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종기자
urubella@naver.com 2011-11-04 (금) 20:57가피와 은총을 어떻게 볼 것인가?
어쩌면 불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그러면서도 왠지 가피를 추구하면 정법에서 멀어지는 것만 같은 의구심을 갖는 주제를 놓고 법문을 듣고 묻고 답하는 법석이 열렸다.
법림 대중법회(지도법사 이제열 법사)는 11월 3일 ‘가피와 은총’을 주제로 사간동 태고종 한국불교전승관 1층 법당에서 제5회 법회를 봉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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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법림법회에서 가피를 주제로 법문을 하고 있는 적연 이제열 법사. 사진=김진호 기자
“어떤 사람이든 일구월심 원을 세우면 그 원은 언젠가는 이루어진다. 다만 시간의 문제이다. 불교에서의 원은 대원을 의미한다. 소소한 일을 이루기 위한 소원이 아니라 범위가 큰 원, 나보다는 중생이 잘 되기를 바라는 원, 중생의 근원적 고통이라고 할 수 있는 생사에서 벗어나겠다는 원”이라고 원의 의미를 정리한 이제열 법사는 “그러나 현재 한국불교의 신앙형태는 경전에서 말하는 대원이 아니라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이런 소소한 원에도 가피가 있는가?”라고 물은 이제열 법사는 “저는 이런 원들은 부처님의 정법에는 어긋나는 것이며, 합격발원과 같은 것에 부처님께서 가피를 내려준다는 식의 기도 같은 것은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가피에는 세 가지, 즉 첫째, 부처님으로부터 가피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받는 가피, 둘째는 모르고 받는 가피, 셋째는 본래의 가피가 있다”고 설명한 이제열 법사는 “알고 받는 가피는 현재 부처님의 가피를 누리고 있다는 것, 모르고 받는 가피는 현재 가피를 받고 있는 줄 모르고 받는 가피, 본래 가피는 이 세상 자체가 부처님의 가피 속에 본래 들어 있는 가피”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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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에 앞서 봉행되는 예경의식에서 향과 차, 꽃 공양을 올리고 있는 법림 법우들.
“경전에서는 일체중생이 다 부처님의 가피 속에 존재한다고 본다”고 전제한 이제열 법사는 “세상 사람들은 돈이 떨어졌는데 돈이 생겼다든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든가 하는 현상의 일로 가피의 기준을 삼지만, 불교의 가피는 불교를 믿던 믿지 않던 다 가피 속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며, 평소의 삶 자체가 그대로 가피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진정한 가피임을 알아야 하고, 진정한 가피를 아는 사람은 새삼스럽게 가피를 구하지 않는다”고 설파했다.
“태어나서 이루어지는 모든 살림살이가 가피임을 알아야 하고, 가피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열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 이제열 법사는 “가피는 자기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그러므로 기도를 통해서 가피를 얻었다는 것을 어떤 절대적 존재가 어떤 것을 해준다는 식의 착각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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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림 대중법회의 진지한 법회 장면. 정법불교를 표방하는 법회인 만큼 시종일관 법에 관한 열기 속에 진행되는 것이 법림법회의 특징이다.
“진정한 가피는 자신의 변화에서 온다. 자신의 삶의 태도를 180도 바꿔 부처님 같은 삶을 살아갈 때 가피가 실현된다”고 설명한 이제열 법사는 “그런데 중생의 내면에 숨어 있는 부처님의 은혜와 가피를 끄집어낸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제열 법사는 가피 3가지 길을 제시했다. 첫째 부처님에 대한 믿음 부처님께 의지하는 힘에 의해서 우리는 중생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찰나에 전개되는 모든 삶을 어떻게 속박당하지 않고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가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가피 속에서 가피를 성취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들음에 의한 가피를 제시했다. 들음에 의한 가피는 설법에 의한 가피이며 법문을 들음으로써 가피를 얻는다는 것이다. 믿음에 의한 가피는 설법에 의한 가피를 위해 필요한 것이며 들음의 가피는 지혜를 주고 어리석음을 깨우치게 하며, 속박에서 해탈로, 어리석음에서 지혜로 바뀌게 해주는 것이 바로 들음의 가피라는 것이다. 이제열 법사는 “한국의 불자들은 믿음에 의한 가피는 있어도 들음에 의한 가피는 거의 없다. 믿음의 가피는 힘을 주지만, 들음의 가피는 지혜를 준다”고 덧붙였다.
세 번째는 증득에 의한 가피를 제시했다. 이는 깨달음에 의해 감정, 육체, 갖가지 인연사에 의한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내면의 자유, 마음의 자유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마음이란 보고 듣는 흐름 속에 묶여 살고 있다. 우리의 마음이란 격하게 흐르는 홍수와 같다. 중생의 마음이란 엄청난 파도와 함께 매우 빠르게 흘러내려가는 흙탕물, 오염된 물이 격랑을 일으키면서 빠르게 흘러가는 것과 같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가피가 바로 증득의 가피”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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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법회에 이어 특별 출연해 환타지 '강강수월래'를 연주하고 있는 퓨전피아니스트 윤강욱 법우.
