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종기자
urubella@naver.com 2011-10-08 (토) 17:49
정목 스님과의 인연은 매우 오래 되었다. 스님이 <원효의 새벽>을 집필했을 때였던가, 기사작성을 위해 책을 받아 읽고는 평범한 스님은 아니시구나, 하는 마음을 냈었다. 정성껏 책소개를 했고, 스님으로부터 고맙다는 전화를 받았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서울에서 스치듯 한 번쯤 죈 것 같고, 1년여 전 쯤엔 부산의 홍법사에서 열린 한 지인 어머님의 49재에 참석했다가 우연찮게 만나뵈었던 기억이 있다.
이상하게도 정목 스님과의 인연은 끊어질듯 이어지고, 이어질 듯 끊어지기를 반복한다. 기자의 성격이 워낙 살갑지 못한 터라 그렇겠지만, 스님 또한 덤덤한 성품이시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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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책을 펴낼 때마다, 가능한 정성껏 소개를 하려고 했다. 스님께서도 그 마음을 아시는지, 홍법사에서 무척이나 반갑게 맞아주셨다. 겉으로는 밋밋하지만 속으로는 반가운 마음이셨던 것 같다.
기자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반 도인’이 되어서 척 모습만 봐도 대충 상대의 살림살이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스님의 모습이 그렇다. 바짝 마른 체구에 형형한 눈빛, 중생을 향한 절절한 연민 같은 것이 물씬 풍겨나온다. 스님은 한 마디로 염불수행자이시다. 일체를 아미타부처님으로 대하고 사시니, 그 눈빛과 몸짓이 어디 하나 자비 아닌 것이 있으랴!
염불삼매! 칭명염불을 지극히 하여 얻는 삼매입니다. 염불삼매는 자신이 무량한 광명 가운데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을 끊이지 않는 심적 상태입니다.
"정토의 경계는 광대무변하다. 아미타불의 광명은 무량광이요, 무량수다.”
여기서 단박에 믿음을 일으키고 환희심을 내면 전생에 보살의 종자를 심은 사람입니다. “그대와 나, 우리 모두는 부처님의 무량한 광명 안에 존재한다”는 이 말씀은 하근기에게 전하는 말이 아닙니다. 고도로 발전된 종교의 정수입니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를 뿐입니다.(34∼35쪽)
스님의 책 <일체가 아미타불의 화신이다>(비움과소통 펴냄)을 읽으면서 스님의 마음을 생각했다. 한 자 한 자 이 글을 써내려갔을 스님의 손 끝을 떠올렸다. 간절함, 정성스러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한 구절 한 구절이 격언으로 다가온다. 기자 또한 오랜 시간 동안 글을 써 왔기에 이런 문장을 쓰기가 얼마나 힘겨운 것인지 대략은 짐작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며, 군데 군데 밑줄을 긋고, 때론 접어서 표시를 해둔다. 신간을 들고 한달째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읽고 있는 중이다. 후루륵 읽어 버리면 그만인 책들이 지천이지만, 왠지 이 책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읽어나가다가는 되돌아가고, 다시 되돌아가는 일이 한 달 가까이 반복되고 있다.
책을 채 다 읽지도 못했지만, 더는 시간을 끌 수 없어 소개를 하기로 하고 자판을 두드린다.
어쩌면 이 책의 정수는 스님의 글 ‘여는 말씀’에 다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복과 지혜 증장하는 대승불교의 신행체계-신심-안심-발심-수행-정정취-회향-일심증득’이라는 제목의 글인 데, 한 문장 한 문장이 그대로 법문이다. 그냥 법문도 아닌 불법의 대의를 엑기스처럼 짜내어 써내려가듯 쓴 글이다.
부처님께서 전도명령을 내리고 당신께서도 우루벨라의 가섭 삼형제를 찾아가듯이, 문장마다에 간절한 연민과 자비심이 깃들어 있다.
