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조선 정부는 더 이상 불교에 대한 탄압책을 자행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불교계 승려들이 더 이상 국가의 이익에 반하는 존재가 아님을 스스로 입증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조정의 유학자 관료들은 공공연히 승려들을 이단의 무리라고 칭했고, 국역을 피해 산으로 도망을 간 피역집단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전국의 승려들이 의승군을 조직해 왜군에 맞서 싸웠고, 이들이 세운 승전보가 조정에 연달아 도달했다. 그 중심에는 사명당 유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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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대사의 활약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후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일본땅에 건너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담판을 벌인 끝에 조선의 포로 1390명을 데리고 귀국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사명대사가 탐적사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돌아온 후 스님의 이야기는 조선 민중들에게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스님의 활약상은 임진왜란 직후 일반 민간에서 지어진 『임진록』에 상세하게 묘사돼 있다.

여기에는 스님이 일본에 갔을 당시 일본인들이 스님을 무쇠로 만든 집에 묵게 하고는 밤새 집을 달구었는데 다음날 아침 스님 눈썹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거나, 도술을 부려 장마비를 쏟아지게 해 일본을 물바다로 만들었다는 등의 신이한 이야기들이 기술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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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화들은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너무도 지친 조선 민중들에게 스님의 활약이 하나의 구원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그리고 이 과장된 이야기들을 스스로에게 들려줌으로써 상처받은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회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임란 이후 조정에서는 더 이상 승려들을 국가에서 불충하는 무뢰배 집단으로 간주할 수가 없었고, 오히려 승군들을 적극 활용하는 방향으로 불교정책을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사명대사를 비롯한 조선 승군들의 활약은 불교가 억불시대를 빠져나올 수 있었던 활로가 되었다.

올해는 사명대사가 입적한 지 꼭 400년이 되는 해이다. 스님은 1610년 8월 26일(음력) 해인사에서 입적하였고, 밀양 표충사에 배향되었다.

스님을 지난 400년간 추모하는 도량으로 역할해온 밀양 표충사는 사명대사 열반 400주기를 맞아 ‘사명성사 열반 400주기 추모대제’를 10월 9일부터 10일까지 개최한다.

‘400주기 기념행사’인만큼 올해 추모제는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봉행위원장을 맡고, 전국 25교구본사 주지들이 봉행위원을 맡는 등 전국 25교구본사가 참가하는 성대한 규모로 치러진다.

표충사는 추모제 기간 동안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10월 9일에는 학술세미나, 자비음악회, 백일장, 시낭송회, 사진전, 템플스테이 등이 열리며, 10일에는 추모법회와 영산재 및 위령제가 치러진다.

9일에는 표충사에서 사명성사 찬불가제가 열리며, 안숙선 명창 등이 참가하는 사명성사 판소리 발표회가 함께 개최된다. 9일과 10일 양일간 표충사 경내에서 사명성사 어린이 사생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또 9일 저녁 7시에는 사명성사 자비음악회가 열린다.

10일 오전 10시에는 표충사 표충사당에서 추모법회가 열리며, 이어 11시에는 다례제가, 오후 2시에는 명부전 앞에서 영상재가 열린다. 그리고 이날 저녁 7시에는 표충사 사당 앞에서 700의총에서 제외된 800여명의 승병들을 위한 위령제가 열릴 예정이다.

사명대사의 향사는 영조 20년(1744) 왕명으로 정한 이래 매년 3월과 9월에 두 차례 거행돼온 행사이다. 올해 가을의 추모대제는 534회를 맞이한다.

사명대사 열반 400주기 추모대제 봉행위원회는 “사명대사는 국운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을 때 국가의 명운을 밝힌 시대의 큰 스승”이라며 “고통받는 민중들을 위해 주장자를 버리고 칼을 택한 사명대사의 정신을 오늘에 다시 되새길 수 있는 성대한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