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암 김성숙 선생의 사상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광복 66주년을 기념해 지난 8월 12일 조계종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운암 김성숙 항일운동 학술세미나’에서 총 5명의 역사학자 및 불교학자가 나서 주제를 발표하고 또한 5명의 학자들이 나서 흥미 있는 주제발표와 뜨거운 토론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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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에 앞서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하고 있는 참석자들. 사진=김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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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참석자들. 왼쪽 민성진 운암김성숙기념사업회장과 오른쪽 함세웅 신부(안중국기념사업회 회장).

운암 김성숙 선생에 대한 평가가 아직은 많이 진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날 토론은 운암의 사상적, 정치적 정체성에 천착한 뜻 깊은 시도를 보여줬다.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민족주의자, 중간 좌파, 회색주의자 등 운암을 둘러싼 역사학계의 분석은 역설적으로 운암에 대한 연구가 초보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역사학계의 기존 연구와 이러한 기존연구를 불교적 프리즘에서 바라본 주제논문이 발표된 아날의 세미나는 결론을 내지 못하는 보통의 세미나와는 달리 비교적 뚜렷한 결론을 도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일반 근현대사를 연구한 외부학자 2인, 불교근현대사 연구학자 1인, 불교학자 2인으로 구성된 발제자들은 운암의 항일운동 및 통일, 민주화에 이르는 역정을 각각의 시각으로 조명했다.

운암 김성숙(雲巖 金星淑, 1898-1969)은 불교계에서는 봉선사 태허(太虛) 스님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세 때 용문사에서 출가했고, 25세 때 스님 신분으로 중국 북경에 유학한 뒤 중국 각지를 돌며 본격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운암 김성숙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역임한 독립투사였다. 또 해방 이후에는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다 온갖 고초를 겪었던 민주투사로 우리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파란만장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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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탁 교수가 운암 김성숙(태허스님)의 계첩을 보여주며 운암김성숙의 사상에 불교사상, 특히 인간은 자유와 행복을 지향해야 하자는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

이날 학술세미나에서 운암 김성숙의 사상적 성격을 역사-불교적 관점을 통 들어 결론을 내린 발표자는 신규탁 교수(연세대)였다. 운암에 대한 일반 역사학자 신운용 교수와 이동언 박사의 객관적 평가와 김광식 교수의 발표에 이어 등장한 신규탁 교수는 선행 주제발표를 토대로 한 발제문을 통해 운암의 사상을 한 마디로 ‘인간은 자유롭고 행복해야 한다’는 것으로 정리했다.

신규탁 교수는 “그놈의 이념이 뭐길래, 사람 살자고 이념이 생긴 것일텐데, 우리는 그 이념 때문에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고 있다. 운암의 사상은 이런 모든 사상적 편향을 넘어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지향해 한다는 것이며, 운암의 사상은 바로 지금 오늘날,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지향하는 운동으로 다시 부각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운암은 항일독립운동을 하면서도 “인간의 자유롭고 행복한 국가를 위해 분투하자”는 정신을 견지했다“고 거듭 강조한 신 교수는 ”운암은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좌와 우, 아나키스트와 사회주의자, 진보와 보수의 통합 등 모든 대립적인 사상과 노선의 통합과 결합을 추구했던 분“이라고 정리했다. 신 교수는 운암의 이런 사상의 토대는 당연히 불교 사상이라고 강조했다.

이날의 논쟁 중의 하나는 운암을 스님으로 볼 것인가, 재가자로 볼 것인가. 그리고 운암의 불교사상이 해방 이후 실현된 적이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신 교수는 “운암 김성숙은 1923년에 사부인 홍월초 스님으로부터 태허라는 법명을 받았으며, 이분은 중국전역을 목숨을 걸며 돌아다니면서도 이 계첩을 몸에 지녔다”며 “이는 그가 비록 모습은 일반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정신만큼은 누구보다도 투철한 승려로서 살아갔다는 좋은 예”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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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주제 '김성숙 연구의 성과와 과제'를 발제하고 있는 신운용 교수.

