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사상실천선양회는 2월 22일, 만해 한용운 선생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현대한국문학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준 작품을 발표한 문학인들을 격려하기 위해 제정한 ‘제10회 유심작품상’ 수상자로 시부문에 이홍섭 시인의 ‘터미널. 2’ (시집<터미널> 문학동네 2011.1), 시조부문에 이종문 시인의 ‘묵값은 내가 낼 게’(유심 2012, 1/2월호), 학술부문에 김광식 동국대 연구교수의 연구서 <만해 한용운 연구>(동국대출판부 2012.8)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상금은 각 부문 2천만 원이며, 시상식은 오는 8월 만해축전 기간 중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열린다. 문의: 유심편집실 739-5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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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 2

강릉고속버스터미널 기역 자 모퉁이에서
앳된 여인이 갓난아이를 안고 울고 있다
울음이 멈추지 않자
누가 볼세라 기역 자 모퉁이를 오가며 울고 있다

저 모퉁이가 다 닳을 동안
그녀가 떠나보낸 누군가는 다시 올 수 있을까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다며
그녀는 모퉁이를 오가며 울고 있는데
엄마 품에서 곤히 잠든 아이는 앳되고 앳되어
먼 훗날, 맘마의 저 울음을 기억할 수 없고
기역 자 모퉁이만 댕그라니 남은 터미널은
저 넘치는 울음을 받아줄 수 없다

누군가 떠나고, 누군가 돌아오는 터미널에서
저기 앳되고 앳된 한 여인이 울고 있다

시집<터미널> 문학동네刊, 2011. 7

*수상자 이홍섭 약력

1965년 강릉출생. 강릉원주대 국문과 졸업. 경희대 대학원에서 석사, 동국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 수료. 1990년 <현대시세계>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2000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시집 <강릉, 프라하, 함흥> <숨결> <가도가도 서쪽인 당신> <터미널> 등이 있음. 현재 강릉 원주대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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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값은 내가 낼게

그해 가을 그 묵 집에서 그 귀여운 여학생이 묵 그릇에 툭 떨어진 느티나무 잎새 둘을 얌얌얌 씹어보는 양 시늉 짓다 말을 했네

저 만약 출세를 해 제 손으로 돈을 벌면 선생님 팔짱을 끼고 경포대를 한바퀴 돈 뒤 겸상해 마주 보면서 묵을 먹을 거예요

내 겨우 입을 벌려 아내에게 허락받고 팔짱 낄 만반 준비 다 갖춘 지 오래인데 그녀는 졸업을 한 뒤 소식을 뚝, 끊고 있네

도대체 그 출세란 게 무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 출세를 아직도 못했나 보네, 공연히 가슴이 아프네, 부디 빨리 출세하게

그런데 여보게나, 경포대를 도는 일에 왜 하필 그 어려운 출세를 꼭 해야 하나, 출세를 못해도 돌자, 묵값은 내가 낼게

<유심> 2012년 1/2월호.

*수상자 이종문 약력

1955년 경북 영천출생. 계명대와 고려대학원에서 한문학을 공부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음.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시집으로 <저녁밥 짓는 소리> <봄날도 환한 봄날> <정말 꿈틀,하지 뭐니> 등이 있다. 중앙 시조대상 신인상, 한국 시조작품상 등 수상. 현재 계명대 사범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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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저서 <만해 한용운 연구> 동국대출판부,2011.8

*수상자 김광식 약력

1957년 충북 음성 출생 건국대 사학과를 졸업했다.(문학박사, 오른쪽 사진) 독립 기념관 책임 연구원 부천대 초빙 교수 조계종 불교사 연구 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 연구 교수 백담사 만해마을 연구 실장이다. 주요저서로 한국 근대 불교사 연구 한국 현대 불교사 연구 민족 불교 이상과 현실 만해 한용운 평전 그리운 스승 하남 스님 등 20여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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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소감 (시부문 이홍섭)

노스님이 두보의 말 화두처럼 툭 던지시더니…

젊은 날 시를 만났지만, 눈 뜨면 아침이고 눈 감으면 한밤이 되는 지경을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비록 시로써 무엇을 구한 바 없을지라도, 시와 더불어 그 많은 낮과 밤을 보내면서 여태껏 아무것도 터득한 바가 없으니 그야말로 일구지난설(一口之難說)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날은 식어버린 백설기처럼 첩첩하기만 한 서책들을 몽땅 내다 버릴까도 생각해보다가, 또 어떤 날은 아무도 오지 않는 산진수회처(山盡水廻處)의 오지에 가서 내 스스로를 궁벽하게 유폐시킬까를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뜻 없는 분노와 천하의 서러움도 이젠 다 잠재운 듯싶었더니, 아직도 잠들지 않는 눈이 하나 여전히 서성거리고 있었나 봅니다.

