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중앙선관위의 범어사 주지선거 연기통보에 대해 범어사 교구 선관위가 3월 2일 산중총회 강행을 결정했다. 이와 관련 범어사 재적승이기도 한 불교사회정책연구소 법응 스님이 기고문을 보내왔다.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민주주의의 꽃을 선거라 한다. 조계종은 총무원장을 비롯해 많은 교역직을 선거로 선출한다. 그리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중앙선관위)와 지방선거관리위원회(이하 지방선관위)에서 이를 관장한다. 종단도 사회의 민주주의 제도를 표방한 것이 분명하다.

지난 1월 30일 중앙선관위는 제 248차 회의를 열어 범어사의 산중총회에 대해 ‘선거관리위원회법’ 제 17조의 3, 제 1항 ‘천재지변 기타 부득이한 사유로 각급 선거를 실시할 수 없거나 실시하지 못한 때는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선거연기를 결정할 수 있다’는 규정을 적용해 선거 연기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일부 교계언론은 ‘무기한 연기’라는 보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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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응스님

종헌기구의 결정은 존중돼야 함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다만 종헌기구의 결정 특히 선거와 같이 종단의 권력구조에 관한 결정은 철저하게 법률에 근거하고 불편부당해야 한다. 이번 중앙선관위의 결정이 나름 법률에 근거한 결정일 것이나, 만일 필자가 중앙선관위 위원의 입장이라면 과연 어떠한 의견을 내고 결정에 기여했을까 하는데 착안해서 의견을 제시한다.

아울러 종단의 재정투명화와 청정선거, 종책선거는 필자의 오랜 주장이며, 또한 마땅히 그러해야 하기에 여기서는 중앙선관위의 결정만을 논하고자 한다. 금권선거는 질타 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또 다른 중요한 권리와 가치가 희생되거나 뒷전으로 밀려서는 안 된다. 즉 질타는 하되 보호받을 권리와 가치를 희생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먼저 산중총회는 1995년 12월 4일에 공포된 것으로써 교구본사주지를 선출하는 당해교구의 자율권 보장이 그 취지다. 즉 94년도 이전까지 행해진 총무원장의 일방적 주지 임명에 대한 폐단을 없애고 철저한 본사중심의 교구 운영에 그 뜻을 둔 것이다.

중앙선관위의 임무는 원활한 선거진행과 관리, 선거권자와 피선거권자의 자격심사, 선거사범에 대한 고발이다. 즉 이는 중앙선관위의 중대한 임무로서 선거의 진행을 외부의 작용으로부터 보호해서 종단의 선거질서와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이 훼손되지 않게 함에 있다. 그래서 선거의 연기 사유를 ‘천재지변이나 기타 부득이한 사유’라고 극한의 경우로 한정한 것이다.

범어사가 산중총회를 앞두고 언론에 보도된 것과 같이 돈 선거의 양상으로 흘렀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만일 필자가 중앙선관위의 관계자라면 다음 사항에 주목했을 것이다.

첫째, 산중총회의 개최가 과연 선거 절차기간 내 불가능한지 여부를 따졌을 것이다. 이번 범어사의 산중총회가 과연 천재지변으로 교통이 마비돼서 선거권자가 산중총회장에 갈수 없거나 방송 보도로 인해 과연 선거 자체가 불가능해진 것인지 구체적인 상황을 살폈을 것이다. 언론에 금품선거가 보도가 됐고, 이후 총무원장스님이 자숙을 당부해서 후보자들이 일체의 활동을 중지한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산중총회 자체가 개최될 수 없을 지경의 내분분열은 아닌 것이다.

선거 연기결정을 하려면 최소한 범어사 주지와 지방선관위원장 그리고 관련자들의 의견 청취와 정보를 수집하는 노력이 필요했고, 그러한 연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을 일이다. 참고로 범어사는 공식적인 선거일정을 보고조차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둘째, 철저하게 법률에 근거했을 것이다. 선거 무기한 연기의 실질적인 사유가 금품수수와 언론보도로 인한 명예 실추가 주원인일 것이다. 여기서 필자가 중앙선관위의 입장이라면 여론이 아닌 ‘죄형법정주의(법률이 없으면 범죄도 없고, 법률이 없이는 형벌도 없다)’에 근거하여 판단했을 것이다. 중앙선관위의 결정이 법률에 근거하지 않을 시 원칙은 사라지게 되고 사사로움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산중총회법은 입법 미비로서 금품 수수에 대한 처벌 규정이나 이에 관한 준용규정이 없다.

