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깨달음의 종교 불교에서 이 물음은 영원한 테마이다. 온통 깨달음을 말하고 듣지만, 또 깨닫기 위해 수행도 하고 공부도 하지만 궁금증은 가시지 않는다.

<불교평론>의 열린논단에서 새해 첫 주제로 ‘깨달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내건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지난 1월 19일 열린 올 첫 열린논단의 발제는 임승택 경북대 교수가 맡았다. 임승택 교수는 초기불교를 공부한 학자로 직접 오랜 기간 수행을 하기도 한 교학과 실수를 겸비했다는 점이 고려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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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발제를 하고 있는 임승택 교수.

깨달음은 불교의 목적지이기도 하고, 이것을 포기하면 불교가 아닌 것이기에 어렵더라도 깨달음에 대한 열망을 놓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깨달음에 대한 숱한 오해가 상존한다. 깨달음을 얻으면 모든 것이 다 성취되는 듯한 주장이나, 깨달음을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져 천지를 뒤흔드는 체험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범부중생은 백날을 닦아도 범접할 수 없는 경계처럼 말하기도 하고, 세수를 하다가 코를 만지는 것보다도 쉬운 것이 깨달음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깨달아보기 이에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이 깨달음이다.

이날 ‘깨달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발제를 한 임승택 교수는 깨달음을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닌 “모르던 사실을 궁리 끝에 알게 되는 것”이라고 간단히 정리한다. 아하!, 아하! 알게 되면서 삶의 전환이 이뤄지는 것이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임 교수는 초기불교에서 깨달음에 대한 관점은 돈오점수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깨달음 한탕주의’가 만연한 한국불교의 현실을 개탄한다. 깨달음을 너무 신비화하다보니까 일어난 폐단이며, 돈오돈수와 같은 상당히 위험한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날 발제도 이런 빗나간 깨달음에 대한 환상을 바로잡으려는 데 있을 지도 모른다.

초기불교적 입장에서 본다면 깨달음은 곧 열반으로 이어진다. 깨달음과 열반은 동전의 양날처럼 연결되어 있다. 깨달음은 곧 열반의 실현으로 이어지는 데, 열반이란 다 알다시피 탐진치 3독의 소멸이다. 탐진치가 소멸된 상태가 곧 깨달음으로 얻어지는 세계라는 말이다. 깨달음은 탐진치를 소멸한 열반으로 이어지는 것인데, 외려 깨달음을 탐하는 아이러니가 한국불교에는 팽배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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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첫 토론이었지만, 추운 겨울 날씨를 후끈하게 덮을 만큼 토론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렇다면 이상적인 깨달음의 실현과정은 어떠해야 할까. 임 교수는 초기경전에 근거하여 ‘점진적 깨달음이 초기불교의 일관된 입장’임을 분명히 했다. 그 근거로 제시한 경구가 의 “비구들이여, 나는 완전한 지혜(안나)의 성취가 단번에 이루어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와 반대로 점차적으로 배우고 점차적으로 실천하고, 점차적으로 발전하여 완전한 지혜의 성취가 있게 된다”이다.

그렇다면 깨달음의 내용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서도 임 교수는 경전에 근거하여 ‘사성제를 깨닫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이 사성제에는 중도와 연기, 8정도가 두루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는 순서도 ‘고→집→멸→도’의 순서로 깨달아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임 교수는 <전법륜경>에서 “사성제에 관한 지혜와 견해가 청정해진 연후에야 비로소 위없는 바른 깨달음(아뉵다라삼먁삼보리)을 선언했다”는 것을 제시한다.

임승택 교수는 불교라는 종교에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능가하는 또 다른 목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불교에서 말하는 최상의 깨달음이 사성제에 대한 깨달음임을 거듭 강조한다. 즉 “인간이라는 존재가 괴로움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 그것의 원인은 내면의 집착과 탐욕에 있다는 것, 그러한 괴로움은 극복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극복하는 길이 존재한다는 것”이라는 깨달음 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깨달음에 관한 임승택 교수의 발제이후 토론 참석자들은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그 깨달음을, 오늘날 현실에서 부딪히는 사회적 문제와 어떻게 접합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깨달음에 대한 보다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견해에 이르기까지 치열한 논의가 이어졌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고통을 잘 관찰하라는 것, 관찰하는 것에서 원인과 해결책이 다 드러난다는 것’으로 귀결됐다. 즉 어떤 고통과 마주쳤을 때, 그 고통을 찬찬히 살펴보는 것으로 문제해결의 방법이 찾아진다는 것이다. 고통을 잘 관찰하면, 고통을 가져온 원인을 알게 되고, 마침내 고통이 사라진 경계와 그곳에 이르는 방법론이 나올 수 있다는, 어쩌면 매우 당연한 공식이다.

예컨대 오늘날 청소년과 대학생들(자녀)이 겪는 대표적인 고통은 입시와 취직인데, 정작 그들이 겪는 고통을 잘 관찰해보면, 그 원인은 그들을 좋은 대학에 가야하고, 대기업 등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 한다고 몰아붙이는 기성세대들(부모)의 욕심과 집착에 의한 것이며, 그들에게 어떤 학교나 회사라는 간판보다는 어디서든 다양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통해 진정한 자기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그곳으로 가는 다양한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 근원적인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불가의 영원한 테마, 깨달음, 그 깨달음이 (외형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깨어 있음이라는 의견, 깨달음은 사실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깨닫는 것이어야 한다는 견해 등이 다양하게 이날 토론을 통해 다양하게 표출됨으로써, 역시 깨달음은 불교의 영원한 화두일 수밖에 없음을 입증해준 토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