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에 사교입선이라는 말이 있다. 교학(경전) 공부를 버리고 선 수행으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고,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라고 했으니, 말씀을 다 들은 후 그 마음으로 직접 들어간다는 의미도 되겠다. 다만 예서 사교란 교학을 아예 무시하고 접하지도 말라는 뜻이 아니라 교학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 사교입선을 그대로 실천하는 두 사람이 있다. 한 때 불교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서울대와 도쿄대 출신 불교학자들이다. 스님이 아닌 장휘옥, 김사업 두 불교학 전공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10년 전, 수행을 위해 잘나가던 동국대 강단을 떠나 외딴 섬 오곡도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치열한 수행을 했다. 교학의 한계를 넘어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수행의 현장으로 뛰어든 것이다. 두 사람의 결행은 당시 불교계에서는 화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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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참 집중정진 등 10년 수행정진의 결과물을 '무문관 탐구'라는 책으로 펴낸 김사업-장휘옥 교수.


이후 두 사람의 수행자가 책 한 권을 들고 나타났다. 간화선 수행서로 일컬어지는 ‘무문관’을 그동안 치열한 수행을 바탕으로 해 쓴 <무문관 참구>(민족사)라는 두툼한 책이다. 불교학자에서 수행자가 된 두 사람의 눈빛은 형형했다. 물론 이전 강의실에서 교수를 할 때의 눈빛도 예사롭지 않았지만, 그 때의 눈빛과 지금의 눈빛을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도대체 이 두 사람에게는 지난 7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두 수행자는 지난 2003년부터 지금까지 일본 임제종 14대본산 가운데 하나인 고오가쿠지(向嶽寺)에서 간화선 수행을 해왔다. 고오가쿠지의 집중수행(攝心)에 일년에 서너 번은 반드시 참가하고, 때로는 안거 기간 중 장기간 체재하면서 미야모토 다이호오(宮本大峰) 방장 스님의 독참 지도를 받았다. 안거 중에 매달 일주일씩 행하는 집중수행 기간에는 독참이 하루 4, 5회씩 있고, 평상시에는 매일 1, 2회의 독참이 있으니, 두 사람은 약 900회 이상의 독참 지도를 받은 셈이다.

이 책은 그래서 두 사람이 지난 10년 간 강단을 떠나 수행에 매진한 성적표이자, 두 사람이 직접 체험한 수행의 엑기스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이 책을 집필하는 데, 꼬박 2년의 세월을 보냈다. 1인 10역을 해도 손이 부족한 섬 생활 가운데 참선수행과 예불, 노동 등 안거에 든 스님들보다도 더 빡빡한 일정 속에서 시간을 쪼개어 이 책을 집필한 것이다. 그러면, 이들은 얼핏 보기에 많이 팔릴 것 같지도 않아 보이는 이 책을, 그 힘든 고통을 감내하며 펴냈을까.

그 답은 대자비심의 발로에 다름 아니다. 현재 불교의 참 진리를 깨치기 위해 목마른 불자나 수행을 원하는 이들에게, 즉 실천적 수행을 하는 이들에게 자신들이 경험한 공부의 과정과 경험을 전하고자 하는 단심이 이 책에 구구절절 배어 있음이다.

이 책을 누가, 얼마나 사서 읽겠는가? 라는 물음에 두 사람은 엷은 미소로 답한다.

“실천적으로 수행을 하는 이들은 이 책의 진가를 알아볼 것입니다. 또한 선수행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어둠 속의 등불마냥 길잡이가 되어줄 것입니다. 이 책의 내용들이 그런 분들에게는 피부로, 가슴으로, 살 떨리는 내용들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특히 강조하는 것은 독참(입실)의 중요성이다. 독참이 사라진 한국 선불교의 수행법은 화두 하나 던져주고 각자 알아서 정진을 하는 사실상 방목형 수행이라면 독참은 방장과의 1:1 독참을 통해 집중력을 잃지 않게 하고, 대의심과 대분심을 유지하게 하는 선공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역설한다.

독참은 중국 선불교의 매우 중요한 특징인데, 그 독참의 수행전통이 살아남아 전승되어 오는 곳은 일본이 유일하다. 한국에서는 어느 덧 독참이 사라졌고, 중국에서도 그 전통이 끊겨 현재 중국의 스님들이 일본의 임제종에 출가해 그 전통을 역수입하기 위해 정진 중이기도 하다.

