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정책은 너무 황당해서 실현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 정부가 강행을 한다고 해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하고 맞는 동·리 제도를 우리에게 맞지 않은 도로명으로 바꾼다는 것은 맞지 않다. 미국식 도로명 주소 체계를 강요하는 이 정부의 태도는 출범 초기 ‘오렌지’를 ‘어륀지’라고 해야 한다고 황당무개한 주장을 했던 것과 그 궤를 같이한다고 본다. 이런 무식성이 이 정부에 폭넓게 반영되어 있다. 이 정책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므로 반드시 중단·폐기되어야 한다.”

‘우리 땅이름 지키기 시민모임’에서 7월 2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주최한 ‘새 도로명 주소, 전면 폐기 촉구 토론회’에 참석한 홍성태 상지대 교수(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이 새 도로명 주소 사업을 강행하려는 이명박 정부를 강하게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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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7일 서울 프레스센터 20층에서 열린 도로명주소 폐지촉구 세미나. 맨 오른쪽이 홍성태 교수. 그 왼쪽으로 조명래 교수, 이은봉 작가회의 사무총장, 황평우 소장, 양영채 사무총장 등이 앉아 있다.

홍 교수는 잘못된 사업을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밀어붙이는 현 정권을 3무(三無) 정권이라고 규정했다. 무식(無識)·무도(無道)·무법(無法) 정권이라는 것이다. 홍 교수는 3무 정권의 밀어붙이기로 인해 ‘혈세탕진’·‘역사파괴’·‘사회혼란’이라는 3대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 문제들은 3가지 의혹을 제기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첫째 도로명 주소제도 강행이 명진 스님의 주장처럼 특정 종교, 특히 불교와 관련된 지명을 한꺼번에 없애려는 의도를 가진 정책이라는 의혹, 둘째 토건국가의 관점에서 불필요한 사업을 강행함으로써 특정인들의 배를 불리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 셋째 내년 총선과 대선을 의식해 이 정책을 강행함으로써 지역 중심에 기반한 한국정치에 국민적 혼란을 부추기려는 의도 등이 그것이다.

홍 교수는 이어 우리 국민은 이런 3무 정권의 3대 문제와, 3대 의혹을 맞아 옳고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며 3대 실천과제를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홍 교수가 제시한 3대 실천과제는 첫째 국민과 역사의 이름으로 새 도로명 주소 사업의 중단을 촉구해야 하며, 둘째 이런 일을 기안하고 추진하는 정부의 담당자들을 찾아내 반드시 기억해야 하고, 셋째 이런 잘못된 사업에 기여하고 있는 혹세무민의 전문가들을 찾아내서 그 이름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이에 앞서 토론자로 참여한 조명래 단국대 교수(도시계획학)는 “우리 민족의 삶은 선(線) 중심이 아니라 공간적 개념 중심의 삶을 살아왔다”며 “정부가 행정편의적이고 서구 추종적 입장에서 우리 문화를 상징하는 공간문화를 배제한 채 이 사업을 추진한데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만큼, 이 사업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도흠 교수(한양대)의 사회와 조계종 결사추진본부 사무총장 혜일 스님의 인사말로 시작한 이날 토론회에서는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과 양영채 사단법인 우리글 진흥원 사무총장이 발제자로 참여, 각각 ‘전통문화의 관점에서 본 새 도로명 주소의 문제’, ‘새 도로명 주소 왜 폐기해야 하나’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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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한 양영채 총장과 황평우 소장(오른쪽)

황평우 소장은 발제에서 “우리나라는 구릉지형이 약 70%이다. 구릉지와 산악형태 지번의 다양성과 복잡성은 촌락과 도시의 확장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하며, 도로명 주소는 길(도로)을 기준으로 삼아 목적지를 찾아가는 평지지혀의 국가들에게만 유리한 제도”라고 주장했다. 황 소장은 “일부 국가가 길을 중심으로 주소명이 부여되어 있다고 해서 자국의 전통적 삶의 방식을 하루아침에 변경하겠다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사대주의에 불과하다”며 “지금부터라도 지역주민과 향토사학자, 역사학자, 문화전문가들에게 의견을 물어 역사문화의 진정성과 전통성을 살리면서 실리적으로 실생활에 편리한 주소를 만들기 위해 원점에서 재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영채 우리글진흥원 사무총장은 ‘도로명 왜 백지화해야 하나? 사회문화적 변화와 경제적 문제’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해 “도로명 주소사업이 시작되던 15년 전과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IT시대인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면서 “도로명 사업은 손익계산법이 잘못됐고, 추진 과정에도 문제가 있는 백지화해야 할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토론회를 진행한 이도흠 교수도 “우리의 길은 연기적이며 입체적인 길이고, 서양의 길은 목교중심적이고 공격적인 선(線)의 길”이라며 “우리와 서양은 이처럼 역사와 문화, 전통 모두에서 서로 다른 특성을 갖고 있으므로 주소에 대한 개념도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도로명 주소제도의 백지화를 거듭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