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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조왕목욕도

불화를 판화로 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에는 기층 민중을 생각하는 깊은 배려의 정신이 깔려 있다. 많은 사람들은 화려하고 장엄한 고려불화나 사찰의 장엄용 불구들에 감동하지만, 실제로 많은 민중들이 생활 속에서 부처님을 향해 간절한 마음을 내어 기도하고 의지했던 서민의 불화, 즉 판화불화에는 다소 생경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족자형태로 집안 적당한 곳에 걸어 놓고, 또는 천에 찍어서 이동하면서도 늘 품에 품고 다니며 불심을 다독이던 호신적 판화불화는 더 많은 이야기와 애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판화는 대중적이다. 불화판화는 그래서 대중불화이다. 한 장이라도 더 찍어서 한 사람이라도 더 가까이 불보살과 가까이 하려는 단심이 어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판화불화는 엉성하고 서툴다는 선입견을 가져서는 곤란하다. 당시의 스님이나 불모들은 많은 대중들과 함께할 불화판화를 조성하는데 있어 더 큰 신심과 불심을 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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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중한 판화불화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귀중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국내 유일의 고판화 전문박물관인 강원 원주시 치악산 명주사 고판화박물관(관장 한선학)이 불기 2555년 부처님오신날 봉축행사 일환으로 한국과 중국, 일본, 그리고 티베트와 몽골 고판화 중 불화를 소재로 하는 기획전이 4월 21일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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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1일 개막한 '불화 판화전'에서 개막식 참석 인사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는 한선학 명주사고판화박물관 관장.

원주문화재단과 대한불교진흥원 후원으로 오는 21일부터 7월15일까지 열리는 ‘판화로 보는 불화의 세계’라는 제목의 이번 특별전 개막식에는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전 박물관협회 회장), 유재천 상지대 총장, 이계진 전 의원 1백여 명의 사부대중이 동참했다.

한선학 관장은 “한국 판화 10여 점을 비롯해 중국 20여 점, 일본 20여 점, 티베트·몽골 20여 점 등 총 80여 점에 이르는 판화불화를 전시했다”고 21일 개막식에서 말했다. 이번 ‘판화로 보는 불화의 세계’ 기획전 출품작은 한 관장이 지난 16년간 수집한 불교판화 500여 점 중 선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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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강원도 원주 치악산 명주사고판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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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산 보현사 판각 강희42년 관세음보살도.

전시작 중에는 북한 묘향산 보현사에서 강희 42년(1703)에 제작된 관세음보살을 비롯한 8대 보살판화(전면)와 6지장보살 판화(뒷면)를 비롯해 중국 당나라 때 초상화가로 유명한 염립본이 비석에 그린 양류관음(楊柳觀音)을 명나라 만력(萬曆) 16년(1588)에 목판으로 제작, 판화로 찍어낸 작품이 특히 주목을 끈다.

나아가 월정사가 있는 강원도 오대산 신앙의 직접 원류인 중국 오대산 문수신앙과 관련된 중국의 불화판화가 다수 소개되며 그중 헝겊에 찍은 대형 불화판화로, 중국 오대산을 묘사한 '오대산성경전도'가 눈에 띤다.

같은 오대산 관련 목판으로, 신라의 자장율사가 중국 유학 중 신인(神人)을 만났다는 연못인 오대산 조욕지(태화지)에서 문수보살이 조(趙)나라 왕을 목욕시켜주는 장면을 담은 한 전시작은 문수동자가 조선 세조를 씻겨 주었다는 설화와 연관성을 지닌 것으로 추정된다. 김상현 동국대 문과대학장(사학과 교수)는 이 작품과 관련 “한 중 불교간의 연관 관계에 대해 연구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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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변상 족자(일본). 지옥도의 표현이 리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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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 행자도(일본). 염불을 통해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장면.

또 일본 작품으로는 대형 태장계만다라판화와 극락세계를 표현한 16관경판화, 그리고 지옥 세계를 표현한 지옥변상 족자 등이 눈에 띄는 작품으로 꼽힌다. 티베트와 몽골 작품 중에는 이동을 하는 유목민 특성상 면이나 비단에 찍은 불화판화가 다수를 차지한다.

한 관장은 “전시작 중 명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오삼계를 위해 공덕경으로 만든 대불정백산개다라니경은 중국 최고 고판화 전문가인 주심혜 북경수도도서관 부관장이 중국 국내에서도 발견되지 않은 희귀한 보물급 문화재이며, 성화판 관음판화는 세계 최고의 관음판화로 평가받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대중불화인 판화불화가 다양한 나라와 분야로 분류되어 집대성된 이번 전시는 판화 관련 국내외 어떤 전시보다도 규모가 크고 보기 드문 전시로 손꼽힌다. 특히 이번 전시는 불화판화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고려초조대장경이 만들어진지 1000년이 되는 시점에 열리게 되어 더욱 의미가 깊다.

한 관장은 “각 나라의 판화불화를 수집하고 연구하면서 확실히 티벳, 몽고, 일본 등은 불교가 일반 대중들의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했음을 알 수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는 조선 억불이후 불교가 대중화하지 못했음을 느끼게 되었다”며 “판화불화를 통해 각 나라 불교신앙의 흐름까지 살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전시”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