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의 정체성은 정화(淨化)다. 정화란 오염된 것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며,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다. 오늘은 50년 전 정화를 위해 대법원에서 6비구들이 할복을 감행한 역사적인 날이다. 이 날을 맞아 불교정화운동기념사업회가 발기되고, 이렇게 ‘불교, 정화운동을 다시 생각한다’는 학술세미나가 열리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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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스승 금오 대선사의 명령으로 정화불사의 전면에 섰던 월서 스님이 11월 24일 정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최한 ‘불교정화운동 50년 기념 세미나’에서 감회어린 축사를 했다. 월서 스님은 “정화 이후 교단이 발전하고 신도가 늘었지만, 한 가지 정화 및 계율정신이 크게 퇴조했다”며 “이의 회복을 위해 정화기념사업회가 발족되었지만, 94년 종단개혁 이후 철거된 정화기념관의 복원과 정화기념일 제정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도 총무부장 영담 스님이 대신 읽은 치사를 통해 “전 종도의 정화의지를 내외에 알린 대법원 판결 60년을 맞는 오늘 ‘불교, 정화운동을 다시 본다’라는 주제의 학술세미나를 개최하는 것은 참으로 시의적절한 일이 아닐 수 없다”며 “종단차원에서도 불교정화운동의 정신을 계승하여 조계종의 미래를 열기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강구하고 실천에 옮기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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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제는 이런 상찬에도 불구하고, 현 조계종의 현실에서 정화란 빛 바란 낙엽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화는 어떤 면에서는 솔직히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어버린 느낌이 강하다. 월서 대종사의 언급처럼 정화는 조계종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용어라는 점에서 폐기시킬 수 없을 뿐, 계율의식이 극도로 혼미해진 작금의 현실에서 정화는 왠지 껄끄러운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같은 점에 대해 이날 발제에 나선 김광식 박사(동국대 연구교수)의 예리한 발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김광식 교수는 ‘불교정화운동과 조계종의 오늘-새로운 불교정화와 수행결사체의 고뇌를 제언하며’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해 오늘날 조계종단에서 ‘정화’가 처한 입장을 적나라하게 진단했다.

“종단개혁 세대(94년)들의 정화운동 지우기를 통한 새로운 종권창출”, “종단개혁 세력들의 와해 및 퇴진, 가속화된 불교 세속화, 제도개혁에 치중된 불균형, 수행종풍 및 청정가풍의 퇴진, 사부대중의 분열” 등 김 교수의 문제제기는 매우 뜨거운 성격의 것들이었다.

김 교수는 최근의 조계종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과거 역사인 불교정화, 종단 개혁을 애써 찾지도 않을뿐더러 종단역사와 거리를 두려는 행태가 노정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같은 역사부정의 흐름을 ‘심각한 자기부정’이라고 전제한 김 교수는 “자기의 역사를 부정하고 어떻게 탄력적, 건강한 종단의 진로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물었다. 김 교수는 또 “1600년 불교사의 전통은 어디로 가고, 장자 종단임을 주장하던 자부심은 어디에 갔으며, 종교집단과 정치집단 사이에서 외줄타기의 행보만을 경주하는 것이 아닌지 의아스럽다”고 매섭게 회초리를 들었다.

김 교수는 종단개혁 이후 조계종에는 △개혁주체들이 명리추구에 급급했으며 △개혁주체들이 분열, 해체되었고 △개혁 이념이 명실상부하지 못했으며 △재가불자의 배척·소외·무관심이 심화되었고 △종단의 자정, 자율의 기능 및 의식이 사라졌으며 △불교의 전통이 와해되고 정화이념이 부정되었으며 △사회적 관행을 수용함으로 인해 종단 운영의 전통이 소멸되었다는 점을 조목조목 제시했다.

김 교수는 종단의 모순 사례를 지적하며, 그 대안으로 ▲종립 율원 설립을 통한 승풍 및 계율의식 회복 ▲종립 염불원 설립을 통한 다양한 수행법 연구 및 지도 ▲세상과 소통을 통한 자비와 보살행 실천 ▲종단 정체성의 재정비 및 수립 ▲조계종연구소 설립운영을 통한 종단의 어제와 현재, 미래 조명 ▲종단 외곽의 수행결사체 운동 전개 ▲성찰 문화의 육성과 고양 ▲불교 언론의 육성 ▲불교지식인의 성찰 ▲자정, 자율의 문화 유도 등을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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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를 공동 주최한 보조사상연구원 원장 법산 스님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 “정화는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아직 정화는 진행중이며, 우리는 정화불사를 온전하게 끝내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법산 스님은 “조계사 안에는 자랑스런 정화회관이 있었다. 회관을 짓기 위해 많은 사람이 고생을 했다. 스님들이 탁발을 하고, 강원도에 가서 산삼을 캐다가 팔아서 불사금을 마련해 지은 것이 정화회관이었다. 지어질 때만해도 조계사 법당 다음으로 큰 건물로 종정스님과 총무원장, 감찰원장 스님들의 집무실이 다 이 건물에 있었다. 이 건물을 복원해야 한다. 단순한 건물 복원이 아니라 정화이념의 복원이라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법산 스님은 “정화의 완성은 곧 계가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계정혜 삼학 중에서 계는 근본에 해당된다. 계가 흔들리면, 정이고 혜고 없는 것이다. 결국 정화는 계율을 바로 세우자는 것이며, 종단에서도 이 부분에 각별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한 스님들이 계율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서는 재가불자들이 잘 해주어야 한다. 대만의 불자들처럼 스님들이 계율을 철저히 지킬 수 있도록 돕고 감시하고 그래야 한다. 그럴 때 스님들은 존경받고, 재가불자들은 승단을 믿고 신심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해 참석대중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한편 행사를 주한 불교정화운동기념사업회는 이날 세미나에서 발표한 발기문을 통해 △불교정화운동의 이념을 계승하는 기념사업회 설립 △기이 건립됐던 ‘불교정화기념회관’의 복원 △불교정화기념일 제정 및 정화정신 실천운동 전개 등을 종단 맟 사부대중에게 촉구하고 실천에 나설 것임을 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