“염불수행은 자신의 삶을 아미타 부처님의 본원력에 송두리째 맡김으로써 무아를 실현합니다. 염불은 현생이든지 내생이든지, 무명의 자아의식을 죽이고, 정토의 세계관으로 다시 태어나는 ‘죽어야 사는 법’입니다.”<여는 말씀 중에서>
이 책은 염불수행의 선지식 정목 스님이 들려주는 일심정토 염불수행법이다. 스님은 이 책에서 정토의 세계관은 ‘일체가 아미타불의 화신’임을 아는 것으로 정리한다. 이 깨달음을 법으로 삼아 모든 인연에 감사하고 보은하는 삶을 가치관으로 실천하는 것이 원효의 일심정토 염불수행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심정토 아미타 염불수행은 어떤 것일까? 내 안의 마음을 닦는 수행으로부터 일체경계가 일심임을 믿고, 우리들의 마음 밖에 불가사의한 일이 전개되고 있음을 자각한 깨달음의 방향전환이라고 스님은 강조한다.
이 길에 들어서 수행이 깊어지면 놀라운 의식의 변화를 체험하게 되고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도 달라진다. 은혜, 감사, 보은의 의미를 스스로 알게 된다는 것이다.
정목 스님에게 ‘나무아미타불’은 심금을 울리고 잠자는 불성을 깨우는 소리이다. 결국, 불교수행의 목표는 일심의 지혜를 증득하여 동체대비심을 실천하는 최상승의 수행법이다. 스님은 이 심금을 울리고 잠자는 불성을 깨우는 나무아미타불 소리를 모든 중생이 듣기를 원한다. 그래서 이 책도 쓴 것이다. 마치 혈서를 쓰는 것처럼. 책 곳곳에 들어가 있는 스님의 깡마른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심혈을 쏟아부었으면, 저리도 마르셨을까, 란 생각이 절로 든다.
정목 스님은 그동안 원효 대사의 방대한 저술을 번역하고 강의해 오면서 일심정토 염불수행의 이론 정립과 실천수행을 지속해왔다. 대승불교의 신행체계를 신심·안심·발심·수행·정정취·회향·일심증득으로 명확히 밝힐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정진의 결과물들이다. 스님께서는 평생의 정진으로 얻은 결론이지만, 이제 그것을 한 권을 책으로 엮어 중생들에게 회향한다. 그리하여 모든 중생들이 스님과 함께 일심증득의 길로 접어들기를 발원한다. 말 그대로 스님에게 있어 책의 출간은 동체대비의 발현에 다름 아니다.
자 그러면, 책속으로 들어가 보자.
“염불은 몸 안에 갇힌 마음을 닦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 마음인 경계를 바로 보는 수행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몸속에 갇힌 좁은 그것만이 아니라, 일체경계를 포함한 광대무변한 마음도 있습니다. 범부는 몸속에 갇힌 좁은 마음으로 육근의 창을 통해 밖을 바라봅니다. 그러므로 광대무변한 정토는 중생의 마음 밖에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정토는 멀다, 혹은 가깝다고 말하는 이유를 알 것입니다. 마음이 청정하면 ‘자연의 설법[無情說法]’을 듣습니다. 청정(淸淨)은 무욕(無慾)입니다. 관상염불로 경계를 깊이 관찰하면 창조력을 증대시킵니다. 이것이 다른 수행법과 다른 점입니다.”
“…온 우주가 한마음[一心]입니다. 이것은 믿기만 해도 이익이 있습니다. 믿기만 해도 자아니 무아니 하는 말들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생사와 열반이라는 말도 설 자리가 없습니다. 세계를 일심으로 바라보고 가장 긍정적이고 최상의 아름다움으로 바라보는 세계, 그것을 정토라 불러도 좋습니다.”
“…그대! 지금 무슨 말을 하는가요? 그대 앞에 전개된 저 꽃이며 가을 들판이며 저 생명들이 다 허망하고 꿈같아 슬프다는 말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대는 여기까지는 잘 왔지만 갈 길이 남았습니다. 정토의 문을 열어보시오. 공(空)에 들어있는 사람은 그 공으로부터 다시 나와서 보고, 공을 모르는 사람은 믿음으로 보시오. 그 허망을 자연의 청정광명, 생명의 청정광명으로 전환하는 의식의 혁명을 일으키시오.
“광명은 부처님 지혜의 모습입니다.”
