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문답(華嚴經問答)》은 중국 화엄의 태두 법장의 저술이 아니라 신라 의상의 강의를 그 제자 지통이 기록한 것이라는 주장이 학계의 정설로 자리잡는 분수령이 될 국제세미나가 개최된다.

일본의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에 수록돼 전해지고 있는 《화엄경문답(華嚴經問答)》. 상ㆍ하 두 권으로 나눠진 이 책은 중국 당대(唐代)의 법장(法藏) 스님 저술로 알려졌다. 하지만 1980년대 일본의 가마다 시게오(鎌田茂雄)가 의상계 문헌이라고 추정한 이후 이시이 코우세이(石井公成) 교수(일본 고마자와대)의 바통을 이어받은 김상현 교수(동국대)가 논란에 큰 획을 그었다. 해동화엄종(海東華嚴宗)의 창시자인 신라시대 의상(義湘) 스님 강의를 지통(智通) 스님이 기록한 《추동기(錐洞記)》라고 주장한 것이다.

《추동기》는 의상이 중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소백산 추동에서 90일간 《화엄경》을 강의한 내용을 그의 제자 지통(智通)이 핵심을 간추려 문답형식으로 기록한 책이다. 15년 전 김상현 교수는 균여의 저서 및 《법계도기총수록》에 인용돼 전해진 《추동기》의 일문(逸文ㆍ탈락되거나 빠진 문장)을 《화엄경문답》과 대조한 결과, 《추동기》의 일문 15회 모두를 《화엄경문답》에서 확인했다. 이는 의상 스님의 대표적 저술인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에만 의존해온 의상의 화엄사상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에 획기적 사건이었다.

바로 이《화엄경문답》에 대한 사상적 의미를 검토하는 국제학술대회가 열린다. 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소장 김천학 교수)가 3월 25일부터 26일까지 서울 관문사에서 개최하는 ‘《화엄경문답》을 둘러싼 제 문제’ 주제 제5회 국제학술대회가 그것이다.

크게보기25일 오후 1시 30분 개회식에 이어 기조발표를 하는 김상현 교수(사진,동국대 문과대학장)는 ‘《화엄경문답》의 연구현황과 과제’를 통해 《화엄경문답》 저자와 관련한 연구의 진전 상황과 사상사 및 향후 과제 등에 대해 밝힌다. 김 교수는 올 5~6월 중 《화엄경문답》에 대한 교주(校註ㆍ문장을 교정해 주석을 더함)와 번역을 한 책을 발간할 계획이다.

이날 이시이 코우세이 교수는 ‘《화엄경문답》의 ‘배자체불(拜自體佛)’론-지론종ㆍ삼계교의 영향에 유의하여’를 주제로 발표한다. 배자체불론은 단순히 자신 속에 존재하는 불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장래 자신이 이루게 되는 부처가 현재의 자기를 교화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이는 지론종 문헌에 가깝고 범부를 부처로 보고 예배해야 한다는 점에서 삼계교와도 비슷하다.

이어 장진수 교무(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소)는 ‘《화엄경문답》에 나타난 일승정토사상(一乘淨土思想) 연구’를 주제로 발표한다. 일승정토사상은 기존의 정토사상을 삼승으로 비판하고 고정된 시간〔성불의 시점〕이나 장소〔불퇴전의 처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이 땅이 곧 현실정토임을 일컫는 것이다. 이는 한국불교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현실정토사상의 정착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26일 오전 9시 30분 재개되는 학술대회에서 김천학 소장이 ‘일본 화엄문헌에서의 《화엄경문답》 인용 경향’을 주제로 발표한다. 의상계 문헌이 일본 화엄학 문헌에서 인용된 것은 헤이안시대(平安時代)부터 확인된다. 김 소장은 학술대회에서 “《화엄경문답》이 일본 화엄문헌에서 인용될 때 법장의 다른 저술의 주장과 같은 부분들이 중심이 돼 인용되고 있다”고 밝힐 예정이다.

이어 첸용꺼(陳永革) 중국 절강성사회과학원철학연구소부소장은 ‘《화엄경문답》과 법장의 화엄경 교의학’을 주제로 발표한다. 그는 “《화엄경문답》은 지엄이 지은 《화엄오십요문답》의 간요본(簡要本) 또는 강해본(講解本)”이라고 전제하고 “《화엄경문답》에 중국 화엄종 창종의 자종(自宗) 의식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경에 대한 해석 및 교의(敎義) 설명과 종의(宗義) 구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주장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요지서 요시히데(吉津宜英) 교수(일본 고마자와대)는 ‘《화엄경문답》에서의 성기와 연기의 비교에 대하여-중국 화엄교학의 시점(視點)으로부터의 검토’를 주제로 발표한다. 그는 “《화엄경문답》 제128문답의 ‘성기 및 연기’를 대등하게 나란히 놓고 논하는 것 자체가 지엄과 법장에게는 없으며 내용 또한 달라 《화엄경문답》을 법장의 저술로 보기에 부적절하다”고 발표해, 지통기록설을 뒷받침할 예정이다.

이 같은 발표에 대해 석길암ㆍ권탄준ㆍ박보람ㆍ김천학(이상 금강대), 본각 스님(중앙승가대) 등이 토론자로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