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례, 그 중에서도 불교의례는 마을 사람들을 사찰에 초청해놓고 벌이는 이벤트성 잔치가 아니다, 솔직히 말해 ‘아니었다’. 불교의례는 문자를 모르고 난해한 법문을 이해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한 일종의 방편적 수행으로, 종교적 위의가 강한 종교단체 내지 수행전통에서는 의례법식이 지금까지도 매우 엄격하고도 경건하게 치러지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 이르러 불교의례가 수행의 방편으로 치러지는 경우를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조석예불 등 일상적인 의식을 제외한 한국의 불교의례는 크게 두 가지로 양분되는데 하나는 사찰의 재정적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각종 명목의 천도재가 그것이고, 또 하나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이라는 별도의 목적을 위해 법석을 펼지는 경우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불자들에게 있어서 각종 ‘재’란 복을 빌고 화를 피하기 위한 공간이지, 깨달음의 세계로 가는 쉬운 길이 아니다.

그나마도 제대로 남아있는게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고려~조선시대에 전해져온 대부분의 의례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최근에 벌어지는 각종 의식들은 현대에 새롭게 복원된 것들인데, 조계종에는 어산작법을 연구하는 스님들이 턱없이 부족해 조계종 사찰에서 펼쳐지는 각종 행사마다 타종단의 스님들이 초청돼 일종의 우정공연처럼 재를 벌이고 있는 현실이다.

이같은 의례문화의 붕괴는 불교문화 연구자들에게는 매우 안타까운 현실로 다가온다. 불교와 같이 매우 깊은 전통성을 갖고 있는 종교일수록 경건한 의례를 통해 아주 쉽게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의례의식들을 전수하고 보존해 바르게 활용하는 방법들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참담한 현실 속에서 출간된 미등 스님의 『국행수륙대재』(조계종출판사)는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불교문화재연구소 부소장을 맡고 있는 스님은 조계종에 몇 안 되는 불교의례연구자이다. 스님은 고려대에서 민속학을 연구하면서 의례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왔는데 몇 년 전부터는 삼화사 수륙재의 복원을 주도해왔다.

크게보기수륙재란 물과 뭍에서 죽은 고혼을 위한 재의식이라는 의미로, 중국 양나라 무제가 설행하기 시작해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처음으로 설행되었다. 특히 조선초기에 이르면 태조가 고려 왕씨들을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 견성사, 삼화사, 관음굴에 수륙사를 설치하고, 곧이어 진관사에 수륙사를 설치해 국태민안을 발원했다.

하지만 조선중기에 이르러 국행수륙대재는 대부분 폐지되는데, 이때부터 수륙재는 민간 차원에서 치러지는 대표적인 불교의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점차 수륙재를 전승하는 스님들이 하나둘 사라지면서 수륙재의 설행빈도는 점차 줄어들게 되었고, 현대에 이르면 거의 대부분의 사찰에서 수륙재를 설행하는 경우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최근 동해 삼화사에 이어 진관사에서도 수륙재의 복원이 시도되면서 다시 수륙재가 조명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번에 출간된 국행수륙대재-삼화사 수륙재를 중심으로는 삼화사 수륙재의 복원을 주도해온 미등 스님이 그동안의 연구내용을 정리한 국내 최초의 수륙재 연구서이다. 미등 스님은 삼화사 수륙재를 복원하면서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라는 조선시대 수륙의례문에 근거해 3일 동안 치러지는 재의 형태를 복원했는데, 이번에 출간된 『국행수륙대재』에는 수륙재의 의미, 3일동안 설행되는 수륙의례(준비의식-본의식-본의식과 회향의식), 설단장엄, 그리고 삼화사 수륙재의 모습을 담긴 100여장의 컬러사진들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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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는 하나하나의 형식이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절차에 따른 하나하나의 행위는 물론, 의례를 위한 설단과 장엄에 있어서도 의미와 상징을 담고 있다. 이 책에는 수륙재의 예술적 관점보다는 종교적 관점에서 접근하여 의례의 형식과 상징을 밝히고자 했다.”

한 사람의 연구자이기 이전에 출가수행자인 미등 스님은 이 책을 설명하면서 특히 ‘종교적 관점, 수행으로서의 의식’을 거듭 강조했다.

이 책은 수륙재를 쉽게 풀이해 쓴 최초의 연구서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지만, 무엇보다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고려~조선시대 수륙재의 원형을 다시 복원시켜놓았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는 책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