만일 위법사실이 있다면 절차에 따라 사정기관에 처리 위계하면 된다. 어디까지나 중앙선관위는 청정선거에 대한 권장과 경고가 우선되고 입법청원을 해야 한다. 즉 여론의 눈치를 본다든가 징벌 또는 적극적으로 제도를 보완해야 하는 곳은 총무원이지 중앙선관위가 아니다.

셋째. 산중총회법의 입법 취지와 선거권자의 권익을 생각했을 것이다. 앞서 지적과 같이 산중총회법은 교구본사의 자율권 보장이 우선이다. 범어사의 산중총회가 무기한 연기됨으로 인해서 범어사의 자율권과 400여명에 이르는 선거권자의 권익에 손상이 갔음이 사실이다.

다른 선거와 달리 산중총회법 제 7조 5항에 “회의소집, 등록 등 선거관련 업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감독 하에 교구선거관리위원회가 담당한다.”라 한바, 철저하게 교구본사의 자율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교구선관위가 선거 관련 일체를 담당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법 제 5조(직무) 제1항 1호에 “중앙종회의원 선거 및 총무원장선거에 관한 사무”라고 명시되어 있는데, 산중총회 즉 교구본사주지 선거에 관한 명시는 없다. 단 2호에 ‘기타 종법으로 정한 사무’라고 하였으나 이 역시 산중총회는 교구본사의 고유권한을 강조한 의미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넷째, 1차부터 ‘무기 연기’ 또는 ‘연기결정’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기 연기’와 ‘연기 결정’ 중 어느 것이 정확한 결정인지 알 수 없으나, 양자 모두 문제가 있다. 부득불 결정이 필요했다면 “범어사는 청정한 선거분위기 조성을 위해 빠르게 자정의 노력을 통해 산중총회가 원만하게 진행되도록 각별한 노력을 하기 바란다.” 정도면 족하다. 1차 경고에도 불구하고 파행이 지속된다면 그때 법적 한도 내에서 조치를 취하면 된다.

이번 연기조치는 중앙선관위가 산중총회법과 선거권자로서의 범어사 대중의 권리와 권익 보호를 외면한 지나친 처사라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다섯째, 관례가 있는지 여부를 따졌을 것이다. 2006년 관음사는 산중총회를 앞두고 중원 스님 측과 반대 측이 심한 대립을 펼쳤고 대대적으로 보도가 됐음에도 당시 중앙선관위는 관음사에 선거연기 결정을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2007년 4월 17일자 <현대불교>기사를 보면

“이 촉구문에 따르면 관음사 교구는 2006년 9월 21일 산중총회에서 20일 전 소집공고를 해야 한다는 시행규칙을 위반했을 뿐 아니라 다른 후보를 의도적으로 배제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중선위)에서 재선거를 통보받았다. 그러나 산중총회를 강행해 자체적으로 내세운 주지후보를 선출함으로써 중선위가 호법부에 조사를 요청했다. 또 같은 해 11월 29일 산중총회에서도 종법을 무시한 채 다른 후보자의 등록을 거부해 선거중지명령을 받았으며, 지난해 10월 26일 실시된 중앙종회의원 선거과정에서도 특정후보자들의 등록을 거부해 결국 선거 자체를 무산되도록 했다.”

당시중안선관위는 관음사의 선거 파행에 대해 1차 ‘재선거’ 후보 등록 거부 등 파행이 지속되자 ‘선거중지’를 명령했다. 갈등이 지속돼도 사전에 ‘선거연기’의 조치가 있었다는 보도는 찾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금권선거에 대해 질타를 보냄과 동시에 이번 선관위의 결정을 의혹의 눈길로 보는 것은 이상 열거한 이유에 있을 것이다.

범어사를 비롯한 산중총회의 그 입법취지와 자율성은 보호받아야 한다. 중앙선관위는 그 어떠한 권력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하며, 법에 근거한 자율권이 보장돼야 한다. 총무원은 종단 유신에 박차를 가해야 하고 정책 추진에 있어 사사로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法應(불교사회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