이에 앞서 첫 발제자로 나선 신운용 한국외국어대 교수(운암 김성숙연구소 소장)는 “김성숙에 대한 평가는 그동안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라는 평가가 강했다. 불교계에서는 민족주의자라는 평가가 강했다”며 “김성숙 선생이 승려로서 청년기를 보냈다는 것은 그의 사상에 불교적 세계관이 깃들어 있고, 이 세계관이 독립운동 추동의 바탕이 되었다는 점이고, 여기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진하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신 교수는 “김성숙 연구의 쟁점은 김성숙의 지향점이 무엇인가를 규명하는 것”이라며 “제 논문의 결론은 민족주의자였으며, 민족주의 의미는 불교와 관련이 깊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신 교수는 특히 “운암 김성숙이 불교에 입문한 것은 기독교라든가, 여러 종교들에 대한 공부를 한 후 불교를 선택한 것으로 보이며 그 후 민족문제, 종교적 열망에 의해 불교에 귀의한 것으로 생각된다”며 “운암 김성숙이 의열단 참석하고, 광복회 창설, 조선의용군 창설에 역할을 했다는 기록 등은 아마도 김성숙에게 한국불교의 호국불교 전통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운암 김성숙이 보여준 행보의 특징은 끊임없이 통합을 주장하고 있는 점이며, 그 통합 정신의 결과물이 바로 임시정부에의 참여로 나타났다”고 밝힌 신 교수는 “김성숙은 공산주의나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를 분명히 반대하고 있고 그 스스로도 자신이 맑시즘을 받아들인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일부에서는 박정희의 독재시대라는 배경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지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종교자유와 사유재산을 이미 조선해방 당시에도 나타나 있다. 김성숙은 협동 또는 통합에 바탕을 둔 민족주의자였으며, 그것에 불교적 영향이 컸다고 생각한다. 김성숙의 현대사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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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주제 '김성숙의 생애와 독립운동'을 발표하고 있는 이동언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위원.

두 번째 발제에 나선 이동언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남의 나라에서 독립운동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운암은 그만큼 각고의 세월을 보냈을 것”이라며 운암 김성숙의 중국에서의 항일독립 활동을 시기별, 지역별로 정리한 후 “운암은 진보적인 민족주의자이며 독립운동하면서도 공부를 열심히 해 세계 흐름에 정통했고, 이런 운암의 해박한 지식은 이미 해방 이전에 이승만의 반소반공 활동이 우리의 해방이후 문제가 된다는 지적을 하고 있을 정도로 국제정세에 정통했다. 운암은 단순한 민족주의자가 아니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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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식 교수가 발제를 하고 있다.

이어 김광식 동국대 연구교수가 ‘김성숙의 정치이념과 민족불교’를 주제로 발제를 했다. 김 교수의 이 발제는 김성숙의 항일운동과 정치활동의 이념적 기반이 민족불교임을 사례에 근거해 밝힌 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 교수는 “김성숙에 대한 호칭과 평가가 다양하지만, 사실 역량과 업적에 비해 연구가 매우 부진한 편이다. 또 독립운동가라는 데만 초점을 가지고 연구가 되었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스님생활 8년,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에 40여년 이상을 불교사상을 가지고 신앙행위를 한 분에 대한 연구를 할 때 불교사상과 불교적 관점을 배제할 수 없으며, 따라서 불교적 관점에서 운암의 행적을 분석 연구해야 제대로 된 연구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어 불교계의 역사서술은 주로 스님만 가지고 하는 경향이 강해 운암 김성숙과 같은 혁혁한 공을 세운 분에 대해서 불교사에서 단 두 줄도 언급되어 있지 않을 정도라고 개탄하고, “운암 김성숙 선생은 만해, 월초, 초월 등과 함께 불교계의 항일독립운동을 설명할 수 있는 매우 비중이 크고 중요한 분”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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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민성진 회장은 운암의 외손자이다. 민 회장이 외조부인 운암의 초상화 옆에 앉아 세미나를 지켜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발제에 나선 차차석 교수(동방대학원대)는 운암의 행보속에서 불교의 흔적을 찾는 논문을 발표했다. 차 교수는 “마침 한국불교학에서 응용불교학이 발전하는 시기”이며 “운암 선생의 활동을 이런 측면에서 조명해보는 것도 의미가 크며, 그런 측면에서 운암의 활동은 불교사상의 현대적 변용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운암 김성숙은 지금의 불교세대보다 한 세대 앞서서 불교의 정치적 변용을 시도한 분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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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를 하고 있는 동방대학원대 차차석 교수.

