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보성선원 분원장(주지) 소임을 본 지 만3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처음 소임을 보는 터라 시행착오도 다소 겪었습니다. 제방의 스님들께 포교하는 법, 소임 사는 법에 대해 배우고 싶었지만 저의 열정이 부족해서인지 제대로 배울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물론 배운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절에서 1년에 두 번 시행하는 ‘어르신 영화단체관람’과 ‘자비의 김장나누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2009년 3월 어느 날 울산 해남사 주지 만초 스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자신이 관광버스를 빌려 해남사 인근 지역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극장에 가서 당시 화제의 영화 <워낭소리>를 보여드렸더니 무척 좋아하시더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고 당장 그 영화를 상영하고 있는 대구 한일극장으로 찾아가 그 영화의 단체관람에 대해 문의했습니다. 그리고는 지난 가을까지 우리 동네 어르신들에게 영화를 네 번 보여드렸습니다. 제가 봤을 때 영화 단체관람은 괜찮은 프로그램입니다.

자비의 김장나누기는 제주 삼광사 현명 스님으로부터 배웠습니다. 그 절은 이번에 2천포기 이상 김장을 담가서 이웃돕기를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저는 배우고 싶습니다. 그러니 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스님도 배우고 싶어 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시행했던 몇몇 포교 프로그램을 기록하여 공개하면 다른 스님이 활용하실 때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고 더 나은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보성선원에서는 동지를 하루 앞둔 지난 12월 21일 자비의 팥죽 나누기 행사를 처음으로 가졌습니다. 김장나누기 행사를 끝낸 지 불과 보름 남짓 지난 때여서 우리 신도님들은 무척 힘들어 하셨지만 이웃을 위해 다시 한 번 팔을 걷어붙여 주셨습니다.

팥죽나누기는 김장나누기와 달리 적은 비용으로 큰 성과를 얻었다고 자평합니다. 김장나누기와 마찬가지로 팥죽을 통한 이웃돕기는 지역사회에서 불교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줄 뿐만 아니라 사찰에 대해 호감을 갖게 한다는 측면에서 권할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 글을 행사를 끝내자마자 썼습니다. 그리고는 망설였습니다. ‘세 번째 자비의 김장나누기에 대한 보고서’를 쓴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글을 올리면 대중들이 식상해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대중들의 판단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제 글이 거칩니다. 그저 뜻만 취하시기 바랍니다.

2011년 1월 5일

(재)선학원 대구 보성선원 분원장 한북 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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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절에서 이전에 하지 않았던 행사를 해보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 12월 7일, 한 달에 한 번 하는 어르신 공양을 마친 후 신도회 임원들과 ‘자비의 김장나누기’에 대한 평가회 겸 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동짓날 팥죽을 얼마나 준비해야 하는가를 논의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어느 신도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혼자 사는 노인들은 팥죽을 안 끓여드십니다. 팥을 삶고 새알 비벼서 끓여야 하는데 일이 많고 번거로워서 끓여먹고 싶어도 못 끓여먹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어차피 동짓날 팥죽을 끓이니까 그런 분들을 위해서 한 번 더 끓이면 어떻겠습니까?”

그 자리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김장나누기’ 뒷마무리가 채 끝나기도 전이니 누가 열렬하게 호응하겠습니까? 어떤 신도님은 “하면 좋지예∼ 그렇지만…”이라고 말하면서 말끝을 흐렸습니다. 어떤 신도님은 “안 하면 좋겠습니다.”라고 ‘용감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서로 다른 신도님들의 눈치를 살피는 듯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박효병 송현1동장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지금 구상단계인데요. 우리 절에서 동짓날 팥죽을 끓여서 지난번 김장을 드린 분들에게 드리면 좋겠는데, 동장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동장이 대답했습니다.

“아이고, 김장하신다고 다들 고생 많이 하셨는데, 팥죽까지요? 저야 좋지요.”

“통장님들이 또 도와주실까요?”

“좋은 일이니까 통장님들이 도와주시겠지요.”

“일단 알겠습니다. 하기로 결정하면 전화 드리지요.”

전화를 끊고서 신도님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면 동장도 통장들 동원한다고 합니다. 죽으면 썩어문드러질 몸 아껴서 뭐합니까? 일을 할 수 있을 때 어려운 이웃을 위해 보살행을 좀 합시다.”

신도님들은 그러자고 대답했습니다만, 마지못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습니다. 신도님들이 저를 독재자라고 하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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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많지 않았으므로 당장 준비를 해야만 했습니다. 상주가 고향인 보현심 보살님은 차를 몰고 가서 상주 친척집으로 가서 팥 6말과 찹쌀 3말을 사왔습니다. 묘각지 보살님은 시장에 가서 일회용 그릇을 550개 사왔는데, 김장을 담가 드린 집이 모두 243가구였고, 동짓날 오시는 신도님들도 한 그릇씩 싸 가시기 때문에 좀 넉넉히 준비했습니다.