“…염불은 “무량광 무애광(無量光 無碍光)”이라는 말씀에 진실한 믿음과 환희심을 일으키면 《금강경》의 한 구절보다 더 깊은 감동을 일으키고 환희용약(歡喜踊躍) 할 것입니다. 염불은 이해보다 진실한 믿음을 일으켜 온몸으로 감득하기를 요구합니다. 나는 이 감동을 말로는 어떻게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수행법은 어둠속에서 등불을 들고 가는 것과 같고 염불은 태양보다 밝은 광명의 세계를 걸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염불은 내면의 마음을 닦는 수행으로부터 불ㆍ보살의 경계를 관찰하는 깨달음의 방향전환입니다.”
“…인과, 연기, 일심을 믿고 이해하고 마침내 실천해야 합니다. 실천하는 그곳에 지혜와 복이 증장합니다. 어두우면 염불하고 밝으면 일해야 합니다.”
“…큰 깨달음은 이해하는 차원에서 더 나아가 망상 분별을 쉬고 주관과 객관세계가 사라진 경지입니다. 이와 같은 큰 깨달음은 단박에 성취하기가 어렵고 수행의 공덕을 쌓아야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단박에 꿈에서 깨어나기 어려운 것은 세계관의 오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습관의 업이 오랜 세월 동안 이어오면서 두텁기 때문입니다.”
“…비록 번뇌의 어둠에 쌓인 존재이지만 무량광명을 진실로 믿는 순간, 믿음과 기쁨과 태어남 없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어 즉득왕생(卽得往生)합니다. 이것은 육신의 임종이 아니라, 자아의 임종시에 일어나는 의식의 혁명입니다. 도리가 이러하니 자아의식을 죽이면 곧장 정토가 열릴 것입니다.”
“…어느 날 문득 부처님이 그리시고 원효 성사가 해설하신 지도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 지도는 황금이 가득한 곳까지 안내하였습니다. 길은 높고 멀지만 부지런히 걸어도 힘들지 않는 평탄한 도로였습니다. 자연의 광명을 만끽하며 기쁜 마음으로 오르다가 아래를 바라보니, 함께 작업하던 도반들은 그 자리에 있거나, 황금을 기원하는 재를 지내거나, 지쳐 쉬고 있었습니다. 권해도 듣지 않고 아상산의 메아리만 돌아왔습니다.”
요즘 보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곤 한다. 한번 읽어보시라고. 듬성듬성 읽지 말고 마음을 가다듬어 정성껏 읽어보시라고. 책을 읽은 이들 가운데 두어 명이 ‘좋은 책을 추천해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전해왔다. 그렇다. 이 책을 가장 잘 소개하는 것이라면? 마마도 그 답은 “꼭 읽어보십시오”가 아닐까 한다. 14,000원
*저자 정목 스님은?
정목 스님은 1987년 금정산 범어사에서 벽파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90년 자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법명은 정목(正牧), 법호는 백송(百松)이다. 91년 범어사 승가대학을 수료하고 강사 소임을 역임했다. 스님은 92년 전수염불 정진 중 염불삼매를 얻었으며, 98년 중앙승가대학교를 졸업한 해 하안거 정진 중에 관불삼매를 체험했다. 99년부터 2004년 4월까지 춘천의 소양강변에서 염불과 저술에 매진한 스님은 2004년부터 한국정토학회 이사로서 염불수행과 원효사상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2004년 경남 양산 오룡골에 정토원을 설립한 스님은 인터넷 다음카페 ‘아미타파’를 통해 전국에서 찾아오는 염불 수행자들을 온-오프 라인을 통해 동시에 지도하고 있다. 스님은 ‘밝으면 일하고 어두우면 염불한다’는 생활신념으로 정진하며, 틈틈이 불교대학을 비롯한 여러 강연회에서 법문하는 한편, 많은 저서를 통해 원효 대사의 일심정토 염불수행을 전하고 있다. 또한 모든 법문을 동영상으로 제작하여 인테넷으로 전하고 있다. 저서에 <염불신행의 원리와 비결> <한국의 염불수행과 원효 스님> <윤회는 없다> <신앙의 빛> <오룡골에는 여자가 없다> <무량수경종요> <아미타경소> 등이 있다.
정목 스님은 “원효 대사의 일심정토 염불법은 독창적인 정토사상이요 순수한 한국불교이며, 일체중생을 구제하는 가장 대중적인 수행법”이라며 “이제 누구든지 염불수행을 통해 안심을 얻고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도록 그 신행체계를 확립해 한국불교를 되살리는 일에 혼신의 열정을 다하겠다”는 원력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