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회의의 주인공은 아사카와 다쿠미(1891~1931). 그를 기리는 학술회의가 9월5일 오후 1시부터 4시간 동안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됐다. 주제는 ‘시대의 국경을 넘은 사랑: 아사카와 다쿠미의 임업과 한국민속공예에 관한 연구’. 이 세미나는 서울국제친선협회가 주최하고, 일본국제교류기금, 수림문화재단에서 협찬했으며, 문화체육관광부·경기도 포천시·야마나시현 호쿠도시가 후원했고, 이어령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축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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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카와 다쿠미

아사카와 다쿠미가 도대체 어떤 인물이길래 이토록 한일양국이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는 시기에 그의 업적에 대해 학술회의까지 열리게 된 것일까?

아사카와 다쿠미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산하 임업시험장에서 근무하며, 잊혀져가고 있던 조선의 민예품과 도자기를 수집, 보존, 연구하였던 인물이다.

그는 1914년 24세의 나이로 조선총독부 산하 임업사무소의 용원이 되어 조선에 부임했다. 그는 당시 민둥산이 대부분이었던 조선의 산림을 푸르게 하는 것이 그의 소명이라고 생각했으며, 조선 산림녹화에 대한 그의 노력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울창한 산림을 만들어지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아사카와 다쿠미의 임업분야 업적에 관해 발표에 나선 국립산림과학원 김석권 박사는 “그가 임업시험장에 근무하면서, 주요 수종에 대한 양묘시업 기준을 마련하였으며, 치산녹화 기반기술의 터전을 마련하였다”고 임업분야에서 그의 공적을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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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에 참석한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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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세미나 장면.

아사카와 다쿠미는 실제로는 조선민속공예분야에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아사카와 다쿠미의 친형은 ‘조선 도자기 귀신’이라 불리는 아사카와 노리타카(1884~1964)이다. 아사카와 다쿠미는 임업시험장에 근무, 전국을 돌며 산림녹화에 힘쓰는 한편 전국 각지의 가마터에서 도자기 파편을 구해 노리타카에게 전하여 형의 도자기 연구에 기여하였으며, 자신 스스로는 조선의 소반을 수집, 보존, 연구에 전념하였다.

민속공예분야에서 그의 노력은 1924년 야나기 무네요시와 그의 형 노리타카와 함께 집경당에 조선민족미술관 설립으로 결실을 맺게 된다. 또한 그는 총 다섯 권의 조선공예에 관한 책을 집필하여 조선민속문화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후세에 기록으로 남기기도 하였다.

조선 사람 이상으로 조선의 마음을 이해한, 편협한 민족주의에 폐색되지 않은, 농림기사이면서 열렬한 그리스도 신자였던 아사카와 다쿠미, 또 그보다 몇 살 아래로 역시 농림기사이면서 이와테현의 하나마끼에서 농업지도를 하면서 자비로운 삶을 살다 간 일련종 신자인 미야자와 겐지와 같은 걸출한 인물이 일제 강점기 시대에 일본에 존재했다고 해서 물론 식민지주의 시대가 긍정되는 것은 아니며, 자원 수탈이 정당화되는 것도 아닌다. 다만 그들의 자기를 버린 헌신적 마음에는 ‘민족의 마음’을 ‘특정한 민족에게 고유의 배타적인 자산’이라는 대화거절로 마음을 닫아 버리는 폐문을 헤쳐 나오게 하는 지혜를 알려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가나 시게미 국제 일본문화연구센터 교수는 이날 ‘아사카와 다쿠미 학술회의 특별강론’을 통해 “아사카와 다쿠미가 보여준 것과 같은 지혜를, 국적조항을 방패삼아 거부하는 것은 치욕을 덧칠하는 것 외에 무엇을 의미하겠느냐”며 “식민지 경험의 부정적 유산에 구애되어 스스로를 구속하는 과오는 피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며, 아사카와 다쿠미 사후 80주년이 지난 오늘날 아사카와 다쿠미를 새삼 현창하는 의미의 한 부분을 여기에 두고 싶다”고 강조했다.

현지의 풍토와 문화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사람들과 차별없이 친구로 지낸 다쿠미는 안타깝게도 1931년 마흔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서울 교외의 망우리에 있는 그의 묘소는 지금도 한국인들에 의해 계속 지켜지고 있다. 그의 탄생 120주년이 되는 올해, 일본에서는 전국 네 개의 미술관에서 아사카와 형제전을 개최됐다.

한국공예협동조합연합회 문옥배 전무이사와 하정웅 광주시립미술관 명예관장은 아사카와 다쿠미의 조선민속공예분야 업적이 더욱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만제 아사카와 다쿠미 현창회 회장은 이번 학술회의에서 그의 저서 <조선의 소반>의 한 구절을 소개하였다. “피곤에 지쳐 있는 조선이여, 다른 사람의 흉내를 내기보다 지니고 있는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멀지 않아 자신에 찬 날이 올 것이다. 이것은 공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 구절은 현대에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학술회의는 한일 양국의 저명한 관계자들이 참석하여 균형있는 토론이 이루어졌다. 한국에서는 조만제 아사카와 현창회 회장, 김석권 국립산림과학원 연구과장, 문옥배 한국공예협동조합연합회 전무이사가 일본에서는 이나가 시게미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교수, 소설 <백자의 사람> 저자 에미야 다카유키, 하시모토 요리미츠 오사카대학 교수가 연사로 참석하였으며, 재일본한국인문화예술협회 하정웅 회장은 양국의 균형잡힌 시각에서 아사카와 다쿠미의 업적에 관해 토론하였다.

세미나 주요참석자로는 이봉화 한국보건복지개발원 원장, 혼다 오사무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센터 소장, 수림문화재단, 경기도 포천시, 일본 야마나시현 호쿠도시 관계자, 유광열 해강도자미술관 관장과 청담, 청량고교 학생 40여명 등이며 총 200여 명의 청중이 세미나에 동참했다.

한편 아사카와 다쿠미의 탄생 120주년을 맞아 그의 생애를 그린 영화 ‘백자의 사람’(가제)가 제작돼 오는 2012년 초여름, 일본 전국 로드쇼가 결정됐다. 한일 공동제작으로 그리는 ‘100년 전의 우정’을 주제로 한 이 영화는 1914년 일제 강점기 당시의 한국으로 건너가 조선왕조시대의 백자 등 민족 고유의 문화를 사랑했고, 일제의 차별에 맞서 싸운 아사카와 다쿠미와 이청림과의 우정을 그린 영화다. 이 영화는 올 여름 촬영을 시작했고, 한일 공동제작 체제로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한국에서의 상영도 기획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