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제목 ‘어리비치다’는 어떤 현상이나 기운이 은근하게 드러나 보인다는 뜻의 우리말 동사이다. 전시작 속 오래된 기와집은, 사진가 인주리의 가족이 대를 이으며 살아 온 집이다.

“옛날 저희 할머니는 집안으로 나비가 들어오면 ‘우리 엄마가 나보러 오셨네’라고 말하셨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 집에 있는데, 아버지가 늘 앉으시던 자리에 희미한 빛이 비추더군요. 문득 그 빛이 아버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진 속 집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떤 숨결 같은 것이 어리비친다. 작가는 자신이 담으려했던 숨결을 관람객들도 찾아주기를 바라며, 첫 개인전의 두렵고도 설레는 첫발을 내딛는다고 말한다.

사진작업의 배경이 된 집은 1600년대에 지어진 오래된 기와집으로, 사진가 인주리의 가족이 대를 이으며 살아 온 집이다. 사진가는 그 집에서 마지막으로 태어난 사람이고, 그녀의 아버니는 그 집에서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남은 가족들은 이사를 했고 집은 물건은 그대로인채 사람은 살지 않는 공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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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등을 기대며 벽지며 즐겨 쓰던 방석이 이제 다시 하중을 덧얹는 일 없이 저 혼자 오롯했지만, 그것들에서조차 아버지의 숨결은 느껴졌고 텅 빈 것만 같던 집이 은근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부재와 그 부재 위에 새롭게 존재하는 아버지. 7년 여의 기간 동안 긴 호흡으로 이루어진 작업은, 사진가 인주리에게는 죽음을 통해 존재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사유의 시간이자 상실감을 위로받는 치유의 시간이 되어주었다.

*류가헌갤러리 가는 길; 서울 종로구 통의동 7-10(지하철 3호선 3, 4번 출구) 02)720-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