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가 물러나면서 봄꽃들의 향연이 절정이다. 꽃 중의 꽃이요, 향(香) 중의 으뜸을 자랑하는 매화의 개화(開花)는 곧 절정에 이른 봄의 상징이기도 하다.

해마다 4월 초순이면 남도에는 봄꽃이 지천이다. 길가에는 매화가 속속 꽃을 틔워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뒤질세라 산수유와 벚꽃이 몽우리를 벌리려 안간힘을 쓴다. 어떻게 봄이 오는 것을 알아채는지, 곰곰이 따져볼수록 신기하다.

마른
나뭇가진 줄만
알았더니

속에
봄을 머금은
물기가 숨어 있었네

세상
어디에도
기적이 아닌 건 없네

-졸시 ‘함춘(唅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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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선암사 홍매화 축제가 지난 4월 2일부터 10일까지 성황리에 개최됐다.

원래 매화의 개화 시기는 3월 중순에서 4월 초이지만 올해는 잦은 꽃샘추위 때문에 평년에 비해 개화 시기가 1주일 정도 늦었다. 늦게 찾아왔기 때문인가. 올 봄 매화를 찾는 탐매(探梅)꾼들의 발길은 더욱 분주하다.

봄꽃의 왕은 역시 매화다. 매화에는 홍매와 백매, 청매가 있는데, 향은 청매가 으뜸이요, 색은 홍매이며, 담백한 맛은 백매가 으뜸이다. 그러나 어찌 저마다 다른 매력을 가진 매화를 놓고 으뜸을 가리겠는가. 다면 매화 중의 으뜸은 고매(古梅)라는데 이견이 없을 뿐!

고매화의 으뜸은 우리나라에서는 선암사의 매화, 즉 선암매를 단연 첫손에 꼽는다. 지난 4월 2일부터 10일까지 선암사에서는 홍매화 축제가 열렸다. 선암사에 홍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백매와 청매가 두루 어울려 있지만, 아무래도 고매중 으뜸이 홍매이기에 홍매축제라 이름 붙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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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홍매화 축제의 개막을 알리는 전통불교의식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선암매는 특히 외래종이 득세하는 우리 남도 산하에서 드물게 우리나라 토종 매화의 순결을 고수하고 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찾는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도 많은 곳이 선암매이다. 오죽하면 절에서 매화축제를 열고 있을까.

매화는 장미목에 속하며 한국·일본·중국 등에 분포하는 높이 5~10m의 나무다. 매화의 열매는 사람들에게 건강식품으로 사랑받고 있는 매실이다. 보통 매화를 흰색의 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매화의 종류는 실로 다양하다. 학술적으로 따져서 매화의 종류를 가리려고 하면 복잡할 정도로 그 수가 많다. 흔히 매화 애호가들은 꽃의 색깔에 따라 매화를 크게 백매(白梅), 청매(靑梅), 홍매(紅梅) 세 가지로 분류한다. 백매는 꽃잎이 하얗고 꽃받침이 붉은 종이며, 청매는 하얀 꽃잎에 푸른 기운이 도는 종으로 꽃받침이 녹색이다. 홍매는 꽃잎과 꽃받침이 모두 붉은색이다. 홍매 중에서도 붉은색이 유독 진한 매화는 흑매(黑梅)라고 부른다.

앞서 언급했지만, 현재 섬진강 부근을 비롯해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매화 대부분이 외래종이다. 외래종은 국산 매화에 비해 수명이 짧고 향이 약한 편이다. 꽃에서 느껴지는 전체적인 품격 또한 국산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을 받는다. 그래서 매화 애호가들은 거리를 수놓는 젊은 매화 군락보다는 한적한 곳에 자리잡은 국산 고매(古梅) 감상을 더욱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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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홍매화축제 기간동안에는 불교의 대표적인 의식인 영산재 의식도 진행된다. 상춘지절, 선암사를 찾는 탐매꾼에겐 매화뿐만이 아니라 불교의식을 정수를 볼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일반적으로 수명이 150년을 넘긴 매화를 고매라고 부른다. 매화를 좋아하는 이들이 굳이 선암사를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봄이면 산하를 남도의 장엄하는 매화를 두고 사람들은 ‘호남 5매’라는 별칭을 지었다. 해남 매화마을, 섬진강변의 매화, 담양 지실마을의 계당매(溪堂梅), 순천의 선암매(仙巖梅) 등이 그것이다.

선암사에는 약 50여 그루의 고매가 향을 내뿜고 있다. 이 중에서도 압권은 태고종의 종정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무우전(無憂殿) 돌담길에 있는 선암매(천연기념물 제488호)다. 선암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로 약 630년 정도 된 고목이다. 나머지 매화들도 수백 년은 족히 넘는 수령을 가지고 있는 고매들이다.

옛 모습을 온전하게 갖추고 있어 고졸한 멋이 으뜸인 선암사의 봄은 고매가 있어 더욱 아름답고 푸근하다. 지금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소중한 선암사. 선암사가 세세생생 고즈넉한 모습을 잃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올해 선암사 홍매화 축제에 다녀오지 못한 탐매꾼이 있다면, 1년 후를 기약할 수밖에 없다. 아쉽지만,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으니 그 또한 멋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