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법, 승(佛法僧)!

가산당 지관 대종사의 마지막을 지키려 동참한 수천 사부대중의 외침과 함께 법구가 안치된 연화대에 불이 붙었다. 대종사의 80년 노구가 불길과 세연의 마지막 흔적을 지우는 순간이었다. 거화(擧火) 의식에 나선 제자 스님들은 불을 붙이는 순간 누구랄 것도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외쳤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어서 나오세요.” “어서…”

불길이 치솟는 연화대를 지켜보는 보살님들(여성불자들)의 눈가에 물기가 고였다가 이내 흘러내렸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부울…” 치솟는 물길과 연기로 고(苦), 무상(無常), 무아(無我)의 마지막 무언법문을 내리는 한국 최고의 학승을 사바세계에 남은 중생들은 그렇게 배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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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화의식이 진행되고 있는 가산당 지관 대종사의 다비식 장면. 사진=조계종 제공

혜등서거(慧燈西去)! 지혜의 등불로 우리 곁에 오시어 80년을 머물며 고구정녕한 가르침을 언행으로 펼치시던 대종사는 그렇게 서쪽 극락정토가 가시고 있었다. 떠나시고 난 다음에서 비로소 대종사의 한 없이 큰 빈 자리를 깨달은 중생들은 ‘속환사바(速還娑婆, 속히 이 사바세계로 다시 돌아오시라는 뜻)’를 외치고 있었다.

부처님과 똑 같은 시간을 사바세계에 머물다 지난 1월 2일 입적에 든 가산당 지관 대종사의 영결식과 다비식 6일 오후 경남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에서 엄수됐다.

대종사의 육신이 한줌의 재로 돌아간 것이다. 남은 것은 그가 평생 경영해 보였던 자비로운 미소와 중생을 향한 부단한 정진이었다. 타고난 학문도, 강단 있던 행정력도, 다시는 볼 수 없는 세계로 그는 건너갔다. 때는 1월 6일 오후 1시 30분, 장소는 앞서 성철 스님과 혜암 스님이 무(無)로 돌아갔던 곳과 같은 장소인 해인사 연화대였다.

다비식에 앞서 해인사에서 오전 11시부터 열린 영결식에는 1만여 명의 사부대중이 운집했다.

5차례의 타종과 함께 시작된 영결식엔 그의 넓은 반연을 말해주듯, 북한 불교계와 대만, 캄보디아 불교계 등뿐 아니라 이웃 종교에서 보낸 조전과 조문객,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부대중 등 1만여 불자들이 함께 했다. 의식에 이어 먼저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금관문화훈장을 영전에 바쳤고, 고 노무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원혜영 민주통합당 대표, 심상정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등 여야의 정·관계 인사들도 참석해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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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에서 봉행된 지관 대종사의 영결식 장면. 1만여 사부대중이 동참, 스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애도했다.

조계종 종정 법정 대종사는 법어를 통해 “누가 이 빈자리를 채우겠는가? 정안(正眼)과 현기(玄機)를 갖추지 않고는 빈자리를 메울 수 없다”며 운집한 대중들을 향해 “얼굴이 없는 늙은이가 진흙소를 거꾸로 타고 꽃 한 송이를 들고 다가서고, 달을 문 학 한 마리가 공겁(空劫) 밖으로 날아간다”는 의미심장한 게송을 던졌다. “창천(蒼天), 창천이로다!” 법전 종정스님의 마지막 할(喝)에 놀랐는지, 지관대종사의 법구가 가야산으로 들어오던 날, 하얗게 세상을 덮었던 서설처럼, 영결식 날 오전에 흩뿌리던 눈발도 멈췄고, 하늘은 푸르렀다.

영결식을 마친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은 대종사의 영정과 법구를 들고 4㎞ 떨어진 연화대를 향해 이동했다. 행렬의 제일 앞은 대만 불광산사 성운대사가 직접 써서 보내온 ‘慧燈西去’라고 쓴 가로 만장이 자리했고, 그 뒤로 스님의 영정사진과 법구가 뒤따랐다. 법구 뒤로는 가산당 지관대종사의 문도들과 조계종의 어른 스님들, 스님과 불자, 그리고 1500여개에 이르는 만장이 용(龍)처럼 긴 행렬을 이루며 따랐고, 그 뒤로도 끝을 알 수 없는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한편 가산당 지관대종사의 다비식을 장엄했던 1500여 만장은 대종사가 교수와 총장으로 재직했던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기증됐다. 동국대 박물관은 지관 대종사의 위덕을 기리는 만장이 사료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 기증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철 스님의 만장도 지난 해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전시회를 가진 바 있다.

가산당 지관 대종사가 한 줌 재와 함께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사리는 1월 7일 오전에 봉행될 습골(拾骨)을 통해 확인된다. 스님의 초재(첫 7일 재)는 스님의 주석처였던 경국사에서, 49재는 합천 해인사에서 봉행된다.

<지관 대종사 마지막 가시던 날(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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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을 쓰는 불자들. 강호의 제현들이 저마다 갈고닦은 솜씨로 일필휘지 지관대종사의 입적을 애도하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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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을 지키고 있는 스님. 스님의 표정이 모든 것을 초탈한 도인의 모습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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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장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서있는 불자들이 분향소가 마련된 보경단 계단에 빼곡이 줄지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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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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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을 마치고 다비장 연화대로 이운을 시작한 지관 대종사의 법구. 대만 불광산사 성운대사가 직접 써서 보내온 '혜등서거' 가로 만장이 이운행렬의 맨 앞을 장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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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의위원장을 맡은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집행위원장 해인사 주지 선각스님이 이운행렬의 선두에서 행렬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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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관대종사의 법구를 이운하고 있는 스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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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장으로 옮겨지는 이운행렬을 뒤따르고 있는 스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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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 행렬. 이 만장들은 지관대종사가 오랜 기간동안 교수로 재직했고, 총장을 역임한 동국대학교의 박물관으로 기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