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타고 짐을 싣는 짐승들

나를 위해 죽은 짐승들

내가 고기를 먹은 모든 짐승들

그들이 빨리 부처가 되기를…!

-라다크에서 드리는 기도

크게보기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가 한국에 왔다. 우리에게는 ‘오래된 미래’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이하 호지 여사)는 스웨덴 출신의 언어학자이자 세계적인 여성 생태환경운동가이다.

그녀는 ‘리틀 티베트’로 불리는 라다크의 전통사회가 서구문명에 의해 파괴되는 과정을 목격하고 실천적 생태환경운동가로 변신했다. ‘에콜로지와 문화를 위한 국제협회(ISEC)’ 대표로 반세계화·반개발·탈중심화를 위한 국제 연대운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 방한 중인 호지 여사는 지난 2월 26일 토요일, 영등포의 하자센터에서 여성환경연대가 주최한 ‘행복, 마을에서 꿈꾸는 오래된 미래’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연대 행사에 초청돼 강연을 했다.

호지 여사 내외를 초청한 행사이기 때문에 이 행사는 특히 많은 관심을 받았다. 헬레나 호지가 직접 연출한 환경다큐멘터리 영화 '오래된 미래'의 상영으로 시작해 여성학자 오한숙희 선생의 사회로 진행된 이 행사에는 4대강사업 반대 싸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팔당 두물머리 농민들의 이야기도 초대받았다. 또 전국여성농민회의 꾸러미 사업 이야기, 성미산 마을 공동체 이야기, 그리고 해방촌 빈집과 빈가게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어 호지 여사는 ‘행복의 경제학’에 거론된 이야기를 중심으로 환경친화적이지 못한 세계 각국 정부의 개발 정책에 대한 비판과 강한 우려를 나타내며 연기적 삶, 환경친화적 삶을 살아갈 것으로 호소했다.

“지금 세계의 정부들이 환경 친화적이지 못한 개발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 큰 문제이다. 나는 기업이 커지고 상업화로 나가는 것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그 대형화는 결국 빈부간의 격차와 가난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우리는 현재의 개발방식이 환경오염 뿐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가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환경과 가난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시골이 도시화되면 결국 사람들은 돈을 벌기위한 임금노동을 해야 하고 빈부의 격차와 가난은 심해진다.”

호지 여사의 강연 내용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사람들은 귀를 쫑긋 기울였다.

“정부가 기업에게 기술과 에너지를 쓰기를 조장하고 있는 점이 슬프다. 기업 측은 개발이 일자리를 만든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실업은 정치적 선택의 결과다. 권력을 정당화시켜주는 것이 투표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만 기업이 대형화 될수록 사람의 가치가 절하된다. 정치적 좌우의 차이를 넘어서서 실업을 이해해야한다.”

호지 여사의 이야기는 그가 제작한 ‘행복의 경제학’이라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멀리 있는 상업 농장의 작물이 값이 싸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이런 가격들은 상업화된 것들을 지원하는 정치적 선택의 결과다. ‘행복의 경제학’ 영화를 통해 토론이 시작되었으면 한다. 우리는 세계화에 반하는 지역화 운동의 장점에 대해 공부해야하고 그래야 희망을 볼 수 있다. 가격책정, 실업의 이해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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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계적인 환경생태운동가로 거듭나게 한 땅 라다크의 이야기를 하는 대목에서 호지 여사의 눈빛은 더욱 빛났다.

“라다크의 변화를 포함해 내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경험한 바로는 빠른 속도의 개발, 발전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은 돈을 더 버는 것 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연결된 인연의 끈을 느낄 때 훨씬 행복함을 느낀다. 사람과 자연, 아이와 어른, 주부와 주부와의 소통이 있을 때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러나 빠른 속도의 개발은 이런 끈을 단절시킨다.”

불가에서 가르치는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삶, 즉 연기적 삶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삶이라는 지적에서 그의 삶의 방식에 불교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보통 지역은 외부의 큰 기업을 유치해야 부를 가져다 준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큰 사업은 대다수에게 이익이 될 수 없다. 실업, 환경, 먹거리 운동을 하는 분들이 더 큰 그림을 그리고 함께 힘을 합해서 경제적 변화를 가져오는 운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라다크에도 현재 은행이나 다국적 기업 등 대규모 자본이 들어오는 과정에서 분열이 존재한다. 하지만 다른 방식의 인식도 높아지고 있다. 세계화 때문에 자신의 삶이 낙후되었다는 것을 아는 지역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아직은 소수이지만 점점 늘어가고 있다.”

호지 여사의 강연이 끝나자 참석자들은 큰 박수로 동감의 화답을 보냈다.

책 ‘오래된 미래’에서 호지 여사가 언급한 것처럼 전통적인 농촌사회가 아무리 매력적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그 사회의 사람들에게 근대적 개발의 혜택을 누릴 기회가 부정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개발과 배움이 오직 한 가지 방향으로만 일어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라다크와 같은 전통사회에 사는 사람들 속에는 따뜻한 마음씨와 만족감이 깃들어 있다. 호지 여사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바로 라다크의 이런 점을 본받으라고 호소하고 있다.

자신의 생존의 바탕을 무분별하게 무너뜨리면서, 그것을 오히려 진보와 발전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오늘날 이 땅에서 완전히 제정신을 잃고 살아가는 일부 인간들의 교만심과 탐욕이 ‘진정한 미래는 오랜 옛 지혜 속에 있다’며 20년 전 호지 여사가 그의 책 ‘오래된 미래’를 통해 제기한 충고(호소)를 선뜻 바뀔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이 충고를 외면한 결과가 끔찍한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4대강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낙동강변 낙단보에서 왜 마애부처님이 구멍이 뚫린 채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셨을까. 호지 여사의 강의를 들으며, 한줌 탐욕에 눈이 어두워 뭇 생명을 죽이고, 산하를 파헤치는 21세기 한반도에 사는 군상들을 향한 부처님의 준엄한 경고가 떠올려 지는 것은 우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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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호지 여사의 강연에 이어 혼성 3인조 그룹 ‘수리수리마하수리’의 독특하고 재미난 기념 공연을 끝으로 행사는 마무리 되었다. 헬레나 호지의 환경다큐멘터리영화 '행복한 경제학'은 5월 19일부터 열리는 제7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 상영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