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원의 정규과정은 2년이고, 연구원과정 3년까지 합치면 5년인데, 이 기간이 끝나면 방사를 빼줘야 해요. 율원에 있을 때면 부처님 법답게 살다가도 5년 뒤에 딴데로 가면 사람이 환경의 지배를 안받을 수가 없죠. 그러다보니 계율과는 거리가 멀게 살고 막행막식도 하게 돼요. 계율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부처님 법답게 제대로 살 수 있는 도량, 평생토록 계율을 지키고 마음놓고 계율을 연구할 수 있는 도량이 우리 율사들에게는 참으로 절실한 소망이었습니다.”

계율붕괴라는 위기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팽패해있는 이때, 율사들이 “모범답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계율도량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전 파계사 율원장 철우 스님, 불교TV 회장 성우 스님, 조계종 계단위원 도일 스님이 의기투합해 한국 최초의 ‘계율근본도량’ 설립을 선포한다는 뜻을 밝혔다.

최근 고령 반룡사 주지로 임명된 도일 스님은 10월 20일 인사동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반룡사를 계율을 지키고 계율을 연구하는 ‘계율 근본도량’으로 세우고 계율 전문 연구자들로 모인 율장연구원을 설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룡사는 11월 3일 오전 11시 신임주지 진산식 및 율장연구원 개원식을 개최한다.

도일 스님은 “그동안 율장 연구의 근본도량의 필요성을 매우 절실하게 느껴왔다”며 “해인사, 통도사 등 총림에도 율원이 있지만 사중에 속해있다보니 불편한 점도 많고 율사들의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도량이 필요하다 생각했는데, 반룡사 주지를 맡으면서 이참에 율장연구원까지 개원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는 전 파계사 영산율원장 철우 스님과 통도사 영축율원장 덕문 스님이 함께 자리를 했다.

철우 스님은 “지금 사찰에서는 고기만 먹지 않을 뿐 공양에 오신채는 다 들어가 있다. (계율) 공부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쉽다. 내가 올해로 중노릇 50년째인데 스님들 모두 참회해야 한다”며 “계율이 전무한 상태에서 우리 스스로 창피함을 무릅쓰고 우리(율사)만의 사찰을 고집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철우 스님은 “총림에서 살다보면 뜻이 다른 사람들도 함께 어울려 지내게 되는데, 우리(율사들)를 마치 외계인이라도 되는 양 정상으로 안본다. 승납이 어느 정도 된 우리는 그것을 보통으로 받아들이지만 승납 10년 정도밖에 안된 스님들은 이런 부분에 대해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우리 율원에서 공부하던 젊은 스님 10명도 억지로 등떠밀어서 대만으로 유학을 보냈다. 율사들이 갈데가 없고 또 배울 데가 없어서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철우 스님은 “승가가 무엇이냐. 부처님 법을 받들고 부처님 법대로 사는 집단이다. 그런데 지금은 주객이 전도되어서 율장은 뒷전이고 종헌종법이 먼저이고, 중죄를 범했을 때는 세속법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며 “종헌종법이 율장대로 제대로 성립되려면 종회에서 우리 자리(율원 대표)부터 되찾아줘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계단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들이 율원 대표로 그 자리에 앉아 있으니 어떻게 율장에 근거한 종헌종법이 성립될 수 있겠냐”고 지적했다.

이에 도일 스님은 “반룡사는 앞으로 모든 일을 대중공의를 통해 해결하고 갈마를 통해 결정할 것”이라며 “재정 부분도 수입 지출을 모두 공개해 대중들과 공유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룡사 율장연구원은 앞으로 ‘계율연구의 중심센터’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계획이다.

덕문 스님은 “경장의 연구는 비교적 활발하게 진행된 데 반해 율장 연구성과는 매우 미미하기 짝이 없다. 이는 현재 계율연구에 대한 무관심과 열악한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율원과 연구원을 졸업한 스님들 수십명이 모여 논강을 벌이고 의견을 교환하면서 체계적인 연구를 하다보면 많은 성과들이 도출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덕문 스님은 이어 “반룡사는 앞으로 모범답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도량으로 자리매김 할 것”이라며 “율장연구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계율 전공자를 연찬하고 계율에 대한 자문도 할 수 있는 계율전문도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철우 스님은 앞으로 율장연구원이 진행할 사업들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철우 스님은 “요즘 KTX를 타면 마스코트(키로와 아로)가 눈에 들어오는데, 우리도 그런 계율동자 캐릭터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계율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러 방안들을 고안해나갈 것”이라며 “하루에 지킬 수 있는 1~2가지 계율을 쉽게 풀어서 작은 카드도 만들어서 배포할 예정이고, 현대화된 계율들을 쉽게 풀어서 현대인들과 스님들에게 보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철우 스님은 또 “국가에도 육법 전서가 있어야 형을 집행할 수 있듯이 승가에도 <승갈마>가 있어야 사찰에서 잘잘못을 가릴 수 있다”며 “<승갈마>를 쉽게 풀어서 빠른 시일 내에 발간하고, 십수년 전에 발간한 <사분율>을 현대어로 바꾸어서 다시 출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