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종이 범패-탱화가 아닌 설법대회를 연다?

조계종과 한 뿌리를 갖고 있는 전통종단이며 두 번째 종단으로 일컬어지는 태고종은 영산재로 대표되는 범패와 바라춤 등의 재의식과 불화단청으로 대표되는 불화의 전통성과 정통성을 가진 종단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태고종과 그 소속 스님들과 신도들에 대한 선입견은 설법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님들은 나비춤 추고 범패를 부르는 모습, 신도들은 그런 장엄한 의식에 동참 합장으로 간절히 기원하는 모습이 태고종 하면 떠올리게 되는 대체적인 상징들이다.

물론 태고종이 그 정통맥을 잇고 있는 불교의식과 문화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불교의식이나 전통문화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그보다 더욱 근본적인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설법에 있음은 두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태고종의 종립대학 동방불교대학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올해로 27번째 설법대회를 가진 것은 그래서 매우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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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대회에 나선 6인의 초보 부루나들. 왼쪽부터 법문스님. 김태옥씨, 김지영씨, 현서스님, 원선스님, 박광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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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대회가 벌어진 신촌 봉원사 설법전. 차가운 겨울날씨인데도 이날 설법대회장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찼다.

동방불교대학 2011년도 졸업행사에서 설법대회가 벌어진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12월 17일(토) 태고종 총본산 신촌 봉원사 설법전을 찾았다.

태고종에서 설법대회를 연다는 것이 낯설었기에 호기심이 발동한 탓이고, 한 불교종단의 미래는 설법의 중요성을 깨닫는 데 있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었다. 더구나 날이 갈수록 불교계 주요종단들이 각종 재의식에 사찰재정을 의지하고 전법의 중요성을 망각하는 현상이 드러나고 있는 시점에서 태고종 종립대학이 개최하는 설법대회의 의미와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불교언론으로서 반드시 챙겨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도 있었다.

첫 설법에 나서는 예비 부루나들의 떨리는 첫 발걸음

토요일 오후 봉원사에는 많은 사부대중이 모여들었다. 동방불교대학 승가학과와 불교학과 학생들의 설법대회와 범패학과 학생들의 시연회를 지켜보려는 불자들이 아침부터 봉원사를 찾은 것이다.

11시 30분부터 시작된 설법대회에 학생들을 지도한 불교학과장 김재영 교수와 승가학과장 수암 스님이 인사말을 했다.

“조선불교 유린된 원인은 세력이 부진한 탓이며, 세력이 부진한 것은 포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에게 전도하면 한 사람의 세력이 느는 것이고, 두 사람에게 전도하면 두 사람의 세력이 느는 것입니다. 교리가 불교의 만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는 종교도 악착스레 노력하여 그 뜻을 펴고 있는 터에 현묘광대한 불교로서 어깨가 쳐지고 머리가 움츠려져 기를 펴지 못하고 있으니, 누구 탓입니까?”

두 교수의 말씀에 참가자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행사의 중요성에 비례해 동방불교대학장 영우 스님과 태고종 총무원장 인공 스님이 자리를 함께 하며 설법대회에 나설 6인의 ‘법사’들을 격려했다. 영우 스님은 “설법대회는 부루나 존자의 뒤를 잇는 예비 부루나들이 지난 2년 간 각고의 노력으로 갈고 닦은 수행정진의 결과를 세상에 드러내는 첫 포교의 장”이라고 격려했고, 인공 스님은 “오늘의 이 자리가 포교의 첫 발걸음이라 생각하고 기탄없이 지난 2년 간 배운 정진의 결과를 맘껏 펼쳐보라”고 치하했다.

뜨거운 열기 속 6인의 초보 부루나 법을 설하다

드디어 설법대회의 막이 올랐다. 치열한 예선을 거쳐 선발된 여섯 명의 학생들의 표정은 상기되어 있었다. 스님 셋, 우바이 둘, 우바새 하나 등 총 6인은 군인과 재소자, 대학생, 청년, 직장인, 초보불자, 중년불자로 설법상대를 정해 차례로 설법에 나섰다. 2백여 청법대중은 법사가 설정한 설법주제에 따라 때론 군인이 되었고, 재소자가 되었으며, 대학생과 청년, 초보불자와 중년의 불자가 되어 조응했다.

자신이 경험한 군생활을 회상하며 “얼차레를 당할 때에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그 고통을 이겨내라”며 인욕의 가르침을 강조한 박광근 법사, 앙굴리말라의 예를 들며 참회의 참의미를 설명하고 “죽을날만 기다리며 실의에 빠져있던 어느 사형수가 천수경의 죄는 마음따라 일어나고 마음따라 사라지는 것이라는 천수경 법문을 듣고 참회와 희망의 삶을 살아가며 진솔한 글을 써서 상도 타고 상금을 새생명을 살리는 재단에 기부했다”며 재소자들에게 삶의 희망을 불어넣어 준 비구니 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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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원장상을 수상한 원선스님의 설법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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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려상을 수상한 현서스님.

