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자본주의라는 다소 생소한 주장이 제기됐다. 생명자본주의포럼 이어령 위원장은 지난 3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린 ‘생명자본주의포럼 창립세미나’에서 “생명자본이 미래자본”이라고 주장 눈길을 끌었다. 이 세미나는 ‘생명자원’을 중심으로 순환 가능한 사회 구현을 위한 생명자본주의 패러다임을 정립하고 사회 전반적으로 공감대를 확산시킨다는 목적으로 개최됐다.

이어령 위원장은 이날 특별강연에서 “지금까지 세계 경제는 산업자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가 주도하여 왔으나 이러한 자본주의는 환경오염, 금융 및 윤리위기 등의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며 “따라서 미래를 앞서 가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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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열린 생명자본주의포럼 창립기념 세미나 장면

시대를 리드하는 화두를 던져온 이어령 생명자본주의포럼 위원장은 평소 생명의 원리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생태계의 활동이 인류의 성장과 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하는 ‘생명자본’이며, 이것이 곧 미래자본이 될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이 위원장은 “생명시스템과 생태계 서비스를 자본으로 순환적·재생산적 활동이 이뤄지는 경제 시스템”이라고 생명자본주의를 정의하고, △자연은 착취의 대상에서 배움의 대상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지식에서 지혜로 문명의 지적역사를 U-turn하는 경제 시스템이 필요하고 △생명자본주의는 소통에서 나오고 생명체가 바로 미디어임을 강조했다.

생명자본주의포럼은 이번 창립세미나를 계기로 인문·사회, 경제·경영, 과학기술·산업분야 등 우리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생명’과 ‘감동’을 자본으로 하는 생명자본주의 연구를 선언하고 이에 대해 사회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함께 토론하는 논의의 장을 확대시켜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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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발표에 나선 교수들.

한편 이화여대 정재서 교수는 생명자본주의의 동양학적 접근을 통한 생명자본의 새로운 해석 방법에 대해서, 농촌진흥청 라승룡 박사는 환경과 동식물의 조화로운 생태 공간으로써 농업의 가치를 높이고, 생명이 자본이 되는 시대에 국가 농업연구기관으로서 농촌진흥청의 역할에 대해서 각각 발표했다.

정재서 교수는 “생명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지엽적인 대안이 아니라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며 동양에서는 도가사상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라승룡 박사는 “생명자본과 미래 생태계 변화 대비를 위해 생명자본주의의 근본인 농업의 중요성이 더욱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이번 세미나를 주관한 농촌진흥청 민승규 청장은 “사회를 이끌어 갈 중요한 자본이 생명인 것은 시대의 조류이며 농업이 그 중심에 서 있다”며 “이번 생명자본주의포럼 창립세미나를 통해 농업에 대한 긍정적 인식확대와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인문학계, 농업계, 산업 및 에술계 등 각계 인사들은 생명자본주의에 대해 관심이 많고 근본취지는 공감하나 개념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한 생명자본주의의 정확한 이론정립과 사회 전반적인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이에 따라 생명자본주의포럼은 생명자본주의 이론 체계화를 위한 포럼위원 확대 및 세미나 개최를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국제워크숍(10월)과 책자발간(12월)을 통한 이론 정립 및 국제적 공표작업을 펼쳐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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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자본주의포럼 창립기념 세미나 장면. 시종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생명자본주의를 주창하고 나선 이어령 장관과의 일문일답.

20대 때 이미 문학평론가로 이름을 드높였고, 1990년대에 정보화, 2000년대에 디지로그라는 화두를 던진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 2010년대 들어서는 새 화두 ‘생명(Vita) 자본주의’를 꺼내들었다. 새벽 2시까지도 책을 읽고, 관련 자료 6000여점을 아카이브 형태로 제공할 수 있는 수준이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에게 생명자본주의 주창 배경을 들었다.<편집자>

-생명자본주의란 어떤 의미인가.

“생명은 보편적으로 다 쓰는 말이다. 라이프, 리빙 모두가 관심갖는 단어가 아닌가. 다만, 자본주의는 경제학자들이나 정치, 경제계에 계신 분들만 주로 쓰는 말이다. 일반인들도 흔히 쓰지만 잘은 모른다. 자본은 단순히 돈 같은 물질이 아니다. 김연아의 자본의 뭔가. 미모와 실력 아니던가. 스포츠선수는 다리를, 탤런트는 눈을 보험에 들기도 한다. 물질화된 자본 말고 인간 자체가 가진 자본을 보자는 것이다.”

-생명자본의 구체적인 예가 뭐가 있을 수 있을까.

“기존 경제학에서는 GDP만 올라가면 다 되는 줄 알고 이런 생명자본 부분을 제외해버린 것이 뼈아픈 실책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의료, 문화, 농업 같은 인간의 삶과 의식에 대한 뭔가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삶에서 가장 기본은 살고자 하는 욕망, 하늘이 주신 그 욕망이다. 그 욕망에 대해서, 가장 이기적인 개인들의 합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이미 우리 전통에도 있다. 품앗이나 계모임 같은 게 그런 거다.”

-이미 우리 전통에 들어와 있다는 얘기가 인상적이다.

