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를 대표하는 고찰 무량사에는 김시습 부도가 있다. 절 입구로 올라가다가, 계곡을 건너는 다리를 기점으로 왼쪽으로 난 길을 향해 100여 미터 쯤 올라가면 부도밭이 나타나고, 그 부도밭 안에 매월당 김시습의 부도가 서 있다.

아는 사람들은 무량사를 참배하기 전에 반드시 거쳐 가는 곳이기도 한 부도밭 김시습의 부도에는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주로 시문학과 차에 조예가 있는 분들인데, 이들은 부도 앞에 멈춰 서서, 참배를 드리고는, 이내 천재문인이자 세간과 출세간을 자유롭게 오간 그의 자유로운 성정을 추억하곤 한다.

부여를 중심으로 한 백제문화를 세상에 알리고 그 가치를 평가하는 문화기획 일을 하고 있는 필자는 지난 8월 27일 주말을 이용하여 고향 땅이기도 한 부여를 찾았다. 충남 부여군 외산면 무량사 옆 김시습 부도는 부여를 들를 때마다 빠지지 않고 찾는 곳이다. 지난 여름 비가 억수처럼 내리던 날, 함께 차를 즐기는 다회 회원들과 함께 이곳을 찾아 차 한 잔 우려 올리고 큰 절을 했던 터라, 해맑은 날 찾는 느낌이 색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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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무량사 설잠 김시습의 부도탑에 피어난 상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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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에 대한 충심을 표현한 듯 보는 이의 가슴을 애잔하게 만든다.

두어 달 전의 모습과 지금은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카메라를 들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른 부도밭에서 ‘오세’의 부도탑을 살폈다. (김시습은 5세 때 이미 신동으로 그 명성이 자자했으므로, 그를 흠모하는 후인들이 ‘오세’라는 명칭으로도 부르기도 한다.)

오세의 부도탑 앞에 노오란 꽃 무더기가 군데군데 싱싱하게 모여 있다. 시습을 기억하는 누군가가 꽃을 올려놓고 참배한 후 갔구나, 하고 가까이 다가가 보니, 꽃다발이 아니라 오세의 부도 바로 앞 땅속에서 솟아난 상사화가 아닌가.

김시습의 단종에 대한 애절한 기운이 뭉쳐서,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상사화로 환한 것인지…, 상사화를 바라보는 마음이 애잔하다.

항상 고즈넉함을 생각하는 장소에 밝은 노오란 상사화가 만개한 것을 보며, 마치 로또 복권이라도 맞은 듯한 기분으로 한참을 머물다 자리를 떴다.

충의 참 의미가 변질된 오늘날의 세간을 보며, 평생 절개를 지킨 김시습과 상사화가 주는 교훈을 되새겨보는 시간이었다. <문화기획가>

*상사화(相思花)?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

잎은 10월 경부터 이듬해 5월까지 있다가, 장마가 시작되는 6월경에 잎이 시들어 없어지고, 8-9월에 꽃대가 나와 노랑, 흰색, 자주색 등으로 피어, 잎과 꽃이 서로 동시에 있지 않으므로 사모하는 남녀가 못 만나서 생기는 ‘상사병’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