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임진년 흑룡(黑龍)의 해를 맞아 국운융창을 기원하는 흐름이 거세다. 특히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이라는 두 큰 선거를 예정해놓고 있는 해여서 흑룡의 해에 대한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고 크다.

2012년 임진년을 흑룡의 해로 부르는 이유는 이렇다. 10천간(10天干)을 색깔로 나눠 검은색을 뜻하는 임(壬)과 12간지(12干支)에서 용을 나타내는 진(辰)이 만나 임진년 흑룡의 해가 됐다는 것이다.

용이 황(왕)실과 깊은 연관을 맺은 것은 중국 한고조 유방이 용과 결부된 자신의 탄생신화를 만든 데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 후 원(元)대에 이르러서는 용 문양을 황실에서만 사용하도록 엄격히 제한했다. 이 때 이후로 오조룡(五爪龍), 즉 5개 발톱을 가진 용이 중국황제를 상징해왔다.

따라서 조선의 왕실은 중국보다 하나가 적은 사조룡(四爪龍)을 사용했다. 그러다가 세종 때 중국에 요청해 오조룡을 쓰기 시작했다. 용의 발톱의 수가 상징하는 의미는 이렇듯 대단했다.

그런데, 오조룡보다 두 개의 발톱이 더 많은 칠조룡(七爪龍)이 우리나라의 여러 곳에 존재하고 있다. 흥선 대원군이 복원한 경복궁 근정전의 천장에 설치돼 있는 칠조룡(七爪龍)이 그렇고, 고종이 원구단 옆에 축조한 황궁우의 천장에도 칠조룡이 조각되어 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오랜 세월 동안 중국의 속국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데 대해 조선의 자존을 강조하려했던 대원군과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의 마음을 칠조룡의 설치에서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근정전과 황궁우에 있는 칠조룡은 황룡이다. 황룡은 예로부터 황제를 상징한다. 용 중의 최고는 그래서 황룡으로 일컬어진다.

용은 청용, 적룡, 황룡, 백룡, 흑룡의 다섯 가지 색깔의 용으로 구분된다. 용중의 으뜸은 황룡이지만, 특히 흑룡과 적룡은 황룡에게 대적할 만큼의 강한 기운을 기자고 있다고 여겨진다. 색 가운데 흑색은 모든 색의 통합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어느 색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강직함과 고귀함의 뜻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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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서울캠퍼스 정각원 법당 천장위에 새겨져 있는 칠조쌍흑룡 조각(사진 위). 아래 사진은 상세도.

그런데 우리나라에 일곱 개의 발톱을 가진 흑룡이 존재한다. 옛 경희궁의 본전이었던 숭정전의 천장에 흑룡 칠조룡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숭정전은 지금은 서울 동국대학교 캠퍼스 안에 보존돼 있으며 부처님을 모신 정각원 법당으로 활용되고 있다.

황제 대신 부처님을 모신 정각원 천장에 칠조흑룡이 설치돼 있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임진년 흑룡의 해를 맞으면서부터다. 황룡이 아닌 흑룡이라는 점이 특히 눈길을 끈다. 7개 발톱을 가진 흑룡이 서울 한복판 동국대학교 정각원 천장에 보존돼 있다는 사실이 입소문을 통해 알려지면서 최근 정각원 법당을 찾는 발길이 늘어나고 있다.

정각원의 칠조룡은 광해군이 모신 것으로 유독 조선의 자주에 관심이 많았던 광해군의 독립자주정신이 투영된 것으로 여겨진다. 중국의 황제를 상징하는 황룡을 제압할 수 있는 흑룡을 설치한 것, 오조룡이 아닌 칠조룡으로 조각을 한 것에서 광해의 신념과 기개, 결단을 읽을 수 있다.

흑룡의 해 임진년은 역사적으로 큰 사건이 많았다. 고구려의 낙랑 정벌(52년), 신라의 우산국 정벌(512년), 고려의 강화천도(1232년), 조선의 임진왜란(1592년) 그리고 60년 전인 1952년도 역사상 가장 끔찍한 동존상잔의 비극이었던 한국전쟁이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던 시기였다.

그리고 맞이하는 2012년 흑룡의 해 임진년. 우리 민족 앞에는 두 개의 큰 과제가 놓여 있다. 4월 총선과 12월 대선에서 우리 민족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나라와 민족의 명운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갈림길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흑룡의 해라고 해서 변고만 있다는 법은 없다는 것이 역술가들의 설명이기도 하다. 특히 올해는 윤달인 3월이 용의 달, 즉 진월(辰月)이므로 용의 해에 용의 달까지 겹치는 쌍룡제회(雙龍際會)의 운세이므로 그동안 미뤄왔던 큰일을 조화롭게 해결하기에 오히려 좋은 기회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국대 정각원 법당 천장에 새겨진 국내 유일의 ‘쌍칠조흑룡’의 출현은 상서로운 조짐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민주주의의 급격한 후퇴, 공정과 공평, 정의와 도덕이 사라진 세태 등 민족의 미래를 위협하는 나쁜 기운들을 위대한 선택을 통해 일소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을 것이다.

1월 7일 정각원 첫 새해법회에서 정각원장 법타 스님은 설법을 통해 임진년 새해의 4자성어로 ‘기룡무천(騎龍舞天)’을 제시했다. 7조(七爪) 쌍흑룡을 타고 하늘에서 멋지고 아름답고 모두가 행복한 춤을 추며 온 법계를 두루두루 즐긴다는 뜻이다.

법회를 마치며 정각원의 사부대중들은 간절한 합장과 함께 흑룡의 해 임진년을 맞는 기도발원문을 낭독했다.

“쌍흑룡의 해,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 가르침 속에서 화합하고 거룩한 소망들을 낱낱이 성취함으로 행복한 삶 되도록 정각원 법당 위의 7조쌍흑룡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손 모아 부처님께 간절히 기도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