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 중 맨처음 찾아오는 입춘(立春)은 한해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날이다. 해마다 입춘이면 전국 사찰에서는 민간 세시풍속에 맞춰 삼재(三災: 홍수, 태풍, 화재 혹은 질병, 기근, 도적)부적을 쓰고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라는 입춘방을 나눠주는 풍습이 있어왔다. 그러나 절에서 부적을 나눠주는 행사에 논란이 그치지 않았고, 불교적 행사가 아니라는 비판도 그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입춘을 맞아 불상의 먼지를 터는 이색법회가 열려 눈길을 끌고 있다. 살을 에는 추위를 겪고 이제 따듯한 봄바람의 기운을 느끼는 2월 6일 입춘인 2월4일부터 진행한 입춘 3일기도 회향일. 서울 은평구 역촌중앙시장 내에 위치한 저잣거리 포교원 열린선원(선원장 법현스님, 전 태고종총무원 부원장)에서는 ‘부처님 씻어드리기(浴佛)법회’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의 법회를 봉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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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사찰에서 행하는 삼재소멸부와 옷가지를 태움으로써 3재가 소멸된다는 일반적인 의식에서 탈피해 보다 더 불교적인 색채가 강하게 느껴지는 대안법회로 열린선원 원장 법현스님이 ‘부처님 씻어드리기 법회’를 제시한 것이다.

‘부처님 씻어드리기 법회’는 불상을 이운하고 닦을 때와 같은 조심스러운 마음, 정성스러운 태도를 지니고 살아가는 삶의 태도가 3재(三災)의 장애를 없애고 마음과 말과 행동으로 지은 3업(三業)을 청정히 해서 맑고 향기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기원하는 법회이다.

법현 스님을 비롯한 50여 신도들은 이날 흰 장갑을 끼고 삼존불 뒤에 모셔진 원불(願佛) 300여 좌를 조심스레 내렸다. 내려진 불상들은 상위에 덮인 흰 화선지위에 나란히 모셔졌다.

불단에 모셔진 부처님을 옮기는 신도들의 손길은 막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온 아이를 품은 듯 조심스럽고 신중했다. 40여 분 시간이 걸려 내려진 불상을 순서와 줄에 맞춰 일렬로 가지런히 모시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수행과정과 다르지 않았다.

원불이 모두 내려지자 신도들은 법현스님과 함께 ‘목욕하는 참된 말씀 옴 바다모 사니사 아모카 아레 훔’을 염송하면서 부드러운 털로 만들어진 솔을 들고 지난 1년 동안 불상에 쌓인 먼지를 조심스럽게 털어냈다. 부처님 머리 부분의 나발(螺髮), 육계(肉髻)까지 구석구석 말끔하게 닦여진 불상을 원래 위치로 옮기는 데는 더 많은 정성과 시간이 필요했다.

신도들의 코끝에는 긴장으로 인한 땀방울이 맺혔고, 입가에는 환희로움이 묻어났다. 너나 없이 뿌듯한 마음이 충만, 이들에게 3재는 가당치도 않게 느껴졌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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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선원에서는 2005년 개원이래 2006년 입춘법회부터 부처님씻어드리기 법회를 봉행해왔다. 법회에 동참한 불자들은 “마치 몸과 마음에 쌓인 묵은 때를 털어내는 것처럼 새롭고 신선한 느낌” ,“부적을 받고 기도를 하는 것 이상으로 부처님에 대한 예경심이 들고 내 마음도 개운하다. 기복적인 행위가 아닌 실천을 통한 신행활동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큰 것 같다”며 좋은 반응을 보였다.

신도들은 “입춘이면 문화적 이유를 들어 업장소멸, 삼재풀이 법회가 열리지만 불교적인 의미가 담긴 새로운 입춘 법회가 필요한 것 아닌가 생각하는데 법현스님께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 따라가는 마음이 가볍다”며 “불제자로 평생 닮아야할 부처님 몸에 쌓인 먼지를 털어드리는 것은 우리 마음에 쌓인 먼지를 터는 것을 상징한다. 또 부처님께 먼지를 털어드리 듯 누구나 마음의 때를 닦을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법회에는 일본 히로시마에 거주하는 박대근씨와 정대협 활동을 열심히 하는 김판수씨, 문단활동에 열심인 이인희, 김형락씨 ,불교미술가인 정임순, 조순일씨 등이 동참해 눈길를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