스님, 대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쉽고 현대적인 언어로 자등명 법등명을 설명하며 취직준비와 경쟁의 정글에 내쳐져 있는 대학생들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불어넣어준 우바이 김태옥 법사, 권력과 영화가 보장된 고따마 싯다르타가 세속적 보장을 물리치고 보다 더 큰 가치의 실현을 위해 출가해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승이 된 것처럼 젊은이들도 눈앞의 이해와 이권에 흔들리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으며 가치가 있는 일을 선택해 보람찬 인생을 살아가라는 내용을 법문을 한 비구 법문스님, 직장인 영수씨를 등장시켜 직장에서 부처님의 사섭법을 실천해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는 평범한 교훈을 청중들과 호흡하며 설득력 있게 풀어낸 우바이 김지영 법사, 미국의 저명한 기업가이자 자선가인 록펠러가 사실은 악덕기업인이었으나, 한 병원 벽에 붙어 있던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훨씬 더 큰 복을 받는다’는 구절을 보고 마음을 돌려 마침 병원비가 없어 발을 구르는 소녀의 치료비를 몰래 지불하고는 큰 기쁨과 행복을 느낀 끝에 세계에서 최고의 자선가가 되었으며, 늘 기쁨과 보람, 행복한 삶을 산 덕에 1년 시한부의 삶을 선고받았지만 98세까지 장수했다는 실화를 들며 보시의 공덕을 강조한 비구 원선 스님의 법문이 뜨거운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 됐다.

종정상 김지영 학생…김재영 교수 “놀랄만큼 수준 높아졌다”

이윽고 심사시간. 심사 기준은 법문의 내용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부합하는가(50점), 설법의 태도-용어-제스쳐(30점), 청중의 반응(20점)으로 세분화해 채점한 결과 불교학과 김지영 학생이 1등인 종정상을, 승가학과 원선 스님이 2등상인 총무원장상을, 승가학과 법문 스님이 3등인 동방불교대학장상을 각각 수상했다. 나머지 3인의 학생들도 근소한 차로 순위가 밀렸지만 우열을 가리지 못할 정도로 막상막하의 설법대결을 펼친 것을 감안해 3인 모두에게 장려상이 수여됐다. 상의 이름은 달랐지만 모두가 우승을 한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시상식이 끝난 뒤에도 6명의 초보 부루나들의 표정이 한결 같이 밝은 것은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만인 앞에서 입증해 보였다는 자부심 때문이었다.

이들을 가르치고 심사한 김재영 교수는 “놀랄 만큼 설법의 수준이 높아졌다”며 “이런 정도라면 언제 어디서든 훌륭한 법사로서 활동할 수 있다”고 치하했다.

설법대회를 지켜본 동방불교대학장 영우 스님은 “교육환경 등 모든 것이 부족한 현실에서 최선을 다해 학생들을 가르쳐주신 교수님들께 감사드리고,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며 “앞으로 불교학과와 승가학과 졸업예정자들은 오늘의 소중한 인연을 깊이 간직하고 동방인과 태고종의 자긍심을 높이 세워 전법과 포교의 일선에서 힘껏 뛰어주기를 당부한다”고 격려했다.

‘재(齋)받이’가 되는 것만으로는 종단과 불교의 미래가 없다,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전하는 설법만이 한국불교의 미래를 밝게 할 수 있다는 김재영 교수님과 교학처장 하춘생 교수의 당부를 가슴에 간직하며 지난 2년 공부에 전념해온 동방불교대학 학생들은 설법대회가 끝난 후에도 바로 귀가 또는 귀사하지 못하고, 동방불교대학 교학처를 찾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사제지간에 풍겨 나오는 훈훈한 정이 살을 에는 듯한 겨울삭풍을 멀리 안산 뒤쪽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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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인연 있는 곳 찾아서
부처님의 높은 가르침 전하겠다”

크게보기설법대회 종정상 우바이 김지영 학생

“교수님들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열심히 했을 뿐인데, 이렇게 큰 상을 받았어요. 교수님들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내주신 숙제를 한 것인데…. 종정상을 받다니, 말할 수 없이 기뻐요.”

태고종립 동방불교대학 설법대회에서 대상인 종정상을 수상한 김지영 학생(49. 청주시 거주)은 대상수상이 믿기지 않는 듯,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남편을 따라 함께 동방불교대학에 입학해 불교공부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고,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진 것 같다며 해맑은 표정을 지은 김지영 씨는 “설법의 내용이 좋았고, 표현도 훌륭했다는 심사평에 큰 용기를 얻었다”며 “앞으로 인연 있는 곳을 찾아 부처님의 높은 가르침을 전하는 전법사의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다니는 절의 주지스님 추천으로 동방불교대학에 입학했다는 김지영 씨는 절에 다닌 지는 오래 되었지만, 그냥 기도를 하는 평범한 보살로서 오갔을 뿐이라며, 동방불교대학 통신반에 등록해 인터넷을 통해 열심히 강의를 듣고, 매월 출석수업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나오다보니 불교의 깊이와 교리의 심오함에 조금씩 매료되고 있다고 밝혔다. 공부를 할수록 이 좋은 가르침을 이웃에게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는 그는 “전법이나 포교는 특별한 원력을 세워서가 아니라 좋은 가르침을 제대로 바르게 알아가면 저절로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직은 어떤 곳을 찾아 설법을 하겠다는 계획은 세워놓지 않았지만, 가까운 군법당이나 학교 등을 찾아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생각이라는 김지영 씨. 그녀의 화사한 웃음에 겨울햇볕이 더욱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