이렇게 준비해 가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우리 송현1동에 주민센터를 새로 지어 개소식을 가졌었는데, 마침 그날이 해남에서 배추가 오는 날이어서 저는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김장 때 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도 할 겸, 주민센터도 한 번 볼 겸 무진향 보살님과 지난 12월 13일 동장을 찾아갔습니다. 동장이 말했습니다.

“통장들 반발이 좀 있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김장 배달도 힘들었는데, 팥죽까지 배달해야 되느냐고 합니다.”

“거 참, 그렇긴 하죠.…”

“33명 중에 남자는 다섯 사람 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여자통장인데, 차가 없으니까 남편의 도움을 받아야 되거든요. 한 번은 어찌어찌 했는데 두 번이나 부탁하려니까 그것도 힘든데, 노인들이 집에 잘 없어서 몇 번씩 가야하니까 더 힘든다는 겁니다. 거기다가 통장들한테 직접 말하지 않고 동장을 통해서 명령처럼 내려간 것에 대해서도 불평이 좀 있구요. 음… 그래서 이야긴데 내일 오전 11시에 통장 회의가 있으니까 절에서 누구 한 분 오셔서 직접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11시면, 내가 직접 올게요.”

저는 사시마지 올리는 시간을 조금 일찍 당기면 될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스님이 직접 오실 거까진 없고, 무진향 보살님이 오셔서 말씀을 좀 해주시지요.”

절로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직접 인사하고 협조를 구하는 게 좋겠지만 편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편지를 한 통 썼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지역 주민들을 위해 헌신하시고 봉사하시는 여러 통장님들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우리 보성선원에서는 제가 부임해 온 이래 송현동 지역 주민들에게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 오고 있습니다. 통장님들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내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저는 지난 3년간 우리 지역의 저소득층 어르신과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왔습니다. 개인의 게으름과 나태로 인한 빈곤은 자신이 감당할 문제이므로 논외로 치고, 사회구조적 문제로 생긴 빈곤은 국가가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국가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분들에게는 종교단체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며칠 전에 여러분께서 도와주셨던 ‘자비의 김장나누기’도 바로 그런 측면에서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한 바탕 폭풍이 휘몰아치듯, 김장이 끝나고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홀로 사시는 어르신들은 동짓날 팥죽이라도 끓여드실까?’ 주위 분들께 말씀을 드려봤더니 못 끓여드시는 분이 많을 거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저는 그분들을 위해 팥죽을 끓여드리기로 결심하고 신도님들의 동의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동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협조 가능성에 대해 타진했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제가 실수를 하나 범했습니다. 정작 팥죽을 집집마다 배달해야 하는 통장님들의 동의와 양해를 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의 견문이 좁았고, 생각이 짧았기 때문입니다.

‘자비의 김장나누기’에 도움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도 할 겸, 새로 문을 연 주민센터도 볼 겸해서 어제 오후에 공문을 들고 박효병 동장님을 만났습니다. 동장님이 저의 생각이 미치지 못한 부분을 말씀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제서야 저의 실수를 알게 되었습니다. 지면을 통해 통장님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직접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마땅하지만 100일기도를 하는 중이라 참석하지 못합니다.

기왕 시작한 일이니 이번 팥죽 나누기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내년에는 미리 여러분들께 협조를 구하고, 만약 여의치 않을 경우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지역 주민의 행복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시는 통장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보성선원을 찾아주시면 따끈한 차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2010년 12월 14일

보성선원 주지 한북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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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무진향 보살님에게 이 편지를 인원만큼 출력해 드렸습니다. 뒤에 들으니 무진향 보살님은 정해진 시각에 가서 유인물을 하나씩 나눠 드리고 그 자리에서 낭독해드렸다고 합니다. 이로써 통장들의 반발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12월 20일, 마야회장 청량심 보살님을 중심으로 한 신도님들은 하루 전에 씻어서 물에 담가둔 팥을 삶았습니다. 그리고는 적당히 식었을 때 그물망 속에 넣고 짓이겨서 팥물을 만들었습니다.

팥은 충분히 익을 만큼 푹 삶아야 합니다. 양이 많고 기온이 높을 경우 팥이 쉬기 때문에 쉬지 않도록 솥의 뚜껑을 열어두거나 주걱으로 뒤척여줘야 합니다. 실제 2009년 동짓날 어느 절에서는 삶아둔 팥이 쉬어서 버렸다고 합니다.

푹 삶은 팥 적당량을 그물 속에 넣고 맑은 물을 부은 다음 짓이겨야 합니다. 자루 속에 삶은 밥을 넣고 풀을 만드는 것과 비슷합니다. 세 번을 반복해서 짓이겨 팥 속에 든 속을 빼내고 그 팥물을 따로 보관합니다. 이 팥물을 편의상 ‘먼저 낸 팥물’이라고 부르기로 하지요.

