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태종 이세민이 백제에 황칠 요청한 책부원구 기록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금칠갑옷 '명광개' 명칭 등장

북송(北宋) 시대 왕흠약(王欽若)과 양억(楊億) 등이 편찬한 백과사전인 <책부원구(冊府元龜)> 문헌에 “당 태종(이세민)이 정관(貞觀) 19년(645)에 백제에 사신을 보내 갑옷 곧, 산문갑(山文甲)에 입힐 금칠(金漆. 황칠)을 요청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정관 19년은 서기 645년으로 바로 백제 의자왕 5년이다.

그리고, 삼국사기 백제본기 권 제5 무왕(武王) 27년(626)에는

“(백제가) 당에 사신을 보내 명광개(明光鎧)를 바치면서 왈, 고구려가 길을 막고 상국(上國=당나라)에 조공하는 길을 막는다고 호소했다. 이에 (당) 고조(李淵)는 산기상시(散騎常侍)인 주자사(朱子奢)를 백제로 보내 조서를 내려, 백제와 고구려가 맺힌 원한을 그만 풀라고 달랬다. [二十七年, 遣使入唐, 獻明光鎧, 因訟高句麗梗道路, 不許來朝上國, 高祖遣散騎常侍 朱子奢, 來詔諭我及高句麗平其怨]”

라고 적혀있다.

명광개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당나라가 간절히 요청했을까

명광개(明光鎧)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당나라가 백제에게 긴히 부탁했을까?

명광개는 글자 그대로는 ‘빛을 발하는 번쩍거리는 갑옷’이라는 뜻이다.

갑옷에 광명(光明)을 주는 방법은 쇠나 가죽에다 광택나는 漆을 하는 것이다. 백제에서 당나라에 뇌물로 바쳤다는 명광개라는 전설의 갑옷은 바로 갑옷에다가 황칠(黃漆)을 입힌 것임을 위의 기록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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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대박물관의 공주 공산성내 성안마을 발굴조사과정에서 출토된 백제황칠갑옷의 모습. 사진=문화재청 제공.

그런데 그 실물이 최근 공주 공산성(사적 제12호)내 성안마을 발굴조사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 중국 등 동아시아에서 단연 으뜸을 차지했던 백제의 공예예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유물로 백제금동대향로에 버금가는 대 발견으로 기록될만하다.

역사기록에 나온 명광개 실물이 1366년만에 세상밖으로!

일반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황칠은 야생에서 자생하는 황칠나무에서 채취한 수액(樹液)을 가공한 칠이다. 통상 칠이라면 붉은빛, 검은빛을 내는 옻칠(漆)을 생각하기 쉽고 실제 이런 칠이 가장 흔했으나, 황칠은 그 희귀성 때문에 중국에서도 황제가 특별히 요청을 해왔을 만큼 탐을 낸 물품이다.

구당서(舊唐書) <동이전(東夷傳)> ‘백제 조’에는 “백제에는 섬이 세 개가 있으니 그곳에서 황칠이 난다. 6월에 칼로 그어 수액을 채취하니, 색깔은 황금색이다”라고 했다.

중국측에서 이렇게 백제산 황칠을 특별히 언급한 까닭은 그것이 중국에서도 구하기가 매우 힘든 특산품이었음을 뜻한다.

12세기초 계림유사-송나라 사신 서긍의 고려도경에도 황칠등장

이 황칠은 고려시대에서도 그냥 칠로 대표될만큼 한국칠이다.

12세기 초 고려 숙종 때 송(宋)나라에서 보낸 사신으로 온 손목(孫穆)이 지은 <계림유사(鷄林類事)>에는 당시 고려말을 사전처럼 적어놓았는데 그 중에 “칠을 (고려사람들은) 황칠이라 부른다(漆曰 黃漆)”라고 적고 있다.

또, 같은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에 왔던 서긍(徐兢)도 그 유명한 책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황칠이 나주(羅州)의 조공품이다”라고 적었다. 나아가 고려의 “황칠은 섬에서 생산되는데 6월에 수액을 채취하니 그 빛깔은 금과 같으며 볕에 쬐어 건조시킨다. 본래는 백제에서 났으나 지금은 (중국의) 절강 사람들은 이를 일러 ‘신라칠(新羅漆)’이라 한다”고 했다.