차 교수는 “운암 김성숙은 만해와 김법림의 영향을 받았는데, 어떤 것을 받았을까을 생각해 보았다”며 “불교의 목표는 자유와 행복과 안락이라고 전도선언에 잘 나와 있으며, 만해의 자유와 평등 정신, 운암의 자유와 행복에의 지향 정신은 모두 부처님의 전도선언에 나타난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날 학술세미나에는 성주현 경기대 전통문화콘텐츠연구소 상임연구원, 한상길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교수, 조환기 박사(연경사회정책연구소 연구원), 석길암 금강대 교수, 오영석 연세대 교수가 지정토론자로 나서 발제자들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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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 조실 월운 스님이 세미나 1부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편 세미나에 앞서 열린 1부 행사에서는 월운 스님(봉선사 조실)이 나서 인사말을 했다. 월운 스님은 “태허 스님에 대해 내가 직접 따뜻하게 피부로 느낀 것은 만허 스님이 주소를 적어주며 쌀 20말인가를 가져다주라고 하셔서 찾아가보니 상당히 잘 쓴 글씨로 ‘피우정’이란 글이 문에 붙어있었던 것을 본 것”이라고 운암을 회고했다. 월운 스님은 “봉선사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오늘 이 자리에 앉았다 오는 일이라도 하는 게 고인에 대한 예의이고, 애쓰는 분들에 대한 답례라고 생각해 이 자리에 참석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총무부장 영담 스님이 대독한 축사를 통해 “태허 스님(운암 김성숙)은 부처님의 정법에 의지해 조국의 광복과 자주독립을 평화로운 남북통일을 위해 용맹정진 하신 분”이라며 “이는 평생을 가난과 고만 속ㅇ서도 정의와 대중보리를 위해 사회악에 맞서 싸우신 것은 바로 불교의 파사현정 정신을 실천한 선지식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자승 스님은 “대립과 갈등을 넘어 통합과 회통을 지향하고 일생은 다사다난했지만 불교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평생을 헌신했다고 평가하더라도 결코 손색이 없는 훌륭한 불교운동가였다고 말할 수 있다”며 “이번 세미나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스님으로, 독립투사로, 임정요인이며 정치가로서 시대적 중책을 다하신 스님의 업적을 기리고 스님이 그토록 염원하시던 평화적인 통일국가 건성이 이룩되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모종률 서울북구보훈지청장은 “운암 김성숙 선생의 위대한 뜻을 우리가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선생께서 늘 바라셨던 국민화합과 남북통일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기를 기원한다”고 축하했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통일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가시밭길이라도 감내하신 운암선생의 삶이 헛되지 않도록 희망찬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는 데 회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운암 선생의 위대한 정신과 발자취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충분히 선야하지 못한 데 용서를 구한다”며 “선생의 뜻이 다시 피어나 하루빨리 남북이 통일되고 지역 갈등과 분열이 해소되며, 강자와 약자가 공존할 수 잇는 ‘함께가는 사회’가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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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 신부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함 신부는 현 정부하에서 이승만과 백선엽을 미화하는 일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함세웅 신부(항일운동단체연합회 회장)는 “나라가 독립해 정부를 세우면 가난을 구제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 것을 실현하겠다는 뜻을 세운 민본주의자였다”면서 “오늘 세미나를 게기로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 통일된 나라의 백성이기를 원하신 선생님의 참모습을 많은 이들이 바르게 기억하고 실천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민성진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은 “애국선열들의 삼과 정신을 오늘에 계승 발전시켜 우리 사회의 정신적 지주로 살고, 나아가 우리 민족의 통일과 바람직한 민족문화를 형성하는 데 힘을 보태고자 학술세미나를 준비했다”고 세미나 개최의 의미를 설명했다. 민 회장은 이어 “운암 김성숙 선생의 삶의 생명력이 되었던 불교사상과 독립운동, 남북통일을 통한 진정한 조국광복을 이루고자 부정과 불의에 대항했던 올곧은 기개, 한국 민주주의에 헌신하신 모습 등을 재조명하고 이를 거울삼아 이 시대 우리의 사명을 찾아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세미나는 운암 김성숙의 생애와 사상을 담을 공식적인 평론집 발간의 기초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광복 66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세미나는 봉선사 스님인 운암이 독립운동에 뛰어든 바탕에 자리 잡은 불교사상을 처음으로 조명하는 자리여서 관심이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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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이날 민성진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회장에게 개운사로 회복에 큰 공로를 세운 데 대해 감사패를 수여했다.

이날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운암사업회 민성진 회장에게 ‘인촌 김성수 도로명 부기’에 문제를 제기해 이를 바로 잡은 공로로 표창패를 수여했다. 아울러 개운사 주지 범해 스님은 ‘개운사길’ 도로명 환원에 힘쓴 공로로 항일운동단체연합회(회장 함세웅)에게 감사패를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