. 특히 사찰은 주지가 살림을 살면서 공과 사를 잘 알고 운영을 해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일단 이끄는 우두머리가 되고나면 그렇지가 못했다. 앞뒤도 모르고, 좌우도 모르고, 공과 사도 모르고 제멋대로 살아간다. 상식과 지식도 모르고 살아간다.”

태고종 종정 혜초 스님이 모처럼 강한 어조로 종단을 이끄는 대중을 질타했다. 태고총림 선암사 제29세 주지 설운 스님의 진산식 자리에서였다. 사부대중을 향한 질타였지만, 그 방향은 현 총무원 집행부와 그동안 선암사를 이끌어왔던 사람들을 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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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종 종정 혜초스님이 선암사 새주지 설운스님 진산식 법어를 통해 "태고종도들은 공심을 갖고 종단과 사찰을 운영하라"고 강하게 질타하고 있다.

혜초 스님은 이어 태고총림 선암사의 현실을 털어놨다. 태고종 소속 대중만이 아닌 조계종 송광사 주지 무상 스님을 비롯하여 순천시 관계자 등 외빈들도 많이 참석한 자리에서 거침없이 선암사의 딱한 현실을 드러냈다.

“태고총림 선암사는 지난 50년 동안 갖은 고초와 시련을 겪어왔다. 그래서 이제는 여러분이 보는 것처럼 망할대로 망해서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다. 앞으로 환골탈태해서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선암사를 총림다운 총림으로 만들어야 한다. 태고종도 사부대중은 적극 이 일에 동참해야 한다. 총림은 총림답게, 고찰은 고찰답게 만들어서 살아갈 것을 부탁한다. 이곳 선암사는 많은 선지식과 고승을 배출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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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총림 선암사 제29세 주지 설운스님의 진산식 장면

혜초 방장의 말은 단호했다. 그리고 처절하게 들렸다. 많은 회한을 풀어내듯 거침 없이 부끄러운 부분을 드러내 밝히고 태고종도의 각성을 촉구했다. “이 늙은 사람이 자꾸 말을 많이 하면 보기가 좋지 않을 것이니 이만 줄이겠다”고 밝힌 혜초 종정은 거듭 “공과 사, 좌와 우, 전과 후, 상식과 지혜를 잘 구분해 살아가라”고 촉구하면서 주장자를 들어보이고는 법좌에서 내려왔다.

태고종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혜초 종정의 준엄한, 그리고 피를 토하는 법어였다. 종정의 법문이 진행되는 동안 총무원장을 비롯한 종단 수뇌부와 선암사 대중들의 표정은 화창한 봄기운이 완연한 날씨였음에도 얼음처럼 굳었다. 그 경직된 모습이 종정 스님의 질타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인지, 앞으로 법문을 잘 받들어 종단과 선암사를 잘 운영하겠다는 다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진산식장에 동참한 태고종 재가불자들은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맞아, 맞아요. 큰스님께서 오죽하셨으면…”이라며 동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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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새주지 설운 스님은 "선암사 대중들의 화합과 단결을 위해 힘쓰겠다"며 특히 총무원집행부를 향해 "선암사를 더이상 분열시키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법어에 앞서 선암사 신임주지 설운 스님도 취임사를 팸플릿 내용으로 대체하는 대신, 호소와 당부, 다짐으로 대중들에게 모습을 보였다. 설운 스님의 법문도 호소와 절규처럼 들렸다.

“선암사를 책임지고 잘 운영해보겠다. 더 이상 뭐 있겠나. 잘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선암사가 분열을 하고 화합하지 못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제 이런 분열과 불화를 끝내야 한다. 끝내겠다. 도와 달라. 특히 종단(집행부)은 제발 선암사를 분열시키지 말아 달라.”

간결하지만 야물고 강한 주지 취임사였다. 태고총림 선암사, 그리고 태고종이 어떻게 변할지 두고 볼 일이다. 변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는 것을 태고종도들이 정말로 잘 알아들었는지, 종정 스님과 선암사 주지의 눈물어린 호소와 당부, 질책과 경고를 잘 알아들어 변할 준비가 되었는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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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매는 아직 꽃을 피우지 않았으나, 꽃을 피우기 위해 한껏 물기를 품고 있었다. 매화나무는 꽃을 피우려 하는데, 태고종은 어떤 변화를 이뤄낼 것인지...

선암사의 매화는 아직 피지 않았다. 그러나 물기가 오른 꽃망울은 곧 매화가 필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겨우내 죽은 듯 말랐던 저 초목도 저리 봄이 오고 있음을 알고 자신을 꽃피우기 위해 부단히 변하고 있는데, 선암사와 태고종은 과연 어떤 변화를 보여줄 것인가.

분명한 것은 혜초 종정스님의 피를 토하는 절규와 당부를, 설운 신임 선암사 주지의 간곡한 호소와 요청을 바람처럼 흘려버리는 한, 이른바 정통종단이며 대승교화종단임을 자임하며 명목상 제2종단을 자처하고 있는 태고종에 미래가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