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와다 불교, 일명 소승불교는 더 이상 한국과는 거리가 먼 나라의 불교가 아니다. 2008년 사단법인 한국테라와다불교가 종교단체로 설립인가를 받았고, 이미 10여명의 스님들이 상좌불교 국가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또한 수만명의 불자, 혹은 비불자들이 테라와다 불교권 국가에 가서 계를 받고 위빠사나를 비롯한 상좌부권 수행법을 경험했다. 무엇보다 테라와다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날이 갈수록 더욱 고조되고 있다는 점에서 테라와다 불교는 이미 한국 불교계 깊숙이 진입해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한국불교의 축을 크게 바꾸어놓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더이상 작은 수레에 담긴 불교라고 폄하할 상황이 아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대승불교의 전통을 이어받은 한국에서는 여전히 테라와다 불교를 소승불교라고 칭하고 있으며, 상당수의 한국 스님들은 테라와다 불교의 수행법인 위빠사나가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수행법이고 이 방법으로는 성불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테라와다 불교에 대한 관심과 이에 대해 애써 무시하려 하는 시각은 현재 불교계에 공존하고 있는 두 축인 셈이다. 따라서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는 현재 한국불교가 당면한 커다란 과제라 할 수 있다.

이같은 문제의식을 토대로 상좌부 불교를 한국불교의 입장에서 조명한 의미있는 세미나가 열렸다. 계간 <불교평론>은 9월 10일 오후 1시부터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실에서 ‘상좌불교, 무시할 것인가 포용할 것인가’를 주제로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실상사 화엄학림 강사 재연 스님과 동국대 겸임교수 마성 스님, 고려대 조준호 연구교수, 한국교원대 박병기 교수, 동국대 박경준 교수, 고려대 이병욱 교수, 한양대 이도흠 교수 등 테라바다 연구자들이 대거 참석해 다양한 주제로 발표를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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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와 상좌불교의 만남의 역사와 과제'를 발표한 마성 스님은 한국의 테라와다 불교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상가의 인원수 문제와 탁발의 문제를 지적했다.

마성 스님은 “한국테라와다불교는 ‘구족계를 받은 비구가 최소한 4명이면 상가가 성립된다’고 했지만 엄격히 말하면 4명으로는 완전한 상가라고 할 수 없다. <빨리율>에 갈마를 할 수 있는 상가의 수를 10 비구로 규정하고 있다”며 “이러한 율장의 규정에 의해 한국에서 새로운 출가자들이 구족계를 받아 상좌불교의 전통을 이어갈 때 비로소 완전한 상좌불교가 한국에 정착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성 스님은 이어 “현재 테라와다불교 국가에서 행해지고 있는 출가자의 생활 방식은 붓다 당시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런 생활방식을 그대로 한국에서 적용하기란 여전히 어려운 것이 아니”라며 “특히 탁발은 출가와 재가의 관계를 유지해주는 측면이 있는데, 도시의 빌딩숲에서 탁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마성 스님은 “상좌불교의 교리와 교단의 조직 및 운영방식, 계율 준수 등은 한국불교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며 “한국불교 내부에 스며들어 있는 중국의 도가적 전통과 바라문적 전통 등은 하루 빨리 청산돼야 할 유산”이라고 지적했다.

‘빠알리어 경전과 대승경전의 사상적 차이’를 발표한 박경준 교수는 <숫따니빠따>와 <법화경>에 담긴 사상적 차이를 조명했다.

박 교수는 “<숫따니빠따>와 <법화경>을 비교해볼 때 빠알리어 경저노가 대승경전 사이에는 공통점도 있지만 분명한 차이점도 보인다. 가정 큰 차이점은 불타관의 차이, 그리고 출가와 재가를 바라보는 입장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빠알리어 경전은 대체적으로 부처님을 부모로부터 태어난 역사적 인간으로 바라보는 입장에 서있고, 대승경전은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불을 설하면서도 법신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출가와 재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빠알리어 경전은 출가지향적인 성격이 강한 반면, 대승경전은 출가와 재가를 크게 문제시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이어 “테라와다불교와 대승불교는 불교의 근본정신 및 시대정신에 비추어 볼 때 어떤 방식으로든 공존하게 될 것이고 또한 공존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테라와다불교와 한국 대승불교 사이의 유사성을 두가지로 꼽았다. 즉 테라와다의 주지주의적이고 자력적 구제를 추구하는 경향은 한국불교의 간화선 수행과 같은 자력적 불교의 흐름과 유사하며, 붓다와 상가에 대해 보시하고 공양함으로써 현세와 내세의 공덕을 쌓으려는 경향은 한국불교의 불공과 기도를 통한 제불보살의 가피를 추구하는 기복적인 흐름과 병존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전통적 테라와다 불교와 한국 대승불교의 만남은 새로운 차원의 불교, 이를테면 신승(新乘, Navayana) 또는 신대승의 불교를 만들어 갈 수도 있다”며 “그렇지만 테라와다불교가 개인적 수행만 강조하거나 한국불교가 대승이라는 미명하에 개인적 기복만 추구한다면 불교는 결국 사회와 역사로부터 소외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간화선과 위빠사나의 비교’를 발표한 이병욱 교수는 간화선과 위빠사나의 공통점을 두가지로 꼽았다.

이 교수는 “간화선은 사념처 가운데 법념처의 한 요소로 볼 수 있다”며 “간화선은 위빠사나처럼 일상의 활동 속에서 마음챙김을 하는 것인데, 다만 그 마음챙김의 대상이 화두라는 것이 위빠사나와 다른 점”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위빠사나처럼 간화선에도 칠각지의 맥락이 발견된다”고 지적했다. 즉 <입출식념경>에서 사념처를 들숨과 날숨의 수행 속에서 설명을 하고, 사념처와 칠각지를 연결해 설명하고 있는데, 이 칠각지에 관한 내용이 간화선을 설명하는 곳에 서도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위빠사나는 ‘교학연구에 안목이 있으면서 충분한 연령에 도달한 승려’만의 전유물이었는데, 이를 미얀마 등에서 현대화함으로써 재가자와 승려, 여성출가자들까지 전념할 수 있는 수행법으로 전환되었다”며 “이에 비해 간화선 수행법이 지금까지도 현대화되지 못한 것은 현재 한국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조계종의 ‘수행문화’와 연결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조계종의 수행문화에서는 출가와 재가의 이분법적 사유가 자리잡고 있어서 재가자에게는 ‘수행’보다는 ‘복을’ 구하는 자세를 취하는 경향이 있고 출가자는 수행을 통해서 종교적 권위를 획득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조계종의 수행문화는 친절하지 못한 경향이 있다”며 “이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간화선의 수행에 친절한 상담이 있어야 하고, 지도자의 자상한 점검이 있어야 하며, 지금처럼 간화선 중심의 경직된 태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것이 간화선의 현대화이자 대중화이고, 현대의 위빠사나 수행법에서 시급히 도입해야 할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새로운 것을 만나서 잘 적응을 한다면 본래의 문화는 더욱 발전할 수 있다. 현재 한국불교의 대표적 수행법인 간화선이 남방불교의 수행법인 위빠사나를 만나서 도전을 받고 있지만, 이 도전을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다면 한국불교 문화가 더욱 풍성해질 것이라 기대한다”는 말로 결론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