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먹 가지에

물오르는 환한 밤

…

봄밤에 다녀가시라고

끈

풀어놓는다

-김일연 시인의 수상작 묵매 중에서

크게보기

캬-! 이 시조를 읽는 순간 무릎을 내리칠 수밖에 없었다. 한지에 그려진 묵매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한지에 그려진 묵매가 펄펄 살아나 짙은 향내를 풍기고, 그만 긴긴 봄밤, 춘정까지 불러일으킨다.

한 편의 아름다운 영화를 본 것 같기도 하고, 멋들어진 소설 한 권을 읽은 것 이상의 감동이 밀려온다. 시란, 시조란 이런 것이다. 역시 수상작은 뭐가 달라도 다른 것 같다.

2011 유심작품상 수상자로 강은교(시), 김일연(시조), 홍용희(평론)씨가 9일 각각 선정됐다. 해마다 가장 뛰어난 작품을 엄선해 발표하는 상이기에 문인들은, 또 문인은 아니더라도 우리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늘 이맘때면 어떤 작품이 수상작의 영광을 누리게 될까 귀를 쫑긋 세운다.

유심작품상은 만해 한용운 선생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선양하기 위해 만해사상실천선양회 제정하고 격월간 유심이 주관하는 상이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는 이날 △시 부문에 강은교 시인이 2010년도 《세계의 문학》 2010년 겨울호에 발표한 시 <희명>을, △시조부문에 김일연 시인이 2010년《시조21》 상반기호에 발표한 <묵매(墨梅)>를, △평론부문에 홍용희 평론가가 2010년 발간한 평론집 《통일시대와 북한문학》(국학자료원)을 각각 유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강은교 시인의 이번 수상 작품 <희명>은 고통 받는 영혼에 바치는 절절한 영가, 일종의 강은교표 ‘살풀이의 시학’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희명’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여인으로, 태어난 지 5년 만에 눈이 먼 아이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아이에게 간절한 노래를 지어 분황사 왼쪽 전각에 그려진 천수대비(千手大悲)께 빌게 했더니 눈이 떠졌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조선 문인화를 대표하는 강세황의 묵매도를 소재로 한 김일연 시인의 시조는 그 그림보다 더 선명한 이미지를 제시하면서 시인의 정(情)마저 포개놓고 있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한 자, 한 단어를 별 행 처리하며 눈으로 읽을 때 긴장을 주면서도 귀로 읽을 땐 시조의 가락을 타는, 툭툭 부러지며 이어지는 김일연 시인 특유의 시혼(詩魂)과 시율(詩律)이 긴장되게 조응하고 있어 이 작품을 수상작으로 올리는데 심사위원들은 이견이 없었다.

2011년 유심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홍용희의 『통일 시대와 북한 문학』은 극한대립으로 치달리는 정치적 상황 하에서 우리 문학의 미래를 예견하는 비평적 균형 감각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남다르게 평가되어야 할 저서로 평가됐다. 90년대 이후 김정일 시대의 변동하는 북한 문학의 실상을 구체적 작품 분석을 통해 치밀한 논리로 밝혀 줌으로써 우리 문학의 당대적 현실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 통일시대 우리 문학의 미래도 조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학적 성과라는 점이 인정됐다.

심사위원으로는 이근배(시인 ․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 심사위원장), 유자효(시인 ․ 한국PEN클럽 부이사장), 이가림(시인 ․ 인하대 명예교수), 최동호(시인 ․ 문학평론가 ․ 고려대 교수), 장영우(문학평론가 ․ 동국대 교수), 이경철(시인 ․ 평론가 ․ 동국대 겸임교수), 홍성란(시인 ․ 성균관대 강사)씨가 참여했다.

시상식은 8월 만해축전 기간 중에 백담사 만해마을(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서 있을 예정이며, 상금은 각 부문 1천만 원이다.

각 부문 수상자 약력 및 수상작은 다음과 같다.

<제9회 유심작품상 시부문 수상자 ‘강은교’>

크게보기*약력

1945년 함남 홍원 출생. 연세대 영문과 및 同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68년《사상계》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허무집》 《풀잎》 《빈자일기》 《소리집》 《등불 하나가 걸어오네》 《시간은 주머니에 은빛 별 하나 넣고 다녔다》 《어느 별 위에서의 하루》 《벽 속의 편지》 《초록거미의 사랑》, 육필시집《봄무사》, 100인시선 《그대는 깊디깊은 강》 외 다수. 시산문집으로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무명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시에 전화하기1》. 에세이집으로 《추억제》 《그물사이로》 《잠들면서 잠들지 않으면서》 《허무수첩》,《사랑법》외 다수. 그 외에 역서로 K.Gibran의《예언자》, H.D.Thoreau의《소로우의 노래》, 시동화 외 다수. 한국문학작가상, 현대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수상. 현재 동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수상작-‘희명’

희명아, 오늘 저녁엔 우리 함께 기도하자

너는 다섯 살 아들을 위해

아들의 감은 눈을 위해

나는 보지 않기 위해

산 넘어 멀어져 간 이의 등을 더 이상 바라보지 않기 위해

워어이 워어이

나뭇잎마다 기도문을 써 붙이고

희명아 저 노을 앞에서 우리 함께 기도하자

종잇장 같아지는 흰 별들이 떴다

우리의 기도문을 실어 갈 바람도 부는구나

세월의 눈썹처럼 서걱서걱 흩날리는 그 마당의 나뭇잎 소리

희명아, 오늘 밤엔 우리 함께 기도하자

나뭇잎마다 기도문을 써 붙이자

워어이 워어이

서걱서걱 흩날리는 그 마당의 나뭇잎 소리

-《세계의 문학》 2010년 겨울호

<제9회 유심작품상 시조부문 수상자 ‘김일연’>

*약력

크게보기1955년 대구출생. 1980년 《시조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빈들의 집》 《서역 가는 길》 《달집 태우기》 《명창》, 시선집으로 《저 혼자 꽃 필 때에》, 동화집으로 《하늘발자국》이 있음. 이영도시조문학상, 한국시조작품상, 보림유아문학상, MBC창작동화대상 수상. 동시조 <친구생각>이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 수록됨.

*수상작- 묵매(墨梅)*

고양이 발자국이 점점이 다녀간 후

매화

먹 가지에

물오르는 환한 밤

우물에 별자리인 양 뜨고 있는 괭이 눈꽃

가느다란 붓끝이 찍고 간 눈동자에

별빛

모아

불꽃 일 것만 같다

봄밤에 다녀가시라고

끈

풀어놓는다

-《시조21》 2010년 상반기호

<제9회 유심작품상 평론부문 수상자 ‘홍용희’>

*약력

크게보기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및 동 대학원 석사 박사. 1995년 〈중앙일보〉로 등단. 저서로 《김지하 문학연구》 《꽃과 어둠의 산조》 《아름다운 결핍의 신화》 《대지의 문법과 시적 상상》 《현대시의 정신과 감각》 등이 있음. 젊은평론가상, 편운문학상 등 수상. 《내일을 여는 작가》 편집위원 역임. 《시작》 《한국문학평론》 《포엠토피아》 편집위원,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총무이사, 한국시학회 총무이사. 현재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

*수상작품집

《통일 시대와 북한문학》 2010년 국학자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