독참은 선종사찰의 율장, 즉 청규에는 반드시 나와 있는 선수행의 매우 요긴한 수행 프로그램이었다. 그 소중한 전통이 일본 임제종 고오가쿠지에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안 다음에는 두 사람은 촌음을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그대로 달려가 다이호오 방장에게 독참지도를 요청한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고오가쿠지에서 독참수행이 허락된 것은 아니었다. 독참(입실)이 허용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리고 처음 허락된 독참 시간. 김사업 선생은 그 긴장됐던 순간을 숨소리 하나까지 기억한다.

“무를 보았느냐?”

“아직입니다.”

(벽력같이 화를 내며)

“네가 아직이라고 말하는 것은 화두를 들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썩 나가거라.”

혼비백산, 첫 독참에서 혼쭐이 난 김 교수는 서너 시간 뒤에 있을 다음 독참 때까지 오직 무자 화두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크게보기김 교수는 독참이란 바로 이런 것, 즉 선 수행의 고삐를 늦추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극도의 집중력으로 화두를 놓치지 않게 하고 타성에 떨어지 않게 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편이 독참이며, 이 전통이 중국도 한국도 아닌 일본에 남아 있기에 찾아가 수행을 하고 공부를 한 것이라는 뜻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은 900여 회에 걸친 두 사람의 독참을 통해서 체험한 바를 중심으로 쓴 책이다. 체험을 바탕으로 쓰되, 일체의 머리 굴림이나 알음알이에 빠지지 않고 공안을 공안답게 올바로 참구할 수 있게 이끄는 내용과 구성이 되도록 온 힘을 쏟아부었다고 두 사람은 밝혔다.

두 수행자에게 부담스러운 것은 일본불교에 대한 한국불교의 편향된 시각이다. 그러나 불교에, 또 수행법에 국경이 없으므로 어떤 반응이든 개의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선은 생활 그 자체다. 삶 자체가 밝아지는 것이며, 괴로움 속에서 살지만 괴로지 않게 하는 것이 선이다. 사바가 곧 정토이며 번뇌가 곧 보리라는 교학적 가르침을 어떻게 현실 속에서 이뤄낼까, 하는 고민이 선인 것이다.

이 책은 ‘무문관’이라는 공안집의 번역서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학문적, 이론적 번역 위주의 지금까지의 책과는 전혀 버전이 다르다. 수행적 번역, 그것도 선수행적 번역서에 해당된다. 무문관에 나오는 48개의 화두를 하나하나 깨쳐나가는 ‘공안참구 가이드북’인 이 책은 불교를 멋으로 하거나 알음알이로 하는 이에게는 별 소용이 없다. 이 책은 선을 제대로, 바르게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더 없이 반가운 책이다.

이 책을 펴낸 민족사의 윤창화 사장은 “지금까지 출간된 ‘무문관’에 대한 주석서는 이야기나 에피소드 중심으로, 지나치게 주석을 가해서 실제 간화선 참구에 연결되지는 않았던 것이 현실”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이번 책은 수행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매우 요긴한 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자 장휘옥은?

부산대 사범대학 화학과를 나왔다. 같은과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과학보다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편입해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이후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과학 연구과에서 화엄사상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동국대학교 사회교육원 교수로 재직했다. 일본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연구원, 한국불교학회 이사, 원효학연구원 연구위원, 한국정토학회 이사를 역임했다.
<불교학개론 강의실>1,2권을 비롯하여, <해동고승전 연구>, <정토불교의 세계>, <자, 떠나자 원효 찾으러>, <길을 걷는 자, 나는 누구냐> 등 10여 권의 책을 썼으며, <화엄경 이야기>, <대승기신론 이야기>, <중국불교사 1,2,3> 등 여러 권의 책을 번역했다.

*저자 김사업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대기업에 입사했으나 어렸을 적부터 가졌던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을 회피할 수 없었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학사 편입하여, 같은 과에서 유식사상을 세부 전공으로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일본에 유학하여 교토대학교 대학원 문화연구과(불교학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동국대학교 사회교육원 교수로 재직했다. 공저 <길을 걷는 자, 너는 누구냐?>, 공역 <한국불교 천태사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