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자인 불교사회연구소 소장 법안 스님이 “포교 공동화 현상을 차단하고 지역 내 영향력 확보를 위해 교구 내 중대형 사찰을 시군구를 대표하는 ‘지역거점전략사찰’로 선정해 지역을 책임지게 하는 조직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이준엽 호남불교문화원 기획실장이 대형마트를 예로 꼽으며 ‘지역거점전략사찰’ 지정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이준엽 실장은 “대형마트가 들어서면 문을 닫는 구멍가게가 속출하듯이 지역에서는 거점전략사찰이 신도들을 흡수하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거점전략사찰을 지정하기보다 종단 차원에서 군단위 이상 도시에 가톨릭회관이나 YMCA와 같이 대사회활동을 겸하는 불교회관을 건립할 것을 제안한다”고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이번 토론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도시 지역에서 심각한 포교 공동화 현상으로 불교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현재의 교구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은 한 불교의 위상 추락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란 공감대 속에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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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교구 활성화를 주제로 열린 10월 26일 불교중흥대토론회 발제자와 토론자들. 가운데가 법안스님, 맨 오른쪽이 이준엽 실장이다. 사진=조계종총무원 제공

조계종 승가교육진흥위원회(위원장 자승 스님)가 지난 10월26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지역불교 활성화를 위한 교구의 역할’을 주제로 개최한 대토론회에서 법안 스님은 발제를 통해 “각종 통계지표를 보면 서울과 부산, 대구를 제외한 광역시급 대도시와 중소형 도시에서 심각한 포교 공동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전통적으로 산중에 위치한 사찰이 도시화되는 시대적 상황에 제대로 조응하지 못한 결과로 종단과 교구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고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했다.

법안 스님은 지난 2010년 불교미래사회연구소가 발표한 ‘조계종 교구활성화 방안 연구보고서’를 인용해,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을 비롯해 인천, 광주, 대전 등 대도시의 사찰 대비 인구수는 여타 지역에 비해 현저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해당지역에 교구본사가 없고, 주변에 여러 교구가 있지만 관할권에 대한 불분명함으로 인해 공동화 현상을 빚고 있다는 공통점이 발견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중앙종무기관과 교구본사, 중앙종회가 참여하는 ‘(가칭)교구획정위원회’를 설립해 불명확한 교구의 관할권이 신속하게 정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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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토론을 경청하고 있는 사부대중들.

이날 토론자로는 조계종 총무부장 영담 스님, 고운사 주지 호성 스님, 이준엽 호남불교문화원 기획실장이 참여했다. 이들은 현 교구제의 변화 없이는 한국불교 활성화는 불가능하다는 점에 견해를 같이 했지만 구체적인 해법에서는 약간의 차이를 드러내싿.

영담 스님은 제도의 변화에 앞서 사찰과 교구, 사부대중의 변화와 동참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으며, 법안 스님이 제기한 지역거점전략사찰 지정, 조계종지역연합회 결성 등의 제안은 지역불교 활성화를 위한 대안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담 스님은 또 교구의 관할구역을 현재의 행정구역에 맞게 재획정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하고, 교구 활성화를 위한 어떤 방안도 궁극적으로는 예산문제로 직결되는 만큼 생산불교를 통한 재원마련과 스님들의 부지런함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고운사 주지로 현직 본사주지이기도 한 호성 스님은 교구본사부터 하나의 사찰이 아닌 지역사회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인식개선이 필요하다며 거점사찰의 필요성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재가 토론자 이준엽 실장의 시각은 스님들과 달랐다. 이준엽 실장은 지역에서 조계종과 태고, 천태종 등 타종단 사찰과이 소통부재가 지역불교 활성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점을 들어 발제자 법안 스님이 제시한 조계종 지역연합회의 활성화는 고민이 필요한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교구본사에 1인 이상 상임포교사를 두도록 종법을 만들어 놓고 지키지 않는 현실, 거점 사찰이 신도들을 끌어들이는 블랙홀 역할을 해서 군소사찰을 어렵게 만들 수 있는 개연성 등에 대한 대책을 물었다.

이 실장은 발제문을 읽으면서 여전히 조계종으로 대표되는 한국불교는 ‘출가 수행자의 불교’라는 인식이 든다고 꼬집고 재가의 역할을 확대하는 고민이 더 있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실장은 교구발전을 위한 개선방안으로 ▲재가자를 위한 교육기관 설립 ▲교구별 불교총람 간행 ▲출재가를 망라한 교구 종도들의 연대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 개발 ▲교구별 특성을 반영한 슬로건 제정 ▲교구 브랜드화 등을 제시했다.

이 실장은 끝으로 어떤 일이든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적절한 임금과 근로복지 보장으로 인재를 모으고, 전문가 그룹을 양성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최저생활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턱없이 낮은 급여와 4대보험에도 들어 있지 않은 근무환경에서 무슨 발전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