“이건 부끄러워해야 할 대목이다. 혁명이 아니라 재구축이어야 한다는 아까 얘기와 통하는 부분인데 벨기에에 베르나르 리에테르라는 학자가 있다. 이 양반이 기존 제도권 화폐외 다른 화폐를 만들어냈다. 지역 공동체에서 통용되는 화폐다. 이를 일러 ‘보충’(Complementary) 화폐라 부른다. 그런데 그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온 줄 아나. 바로 동양의 음양이론이다. 양이 국가의 의한 공식화폐의 영역이라면 음은 커뮤니티 수준의 보충적 화폐라는 것이다. 대체하거나 대안이라는게 아니라 보충해준다는 것이다. 이미 그 곳에서는 성공적이고 이웃 일본만 해도 400여개 공동체들이 그런 제도를 본 따 쓰고 있다. 음의 화폐를 통해 양의 화폐를 상보해서 같이 쓴다는 것이 바로 산업금융자본주의를 넘어선 것이다. 우리 전통의 대동계나 품앗이, 계 이런 것들이 모두 필요한 것을 공동체 내에서 자체적으로 조달해서 쓰는 제도들 아니던가. 요즘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것들이 인기인데, 이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일종의 대안인 셈인가.

“금융자본주의는 한마디로 웃긴다. 가령 1마르크를 2000년 동안 복리이자로 묵혀두면 그 자산가치가 나중에는 태양 크기의 행성 3개를 살 정도 된다고 한다. 그런데 돈이 짐승도 아닌데 어떻게 새끼를 치나. 그것 가지고 안 된다는 게 최근 금융위기 같은데서 드러난 것 아닌가. 내 주머니에 돈이 많은 줄 알았는데 문제가 생기는 순간 한꺼번에 사라진다. 그게 자본인가. 신기루 아닌가. 자연환경이나 신체 같은 것들이 가지고 있는 그 자체로서의 자본, 그걸 보자는 얘기다. 그런데 대안이라는 말은 적합치 않다. 환경운동 같은 걸 하는 사람들은 자본과 환경을 자꾸 적대적인 것으로 본다. 자본 그러면 나쁜 것, 안 좋은 것이라 치부한다. 그러지 말고 함께 가는 것으로 생각하자는 것이다.”

-그 부분을 설명해 달라. 일본에는 지산지소(地産地消), 미국에는 로컬푸드(Local Food) 운동 같은 게 있고, 이게 우리나라에서는 생협 형식으로 도입되어 있다. 이들은 FTA가 농업을 사양산업화하고, 그러다보니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대형화가 추진되면서 구제역 같은 사태를 키운다고 본다.

“생명가치라는 것은 일종의 보완재다. 배에 물이 차오르면 이제껏 사람들은 배에서 물을 퍼냈다. 다른 한쪽에서는 배를 아예 버리자고 한다. 그런데 계속 차오르는 물을 애써 퍼내기만 하면 어쩌나. 그리고 아예 배를 버리면 바다에 다 빠져죽자는 말인가. 그게 아니라 물이 새는 구멍을 찾아서 구멍을 막아보자는 것이다. 가령 농사라는 것은 물만 주면 되는 걸로 아는데 사실 질소비료가 다 들어간다. 질소는 어디서 오느냐. 석유에서 나온다. 이미 석유라는 자원을 토대로 한 산업자본주의의 큰 틀에 포함된 것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트랜스(trans)하자는 것이다. not A but B가 아니라 not only A로 가자는 것이다. 이것 역시 패러다임의 교체다. 부정하는게 아니라 트랜스(Trans)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리학자 장회익의 ‘온생명’이나 시인 김지하의 ‘생명 운동’ 같은 것들과 생명자본주의가 차별화되는 지점도 거기서 찾아야 하나.

“기존 생명운동, 환경운동 같은 것들은 약간 종교성이 가미되거나 농촌이나 살림 같은 개념이 들어가 있다면, 나는 “도시에서 왜 그런 걸 못해?’라고 되묻는 쪽이다. 그런데 사실 모두가 생명자본주의를 이미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나쁜 것이라 말하면 훌륭한 지식인 대접을 받겠지만, 그런 지식인들이 활동하고 있는 공간 자체가 이미 자본주의다. not A 논리가 아니어야 한다는 말은 그 때문이다. 소련 봐라. 극단적 사회주의를 하다가 극단적 자본주의로 돌아서니까 저 꼴이 나는 거 아니냐. 대신 중국은 사회주의도 아닌 것이 자본주의가 아닌 것이 모호한 형세다. 서양의 not A 논리가 아니라 동양적인 논리 Both A and B를 쓰고 있는 것이다. 융합해서 써야 한다는 말이다. 서양식 논리를 뒤늦게 배운 우리가 not A 논리를 받아들여 이제서야 굳이 싸울 필요가 있겠나. 기존 문제를 혁명을 통해 깨는 게 아니라 탈구축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얘기를 듣다보니 생명 못지않게 자본주의에도 방점이 찍혀 있다.

“우리는 이제껏 산업화, 민주화했다. 그러면 그 토대는 뭐냐는 얘기다. 자본주의 아니던가. 고쳐서 써야지 부정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간혹 자본주의를 만악의 근원처럼 얘기하는 지식인들이 있는데 그건 거짓말이다. 그 말 자체도 자본주의 사회로 이만큼 먹고 살게 되고 자유를 누리게 되니까 할 수 있는 얘기들이다. 자본주의가 달라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버리는 건 아니라고 본다. 젊은이들에게도 이런 얘기를 꼭 해주고 싶었다. 라이벌과 에너미를 구분했으면 좋겠다. 라이벌은 어원적으로 같은 물을 마시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자본주의라는 같은 물을 마시고 있는 이상 더 나은 자본주의를 위해 좋은 라이벌이 되어야지 적이 될 필요는 없다.”<인터뷰 자료제공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