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위원회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 정릉의 훼손을 우려해 정릉제6구역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이 신청한 문화재현상변경 심의를 보류했다.

문화재위원회와 세계유산분과와 사적분과는 1월 11일 오후 2시 회의를 열어 정릉과 정릉의 능침사찰인 흥천사 사이에 대규모 고층아파트를 건축하게 해달라는 사업조합측의 문화재현상변경 요청을 검토한 끝에 이같이 결정했다. 따라서 정릉제6구역의 고층아파트 건축은 흥천사와의 협의가 없는 한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흥천사 주지 정념스님과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은 심의 하루전인 10일 조계종 한국역사문화기념관 회의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가 세계문화유산과 흥천사의 소중한 문화재에 치명적인 훼손이 불가피한 정릉제6구역에 대한 현상변경 허가를 불허하라고 강력히 촉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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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사 전경. <미디어붓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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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0일 조계종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 장면. 흥천사주지 정념스님이 정릉과 흥천사 등 사적지 보존을 강하게 촉구하고 있다.


또한 1월 9일자로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에 공문을 내고 ▲정릉제6구역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은 설립인가 무효판결을 받은 단체로 법적인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점 ▲흥천사 외곽경계로부터 불과 60미터 거리에서 대규모 공사가 진행될 경우 흥천사의 문화재 및 다수 동산문화재의 훼손이 불가피하다는 점 ▲조선왕릉 가운데 제일 먼저 조성된 능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정릉을 훼손할 경우 조선왕릉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취소될 우려가 크다는 점을 들어 강한 현상변경을 부결해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조계종과 흥천사는 11일 문화재위원회에서 부결이 아닌 문화재현상변경 심의보류를 결정해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사실상 부결로 받아들이고 흥천사와 정릉의 문화 및 자연환경 보존과 문화재 보호에 더욱 적극 나선다는 입장이다.

흥천사주지 정념 스님은 “700년을 이어온 세계문화유산과 소중한 불교문화유산의 훼손이 불 보듯한 결정을 설립인가 무효판결을 받은 사업조합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오기 이전에 서둘러 현상변경안을 심의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충분히 관계부처에 전달한 만큼 비록 부결은 아니더라도 일단 정릉과 흥천사 일대 자연문화환경 보호의 길이 열린 것으로 본다"며 "향후 종단 및 시민문화단체들과 연대해 더욱 치밀하고 철저하게 대처해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문화재위원회의 ‘보류’ 결정에 대해 “부결이 아닌 보류라는 점에서 일단 불만족스럽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정릉제6구역 재건축사업에 흥천사의 문화재 및 동산문화재 훼손 우려라는 새로운 변수를 인정한 조처로 보인다”고 밝혔다. 따라서 앞으로 흥천사와 조계종의 대응에 따라 재건축 사업의 방향이 조정될 수밖에 없는 새로운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황 소장은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