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중흥을 위한 대토론회에서 이른바 ‘감동론’을 펼쳐 눈길을 끌었던 장본인, 조성택 교수. 고려대 철학과에 재직 중인 조 교수는 최근들어 불교 학술행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로 손꼽힌다. 그의 발언 한 마디 한 마디가 듣는 입장에 따라서는 폐부를 들쑤시기도 하고, 또 여름날 청량음료를 들이킨 듯한 시원통쾌함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기자도 그가 나서는 심포지엄이나 세미나, 포럼에 애써 찾는 습관이 생겼다. 이번엔 또 어떤 것으로 학술행사장을 술렁이게 할까, 라는 기대감이 있기에 그렇다. 기자에게 밋밋한 행사는 영 젬병이다. 뭔가 얘깃거리가 있어야 하고, 화제에 오를 만한 이슈가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최근의 조성택 교수는 기자들에게는 그저 고마운 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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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4일 열린 제1회 성철 탄신 100주년 기념 포럼에서 발제자로 나선 조성택 교수(가운데). 왼쪽은 진행을 맡은 홍사성 불교평론 주간, 오른쪽은 제2발제를 한 성태용 교수.

지난 3월 24일 조계종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지하공연장에서는 성철스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열리는 제1차 학술포럼이 ‘퇴옹성철과 현대 한국불교의 방향’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여기에 조 교수가 발제자로 등장했다. ‘현대 한국사회와 바람직한 승가상’이라는 주제의 발제를 맡았다. 제목만으로는 너무 평범한 것이어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겠다는 선입견을 버릴 수 없었지만, 그래도 발제자가 조 교수인데…, 라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포럼 현장을 찾았다.

“얼핏 보아 평범하다 할 수 있는 오늘 학술대회의 주제(퇴옹성철과 현대 한국불교의 방향)가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바로 ‘퇴옹성철’과 ‘현대 한국사회’라는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 의미의 기묘한 결합 때문이다.”

조 교수는 평범한 주제에서 도리어 문제의식을 찾아낸다. 마치 부처님이 세상을 고로 보고 이고득락의 길을 찾아내듯이 말이다.

“이런 기묘한 결합은 한편으로 성철스님 이후 한국불교계에 뚜렷한 종교적 카리스마가 부재하고…”

지나가는 말인 듯하지만, 이 한 구절 속에 한국불교의 현실을 개탄하는 내용이 다 들어있다. 한 마디로 성철 이후 이렇다 할 선지식이 없다는 일갈이 아닌가. 내친김에 조 교수는 아예 이렇게 대못을 박는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퇴옹을 현대 한국사회로 다시 불러내야 할 만큼 한국불교가 절박한 위기에 처해있다는 사실이다.”

조 교수는 이어 성철스님의 주도로 이루어진, 한국 현대불교사에 일대 전환점으로 평가되는 봉암사 결사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을 거두지 않는다.

“봉암사 결사는 오랜 침체와 혼란 이후 불교 수행전통의 재확립이라는 역사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선종 중심’ 그리고 ‘출가승 중심’이라는 ‘정통복고’에 대한 강력한 지향성으로 말미암아 일정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깨달음, 그것도 확철대오의 최종적 깨달음만을 수행의 알파요 오메가로 여기는 깨달음지상주의의 병폐는 어쩌면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봉암사 결사의 한계는 곧 근대(모던)라고 하는 새로운 종교 환경에 대한 역사인식의 한계였다.”

봉암사 결사라고 하면 감히 누구도 이런저런 말을 걸고 나오지 못할 분위기이지만, 조성택 교수는 거침이 없다. 성철스님을 부처님처럼 따르는(어쩌면 부처님보다 더 추종하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회색 승복을 입은 재가수행자들 앞에서 조금은 발언의 강도를 조정할 법도 하건만, 아예 그런 것은 염두에 없는 듯했다.

조 교수의 한국불교에 대한 아픈 지적은 끝 없이 이어진다.

“불교는 욕망의 실현을 통해서가 아니라 욕망의 감소를 통해 더 행복해진다는 것을 그 근본 가르침으로 하고 있다. …욕망을 제어하는 다양한 수행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또 출가라는 제도를 통해 이를 몸소 실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왔다. 불교의 불법승 삼보 그 자체가 이미 욕망과잉의 오늘날 현대문명을 비판하는 비판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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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포럼은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지하공연장이 사부대중으로 가득 메워질 정도로 시종일관 뜨거운 열기 속에 진행됐다.