천안통(天眼通)을 얻으신 노스님께서는 이런 나를 꿰뚫어보시고는 새해 초입부터 "남을 감동시키지 못하면 죽어도 그만 두지 않겠다 (語不驚人死不休)."는 두보의 말을 화두처럼 툭 던져놓으십니다. 돌이켜보니 나에게는 정녕 이러한 결기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유심작품상'은 받고 싶었던 상입니다. 받고 싶지 않은 상이 어디에 있겠습니까만, 제 젊은 날의 금빛 인연소치를 생각하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흐르는 강물에 술 한 잔 띄워놓고 적적하니도 노닐고 싶은 날입니다. 두루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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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소감>(시조부문 이종문)

누군가의 가슴을 위무하는 푸른 편지

어느 날 문득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 수상을 알리는 정말 난데없는 전화를 받았다. 그 순간 가장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가장 희망적인 작품을 남겼던 울산의 꼽추시인 서덕출 선생의 동시 [봄편지]가 번쩍! 떠올랐다.

연못가에 새로 핀/ 버들잎을 따서요/ 우표 한 장 붙여서/ 강남으로 보내면/ 작년에 간 제비가/ 푸른 편지 보고요/ 조선 봄이 그리워/ 다시 찾아옵니다.

이 동시는 윤극영 선생에 의하여 노래로 만들어져 아지랑이처럼 잔잔하면서도 참으로 뜨겁게 불려졌다. 천 길 만 길의 캄캄한 어둠 속을 헤매고 있던 일제 강점기의 우리 민족에게 광복과 해방의 푸른 봄날이 멀지 않아 오리라는 희망을 심어주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봄편지]는 나 자신과도 각별한 인연이 있는 노래다. 만약 기억에 잘못이 없다면, 이 작품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던 1961년 3월 초순, 그러니까 내 생애의 맨 첫 번째 음악시간에, 이 세상에 태어나서 맨 처음으로, 얼굴이 하얗던 최정자 선생님께 배웠던 노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풀 베고 소 먹이던 어린 시절에 이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막연하게나마 나에게도 언젠가 푸른 편지가 날아올 것 같은 예감과 희망에 부풀기도 했다.

이제 바야흐로 버들잎이 휘청대는 시퍼런 봄이 다가오고 있다. [봄편지]가 나에게 큰 감동과 희망을 주었듯이, 내가 쓰는 시조도 누군가의 가슴을 위무하는 푸른 편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여러모로 부족한 작품을 수상작의 반열에 올려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유심}의 관계자 여러분들께도 어느 날 난데없이 버들잎 푸른 편지가 한통씩 배달되기를 기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금상첨화가 어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 금상첨환데, 부디 금상첨화가 되기를!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이 노래가 광복과 더불어 그 역사적 사명이 끝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가슴 아프게도 해방과 동시에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졌으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운 조선 봄은 아직까지도 오지 않고 있고, 개인적으로도 이 노래가 담고 있는 푸른 희망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이 아직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이 노래는 희망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세상이 오기 전까지는 누군가에 의하여 불려질 터이고, 그와 같은 세상은 영원히 오지 않을 터이므로 이 노래의 생명력도 영원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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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학술부문 김광식)

30년 전의 약속

만해 한용운 스님의 가르침을 구현하기 위해 제정된 유심상을 받는다는 사실에 미쳐 지난 30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이번 수상에 즈음하여 나는 나 자신에 성실하고, 민족과 사회의 요청에 부응하는 학문을 해왔던가 하는 자괴감을 떨칠 수 없다.

내가 한용운 스님을 만난 것은 대학원을 마치고 독립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의 연구원으로 취직한 1985년 3월이었다. 독립기념관 전시안에서 불교민족운동의 대표 인물로 부각된 한용운을 접하고 언제인가는 한용운의 책을 내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로부터 자료수집, 인터뷰, 논문집필, 평전 발간, 전시 등 다양한 일을 거쳐 최근 <만해 한용운 연구>를 상재했다. 이로써 30년 전, 내 자신에게 한 약속은 지켜진 셈이다.

지금껏 만해연구라는 화두를 들고 전국을 순방할 때에 많은 후원을 해주신 님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추후에는 한용운의 사상, 문화, 계보학 등을 폭 넓게 공부하여 만해학을 정립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허리를 곧추 세우고, 정진하는 자세로 한 눈 팔지 않고, 오직 학문의 길을 가겠다고 발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