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고, 또한 감동적이었다.”

호주인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소재로 만든 엠마 프란츠 감독의 다큐영화 ‘땡큐, 마스터 킴’을 본 소감이다.

지난 25일 밤 이수역 시너스 영화관에서 열린 이 영화의 시사회에 다녀온 느낌은 복잡, 그 자체였다. 우리 것의 소중한 가치를 외국인들보다 우리가 더 모르는 현실. 이 노릇을 도대체 어찌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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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저명한 재즈 드러머 ‘사이먼 바커’가 어느 날 우연히 한국 친구로부터 받은 음악 하나에 매료되는 것으로 이 영화는 시작된다. 음악적으로 고비를 맞고 있던 바커에게 김석출이라는 한국의 명인의 굿소리와 장고 연주는 일종의 충격이자, 그의 음악적 영감을 일깨우는 돌파구였다.

그는 김석출 선생의 이 신비로운 연주를 수백 번 넘게 듣고 또 들었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그 음악에 담겨 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는 김석출 선생을 찾아 그는 오랜 시간을 헤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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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기교와 속주에 있어 인정을 받고 있었지만 김석출 명인의 자유로우면서도 영혼이 담긴 연주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어떤 깊은 세계가 있음을 그에게 알게 한 것이다. 세계적인 드러머인 바커는 교만하고 자신의 작업이 최고라고 치부하는 사람들과는 달랐다. 그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자신의 딜레마에서 탈출을 하기 위해 김석출 명인을 찾아 나섰다. 이 장면은 바커가 왜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고수인가를 잘 보여주었다. 자신이 가진 조그만 실력을 지키기 위해 타인을 쓰러뜨릴 궁리만 하는 세간의 소인배와는 차원이 다른 삶을 그는 줄곧 보여주고 있었다. 자신을 업그레이드 하려고 노력하는 진정한 고수의 모습이랄까. 아무튼 그는 7년 동안 17번이나 한국을 찾았다. 성도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한국인 스승을 찾아 나선 그의 여정은 마치 화엄경의 선재동자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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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인 김동원과의 만남은 그의 인생을 바꾸는 절대적인 기회를 안겨 주었다. 그는 김동원 교수를 만나 처음으로 김석철 선생과의 인연의 고리를 찾게 되었고, 또한 한국의 국악인들을 만나는 최고의 기회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국악인 김동원, 그러니까 그는 바커에게는 도반이자 안내자였으며, 어떤 의미에서 또 하나의 스승이었다. 김석출 선생을 만나기 전, 김동원은 유수한 한국의 국악고수들을 만나도록 안내했다. 김석출 명인이 아프다는 것도 한 원인이었지만, 스승을 만나기 전 스승의 음악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일종의 여정 같은 것이 필요했다고 그는 판단한 듯하다. 이런 의미에서 김동원은 단순한 안내자가 아니라 인로왕보살에 가깝다.

다른 문화를 인정하고 배우려는 사이먼 바커에 매료된 김동원 교수는 김석출 옹을 만나게 해주려는 여정에 동행한다. 도반이 된 것이다. 비록 우리나라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이먼 바커의 마음가짐과 그의 소리에 대한 열정을 이해하고 우리나라의 소리의 본질을 전수해 주기로 마음을 먹는 것은 보살행에 다름 아니다. 바커는 이 과정을 통해 기교와 기술이 아닌 우리나라 소리의 근원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해온 음악과는 다른 또 하나의 새로운 컨셉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점차 느껴가는 음악의 진수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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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스승을 찾겠다는 바커의 소원은 결국 김석출 명인의 별세 3일전에 이루어진다. 놀랍게도 타계 3일 전 김석철 명인은 바커를 대면하고 생의 마지막 연주를 한다. 눈물겹도록 감동적인 장면이다. 다큐처럼 극적 드라마도 없다고 했던가. 이 영화가 비록 딱딱한 느낌을 주는 다큐 형식을 하고 있지만 다른 어떤 영화에서도 느낄 수 없는 감동을 준다.

시사회에 끝나자 극장의 화면 아래에 주인공인 사이먼 바커와 판소리 배동일 명창, 김동원 교수가 함께 합연을 한다. 마스터 킴을 위한 벽안의 제자, 그리고 그를 안내했던 도반 국악인들의 연주회다. 연주회가 진행되는 내내 동서양의 만남, 오묘한 조화를 어떤 말이나 글로도 표현하기 어렵다.

감동 그 자체인 연주가 끝나자 나의 두 손은 얼얼하다. 얼마나 열심히 박수를 쳤던지 손바닥을 보며 겸연쩍은 미소를 머금었다.

드디어 엠마 프란츠 감독과 스티브 바커 그리고 김동원교수와 배일동 명창이 무대에 섰고, 시사회에 초대된 관객들과 인사를 나눴다. 무형 문화재인 고 김석출 명인의 가치를 알아보고 그에게 감동하고, 가르침을 받고 마침내 한 번밖에 만나지 못한 스승을 위해 다큐영화를 만들고, 이렇게 추모연주회까지 갖는 그들. 그들은 동서양을 구분하는 분별심마저도 잠재운 우리시대의 진정한 고수들이었다.

아무런, 또 추호의 주저도 없이 이 영화의 관람을 미디어붓다의 독자들께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