따라서, 삼국시대에 황칠은 백제의 도서 지역 생산품이 중국에 알려졌으며 그 전통이 고려시대까지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황칠은 고대 동아시아에서는 오직 한반도 남부해안에서만 생산

고대 동아시아 세계에서는 오직 한반도 남부 해안지대에서만 생산되던 '전설의 도료' 황칠의 존재가 이번 명광개의 출현으로 입증된 것이다.

지금도 전남 해남, 강진, 영암 등에서 황칠나무가 자라고 있고 활용되고 있다.

이번 공산성 유적내에 있는 저수시설의 마무리 조사과정에서 출토된, 서기 645년을 가리키는 명문(貞觀 十九年銘)이 있는 최고의 옷칠된 가죽 갑옷(찰갑:비늘모양 갑옷) 1령이 갖는 의미는 실로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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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의 연대를 알 수 있는 분명한 명문이 함께 발견되어 역사의 기록과 유물의 명문이 일치되는 믿기지 않는 일이 현실로 벌어졌다.

공주대 박물관은 지난 3월 말부터 공주시의 의뢰로 공산성 내 성안마을에 대해 발굴조사한 결과 백제 왕궁관련 부속시설을 발굴한 바 있다. 그 결과 웅진천도 직후에 조영된 굴립주 건물지와 웅진-사비도읍기의 건물지, 저수지, 성토대지와 축대 등의 대단위 건물지군과 더불어 많은 양의 기와와 토기, 중국제자기, 화살촉 등의 유물이 출토된 바 있다.

원래모습 복원가능할 정도로 출토상태 대단히 양호

특히 옷칠된 가죽갑옷은 저수시설 바닥에 인접한 곳에서 출토되었는데, 매우 고급스럽고 화려하게 옷칠이 이루어진 것으로 원래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출토상태가 양호하다. 특히 검게 옷칠된 갑옷의 일정부위에는 붉은색의 글씨가 쓰여져 있는데 ‘**行貞觀十九年四月二十一日’이라는 기록을 통해 645년(당 태종 정관 19년)이라는 정확한 연대를 파악할 수 있다. 이밖에 ‘王武監’ ‘大口典’ ‘**緖’ ‘李*銀*’등의 명문이 확인되었다.

그동안 고대사회 갑옷은 쇠로 만든 판갑이 종종 출토돼 원형을 파악할 수 있었지만 찰갑(札甲)은 부속형태로만 나와서 구체적인 원형은 고구려 고분벽화를 통해서만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 백제시대 찰갑은 골제와 철제로 된 편만 일부 확인되었을 뿐 전체적인 정황은 파악할 수 없었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번에 공산성 백제왕궁 부속시설 내 저수시설에서 발굴조사된 백제시대 옷칠된 가죽갑옷은 우리나라 고대사회에서 확인된 가죽갑옷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일 뿐 아니라 그 형태를 복원할 수 있을 정도로 양호한 상태이다. 특히 갑옷의 제작 및 사용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645년(정관19년)이라는 기록은 함께 출토된 화살촉과 더불어 백제 멸망기의 정황을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 한국고대사 인식에 매우 중요한 지표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백제금동대향로에 비길 쾌거-명칭 '백제혁태칠명광개'가 어떨까

고대 백제의 공예예술은 이미 백제금동대향로(국보287호)를 통해 입증된 바 있다. 이번에 조사된 옷칠 가죽갑옷은 백제금동대향로에 비견될 수 있는 것으로, 백제 칠기공예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자료로 판단된다. 즉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백제의 공예수준이 최고에 달했음을 입중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능산리에서 출토된 금동대향로를 ‘백제금동대향로’라고 명명했듯이 이 황칠갑옷의 명칭을 ‘백제혁태칠명광개’로 부르면 좋을 듯 싶다. 혁태칠은 ‘가죽에 옷칠’이라는 뜻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강순형 보존과학연구실장은 명광개 출토와 관련 “그야말로, 글씨(명문)까지 있고 옻칠로 번쩍이는, 백제가 당에 보내 과시한 명품! 명광개(明光鎧)유물이 제대로 나타난 것”이라며 “더더욱 놀라운 것은 貞觀 19년이라는 연대 명문이 백과사전인 북송대에 저술된 <책부원구冊府元龜>의 ‘唐, 이세민 太宗이 貞觀 19년에 백제(645, 의자왕5)에 사신을 보내어 산문갑(山文甲=갑옷)에 입힐 금칠(金漆=黃漆)을 요청(要請)하였다’는 기록과 같은 때로, 역사기록과 유물의 일치라는 믿기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라며 큰 의미를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