‘불교가 욕망의 감소를 통해 더 행복해진다는 것을 근본 가르침으로 하고 있다’는 조 교수의 단언에 100% 동의할 수 없지만, 그가 이런 전제를 다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기에 예서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이어지는 조 교수의 주장을 더 들어보자.

“그러나 오늘날 한국불교가 진실로 이런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솔직히 부끄러움이 앞선다.”

조 교수의 이런 비판에 자유로울 불자는 드물다. 출가와 재가를 막론하고 자성과 성찰을 해야 함을 조 교수는 통렬히 지적하고 있고, 한국불교를 위기로 몰아넣은 동시대의 불제자들은 참회를 해야 마땅할 것이다. 조 교수의 지적이 따갑더라도 그것을 고맙게 받아들여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날 한국불교에서 시주란 출세, 합격, 승진, 재산, 명예 등과 같은 세속적 욕망을 성취하기 위한 일종의 투자행위가 되어버렸다.”, “기복을 위해 시주하는 것은 그 순수성의 측면에서 볼 때 연말정산의 세금혜택을 위해 정치인에게 기부하는 것보다도 못하고, 비종교인들의 자선적 기부행위보다는 더욱 더 못한 것이다.”

이런 정도면 조성택 교수는 가히 독설가의 반열에 오를만하다. 그 역시 불자의 한 사람이지만, 불교계로서는 너무나 고마운 독설가이다. 그런 그를 조계종단이든 법인이든 자주 불러내는 것 자체가 그만큼 불교가 성숙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니 그의 예리하고 서슬 퍼런 사자후에 너무 기죽을 필요는 없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단은 지금 위기 상황이다. 어쩌면 15세기 이래 최대의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 교수는 결론 부분에 들어서 한국불교가 최악의 위기상황에 놓여 있다고 경고한다. 그 경고의 근거를 들어보기로 하자.

“각종 조사 통계를 살펴보면 출재가자의 학력 수준, 사회의식 그리고 사회적 영향력은 주요 종교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며, 지금 10대 20대 젊은 층의 종교분포를 보면 한국불교의 미래는 더욱 더 절망적이다.”

조 교수는 그러나 이런 절망적 상황이 불교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불교의 문제라는 점에 주목한다. 세계적으로 지성인들이 불교에 매료되고 환호하고 있는데 반해 유독 한국불교만이 죽을 쑤고 있으니, 그 원인을 시급히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그 원인을 바깥에서 찾지 말고 안에서 찾으라고 주문한다. 이를테면 해방이후 지금까지 출가스님들이 무슨 역할을 했느냐고 질책한다. 한국불교에서 출가스님들의 역할이 무엇이었을까? 고전적으로 말한다면 상구보리 하화중생이었을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한국불교에서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인지, 상구보리하면 하화중생은 절로 되는 것인지, 아니면 선후의 관계에 있는 것인지, 혹은 역할분담의 문제인지 등등에 대한 정립된 입장이 아직 없는 것 같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이렇게 주문한다.

“나는 불교의 오랜 전통을 고려하고 또 현대사회가 처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감안할 때 문명비판의 실천가로서 그리고 중생들을 위한 교사로서의 출가스님의 역할이 가장 적절하며 시급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문명비판의 실천가이자 교사로서의 역할이 불교 전통에서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조 교수는 본래 출가자의 삶은 적게 먹고 적게 쓰는 ‘소욕지족’의 삶이며, 따라서 성철스님이 봉암사 결사에서 외쳤던 ‘부처님 법대로 살자’도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오늘날의 스님들은 ‘소욕지족’하라는 강력한 요청이자, 요구다. 소욕지족의 삶 이외에 출가스님들이 따로 보여줄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 교수가 이런 출가에 대한 간곡한 요청으로 발제를 마무리할 성정의 소유자는 아니다. 그는 예상대로 발제의 마무리를 다음과 같은 경고로 장식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 간단한 실천, 불교 본래의 삶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조계종으로 대표되는 한국불교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