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최초의 선원청규가 발간됐다. 조계종 전국수좌회 선원청규편찬위원회는 11월 10일 오후 4시 조계사 대웅전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선원청규』 봉정법회를 봉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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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청규는 선원에서 납자들이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규율을 성문화한 것으로, 중국에는 백장청규를 비롯해 11종의 청규가, 일본에는 선종 각 종파에서 발간한 9종의 청규가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전통시대부터 백장청규를 수입해 사용해 왔을 뿐 자체적인 청규는 한번도 마련된 적이 없었다. 대신 선원마다 내규를 만들어 백장청규와 더불어 선원을 운영하는 규칙으로 활용해왔다.

이번에 조계종이 발간한 선원청규는 전통적인 청규를 현대식으로 풀어냈다는 의미와 함께 한국 최초로 선원청규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조계종은 지난 2007년부터 선원청규편찬위원회를 구성해 지난 4년간 총23차에 걸친 회의를 거쳐 선원청규를 편찬했다. 선원청규편찬위원장 의정 스님은 봉정법회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번에 봉정하는 선원청규는 온고지신의 정신과 미래지향적인 입장에서 전통과 대안을 청규편찬의 원칙으로 삼았다”며 “중국 고(古) 청규 11편중 6편과 일본 고 청규 9편중 1편을 번역하였고 최근의 것으로 대만 불광사의 규칙과 프랑스 자두마을(틱낫한 스님) 비구계 개정판, 천주교 베네딕트 수도원 규약 등을 번역하여 참고해, 국내자료는 물론이고 중국·대만·일본 자료 등을 수집하여 두루 참고하는 한편 이 방면의 전문가들과 깊이 토론하고 자체적으로 여러 차례 연찬회를 거쳐 편찬을 완료하기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의정 스님은 또 “청규편찬위원회에서는 옛 전통은 잘 살리면서도 현대의 수행자들이 잘 수용할 수 있도록 힘써 노력했다,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은 과감히 삭제 또는 축약했고 보청의 현대화, 수행과 경제 및 문화, 수행복지, 생명살림 등 현대 수행에 빼놓을 수 없는 내용은 간단명료하게 보강했으며 미래 세계와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말했다.

선원청규는 찬술의의와 찬술 방향을 다룬 서론과 조계종의 종지와 역사, 조계종의 소의 율장 등을 다룬 1부, 그리고 선원의 수행과 생활 전반에 걸친 구체적 내용과 장례의 및 생명살림 등을 다룬 2부로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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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수좌회 학술위원장 월암 스님은 “이번에 발간된 선원청규는 한국불교 1700년 역사상 최초로 선원청규가 제정됨으로써 한국 선불교의 수행가풍을 수립했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가 있지만, 간화선을 바탕으로 하는 간화선 수행청규가 탄생됐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중국이나 일본의 고 청규들은 대부분 묵조선, 조사선을 중심으로 하는 청규인데 반해 한국의 선방에서는 간화선이 주요 수행법으로 정착돼 있다. 간화선의 수행법을 자세히 기술함으로써 일목요연한 간화선 수행체계를 정립하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의정 스님은 “현재 선방의 스님들이 좌선=간화선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참선 중심의 묵조선 수행과 동선 위주의 간화선을 구분하지 못한데서 생긴 오류”라며 “이를 고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 듯 하지만 대중들의 인식을 조금씩 바꿔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책에서는 조계종의 소의 율장 등을 한 챕터로 다룸으로써 율장과 선원청규의 어긋남이 없도록 주의를 하고 템플스테이, 단기출가와 같은 ‘현대적 보청법’까지 포함시켜 현대인들에 맞는 청규를 제시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최근 선방에서는 아침저녁으로 조실이나 방장에게 점검을 받는 입실문신의 풍습이 사라짐으로써 납자들의 공부 점검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큰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하지만 선원청규에서는 ‘입실문신·점검·거량’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횟수 등을 언급하지 않고 있어 다소 미흡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대해 월암 스님은 “사실 간화선의 가장 큰 장점은 1:1 교육, 즉 선지식과 납자간의 직접적인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점인데, 현재 선원에서는 점검이나 입실문신 등 지도를 받을 수 있는 체계가 미비한 것이 사실”이라며 “이같은 시스템이 갖추어지려면 우선 청안종사가 필요한데 각 선원마다 납자를 지도할 수 있는 스님이 없는 경우도 많다보니 1:1 교육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매우 힘들다”고 토로했다.

월암 스님은 이어 “하지만 사람 위주의 입실문신도 중요하지만 수행체계를 수립함으로써 그 체계 속에서 혼자 공부할 수 있도록 간화선 수행체계를 마련해 활발발한 수행가풍을 수립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다”며 “선원청규의 발간 이후 간화선 본래의 입실문신, 참문, 거량 등 수행의 틀을 제대로 수립하는 것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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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선원 청규 속에 강제성이 전혀 없다’는 지적에 대해 진불선원장 설우 스님은 “부처님 당시에는 부처님이라는 인격적 모델이 존재했으므로 율장 등 정례화된 규율이 불필요했다. 하지만 부처님 입적 후 인도에서는 율장, 중국에서는 청규라는 틀을 통해 승가 질서를 바로잡아왔다”며 “선원청규는 승려로서 일상생활이 부끄럽지 않도록 인격적, 도덕적으로 잘해보자는 지침서이고 불법에 의해 인성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 것이므로, 승려로서 여기에 비추어 스스로 부끄럽지 않으려는 자각이 무엇보다 중요할 따름이지 여기에 강제성이 따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월암 스님은 “각 선원마다 나름의 가풍을 반영한 내규라는 것이 있다. 선원청규를 근간으로 하고 내규를 구체적인 실천방안으로 활용한다면 선원 운영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계종 교육원은 이번에 발간된 선원청규를 전국의 각 선원의 납자들에게 배포할 예정이며, 전국선원수좌회는 선원청규실천협의회를 결성해 전국의 모든 선원이 선원청규 실천에 동참할 것을 결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