그리고 같은 작업을 3~4번 더 반복합니다. 이번에 빼낸 팥물도 따로 보관합니다. 이 팥물을 편의상 ‘뒤에 낸 팥물’이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삶은 팥 전부를 물속에서 6~7번 짓이겨 팥물을 만듭니다. 이같은 작업을 팥 4말이 다하도록 계속해야 합니다.

한켠에서는 새알심을 준비했습니다. 이 일은 주로 연세 드신 노보살님들이 맡았습니다. 찹쌀과 멥쌀 2말씩을 방앗간으로 보내 빻고 반죽을 만들어 와서 새알을 비볐습니다. 새알이 서로 붙지 않게끔 널따란 차판에 골고루 펴고 서로 포개지지 않도록 담아두었습니다.

21일 오전 9시 경부터 팥죽을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팥물을 뺄 때 ‘뒤에 낸 팥물’은 비교적 농도가 옅은데, 이 팥물을 가마솥에 올린 후 저으면서 끓입니다. 이때 ‘먼저 낸 팥물’을 적당량 넣어가면서 농도를 조절합니다. 만약 ‘먼저 낸 팥물’로 끓이게 되면 팥앙금이 솥바닥에 눌어붙기 때문에 ‘뒤에 낸 팥물’로 끓이는 것입니다. 농도를 맞춘 팥물을 팔팔 끓인 후 쌀을 넣습니다. 이것도 끓으면 새알심을 넣고 다시 끓입니다. 새알심이 익었는지 확인하면서 적당히 끓입니다.

부엌에 있는 큰솥과 다용도실에 있는 가스레인지에 커다란 양은솥을 걸고 두 군데에서 죽을 끓였습니다. 끓인 팥죽의 뜨거운 김이 빠지기를 기다려 미리 준비한 용기에 팥죽을 가득 담고 비닐봉지에 넣어 법당 앞에 미리 마련해 둔 탁자에 줄지어 쌓았습니다. 용기에는 미리 이런 내용의 스티커를 붙여두었습니다.

국산 팥과 찹쌀로 정성껏 끓였습니다. 자비의 팥죽 나누기 (재)선학원 보성선원 대구 앞산 대서초등학교 건너편 골목안  621-3333

대웅전 앞 천막을 치고 그 앞에는 탁자를 2개 갖다놓았습니다. 천막 전면 윗부분에 현수막을 하나 만들어 부착했습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사진을 넣었는데, 한쪽에는 보살님 한 분이 팥죽을 젓고 있는 모습이, 다른 쪽에는 빚어놓은 새알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글씨만 댕그라니 있는 것보다 훨씬 보기가 좋았습니다.

오후 3시 달서구 곽대훈 구청장, 조원진 국회의원, 박효병 송현1동장, 달서구의회 김철희 의원, 김주범 의원, 전태선 의원과 33개통 통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촬영을 하고, 통장들은 미리 정해진 명단대로 각 통별로 팥죽을 싣고 갔습니다. 모두 277그릇인데, 이 가운데 33그릇은 통장들 몫이었습니다. 김장 배달과 팥죽 배달을 한다고 수고한 데 대한 최소한의 인사였습니다.

‘자비의 팥죽나누기’ 행사를 하는 데 있어서 지난 3일간 연인원 90명이 참여했으며, 팥 4말, 찹쌀 2말, 맵쌀 4말 5되가 소요되었습니다.

소요 비용을 한 번 짚어보겠습니다.

팥 : 4말×150,000원 =600,000원

찹쌀 : 2말×60,000원 =120,000원

맵쌀 : 4.5말×45,000원=202,500원

그릇 : 277개×410원 =113,570원

합계 1,036,070원

이 가운데 그릇 값을 제외하고는 다 들어온 것이므로 실제 이 ‘자비의 팥죽나누기’ 행사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첫번째 ‘자비의 팥죽나누기’ 불사를 원만하게 회향했습니다. 이번 불사에 동참하여 일을 해 주신 신도님들은 지역 주민들로부터 칭찬과 감사의 인사를 받았습니다. 인사는 두 가지였습니다. 팥죽을 끓여줘서 고맙다는 것, 그리고 팥죽이 아주 맛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처음에는 다소 마뜩잖아 했던 일부 신도님들도 팥죽 나누기를 잘했다는 입장으로 돌아섰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뜻을 모으고 힘을 모을 신도님들만 있다면 적은 비용으로 이웃에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신도님들이 힘을 모아주신다면 저는 내년에도 이 불사를 하고 싶습니다. 물론 사전에 통장님들의 협조를 구해야겠지요.

동짓날 우리 신도님들은 이날보다 더 많은 양의 팥죽을 한 번 더 끓였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노인 공양 때 오시는 어르신들이 많이 오셔서 드셨고 또 그릇에 담아가셨기 때문입니다. 동짓날 팥죽을 신도님들께 담아드린 것은 3년째, 이젠 동짓날이 많은 사람이 북적대는 흥겨운 날이 되었습니다. 자고로 사람이 북적거려야 절이 발전하는 법이라 했으니, 우리 절은 틀림없이 크게 일어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