이제열 법사는 부처님의 가피를 얻는 방법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력이란 삼학, 팔정도, 육바라밀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을 닦지 않은 채 절에 가서 스님의 기도로 어떤 가피가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고 하는 신행행태를 깨뜨려야 한다는 주장에 대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동의를 구했다.
이어 열린 즉문즉답에서는 다양한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49재에 대해 설명해 달라.
“먼저 중생의 구조에 대해 알아야 한다. 중생의 몸은 지수화풍 사대로 이루어져 있고, 마음은 수상행식이로 이루어져 있다. 수상행식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식이다. 식은 물과 같은 것이고 수상행은 물결과 같은 것이다. 죽을 때는 4대가 끝나고, 4대가 끝날 때 수상행이 같이 끝난다. 목숨이 끝어짐과 함께 식도 끝이 나는데, 그냥 끝나지 않고 끝이 났다가 새롭게 시작한다. 마지막 죽을 때의 마음을 삼홀식이라고 하고, 바로 새로운 물질과 함께 결합을 해서 재생식이 일어난다. 그래서 이 식을 재생연결식이라고 한다. 귀신이든 혼령이든 다 몸뚱어리가 있다. 그 몸뚱어리가 미세해서 보이지 않고 벽을 뚫을 만큼 미세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식은 머무름 없이 새로운 몸을 받는다. 그러므로 죽고 나서 혼령이나 영혼이 일정기간 머문다는 것은 불교의 교리상 합당하지 않다. 영혼이 몸을 받지 못하고 떠돌다가 49일째 되는 날 새로운 몸을 받는다는 주장도 맞지 않다. 지장경이나 유가사지론 등에 보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후에 만들어진 논서이자 경이다. 이런 논리는 언젠가는 개혁되어야 할 대상이다. 불교에는 심판이란 것이 없다. 판관제도나, 49재에 재판을 한다는 것은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 49재의 대상은 일단 귀신의 몸을 받고 새롭게 태어난 존재를 대상으로 한다. 6도 가운데 아귀계가 바로 귀신계이다. 사람이 죽으면 80%가 귀신의 몸을 받는다고 한다. 나머지 20%는 천상에 나든, 지옥에 나든, 축생에 나든 다음 생이 결정된 것들이다. 이 귀신들은 귀신으로 있다가 새몸을 받는다. 새몸을 받는 시기는 각각의 업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그 시기를 49재 등으로 고정화 시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49재에 얽매이지 마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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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이 끝난 후 시작되는 즉문즉답 시간은 법림법회 만의 독특한 프로그램이다. 법우들이 법문과 관련된 내용을 포함해 불교 전반에 대한 의문을 질문하면 이제열 법사가 즉답으로 의문점을 해소해주는 최고의 시간이기도 하다.
-부처님의 가피를 받으려면 어떻게 기도해야 하나?
“기도를 할 때 그 원이 되도록 대원이어야 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한 원을 세워야 한다. 자신과 가족 등 좁은 범위로 원력을 세우지 말고 기도의 폭을 넓혀라. 그 폭을 넓혀 중생과 우주적인 큰 원을 세우고 기도해라. 그리고 끊임없이 기도하되 반드시 수행과 연결을 시켜라. 어떤 몸이 아픈 사람이 지장기도를 했다. 그는 내 몸뿐만이 아니라 몸아픈 모든 중생이 다 낫도록 기도를 했다.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나와 지장이 둘이 아닌 경지에 올랐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기도와 대원의 관계다. 자기 자신이 기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복 있는 스님, 복 있는 사람이 있고 복이 없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하나.
“나는 마음을 잘 타고 난 사람이 복이 가장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을 잘 타고 난 사람은 어떤 난관도 잘 극복하고 훌륭하게 살아간다. 또한 인연이 좋은 사람이 복이 많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자유인,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이 복이 많은 것이다. 재화의 다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인간 세상에서만 수행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
“천상에서는 너무나 행복하고 편해 수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축생계나 지옥계에서도 도를 닦을 여건이 안 된다. 인간세가 수행을 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니, 인생난득 불법난봉의 말씀을 잘 새겨듣기 바란다.”
-법사님께서는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믿는가?
“믿는다. 관세음보살보문품에 보면 어떤 난관에서도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벗어난다고 한다. 불속에 들어서도, 물에 빠졌어도, 감옥에 갇혔어도, 벼랑에서 떨어져도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다 구해준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잘 봐야 한다. 사람들은 대개 탐욕의 불, 어리석음의 물, 마음에 속박에 빠져 있다. 이 때 한 생각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탐욕과 어리석음, 속박에서 벗어나게 된다. 따라서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잘 읽어야 한다.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현상으로 연결시키지 말고 마음으로 연결시켜보라. 그러면 관세음보살의 가피가 실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법문이 끝나자 법회 동참 대중들의 기쁨과 감사의 박수를 오래 동안 스승 이제열 법사를 향해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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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가 끝나면 모든 법우들은 부처님 전에 삼보발원문을 올리며 부처님의 정법제자로서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삼보발원문과 반야심경 봉독을 끝으로 가을이 짙어가는 날 밤의 열린 정법 법석 법림 대중법회는 원만하게 회향됐다.
다음 제6회 법림 대중법회부터는 장소를 옮겨 오는 12월 4일(일) 서울 동국대학교 대각전에서 봉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