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전 이병주 박사가 지난 24일 타계했다. 조계종립 동국대가 배출한 최고의 석학이 세상의 인연을 접은 것이다. 이병주 박사의 글은 교과서에 실려 모든 학생들에게 널리 알려졌고, 그가 교수로 재직한 동국대에는 문학을 공부하려는 수재들이 밀려들었다. 그런 그가 지난 24일 조용히 떠났다. 그는 떠났으나, 비록 그의 타계가 다른 스승들처럼 떠들썩하지는 않았으나 그를 기억하는 후학과 인연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없는 아픔이요, 슬픔이 아닐 수 없다. 이병주 박사에게 박사학위 지도를 받은 제자 김형중 법사(선시박사)가 애도사를 미디어붓다로 보내왔다. 이를 게재한다. <편집자>

두보시(杜甫詩) 연구의 대가, 동악(東岳)의 별이 지다

천하 영웅도 세월은 이기지 못 한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 동국대학교가 만들어 낸 석학 중의 한 사람인 석전(石田) 이병주(李丙疇) 선생님께서 2010년 6월 24일 아침식사를 마치시고 89세로 영면하셨다. 부처님의 수복(壽福)에 9년을 더한 천수를 누렸으나, 졸지에 부음을 접한 경향각지의 제자들은 가슴을 치며 스승의 죽음을 애통한다.

영정 속의 스승님의 모습은 생전의 다부지고 옹골찬 선비의 모습 그대로 이다. 축구를 좋아하셨던 스승님이 ‘우야야 우야야 우리 동대 남산 코끼리(동국대 응원가를 석전 선생님이 작사했음)’ 하시면서 금방 사진 속에서 뛰쳐나와 대한민국의 축구가 숙원인 16강에 진출하여, 8강을 목전에 둔 우루과이전을 응원하실 것 같은데 무엇이 그쪽 일이 바쁘신지 홀연히 가셨다.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3학년)에 수록된 ‘고인과의 대화’이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세한도(歲寒圖)에 대한 선생님의 탁월한 감상과 평론은 수필 문학의 압권으로 대학입시 시험에 출제되는 단골 메뉴였다. 선생님의 글은 우리 민족의 고유어인 토박이말을 잘 구사하여 고전적이면서도 격조가 있다. 한 글귀가 천금의 값을 할 만큼 조탁(彫琢)하여 한 글자를 더하고 뺄 수 없는 완벽한 문장을 구사했다.

국어 선생님께서 동국대학교를 갈려면 양주동(梁柱東)과 이병주 선생의 글, 한용운(韓龍雲)과 서정주(徐廷柱) 시인의 시를 달달달 외워야 한다고 한 기억이 난다. 이런 인연으로 동국대학교를 처음 알게 되었다. 동악문단(東岳文檀)의 거목(巨木)들이시다.

이병주 선생님은 자타가 공인하는 두보시의 세계적인 권위자이다. 당대의 선지식인 우전(雨田) 신호렬(辛鎬烈) 선생에게 두시를 배웠고, 퇴경당(退耕堂) 권상로(權相老)스님에게 한문을 배웠다. 우전 선생에게서 어려운 두보의 한시를 공부하는데 워낙 두시가 어려워서 녹음기에 강의 내용을 녹음하여 백 번을 되풀이 하여 듣고, 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서 공부를 했다고 하셨다.

선생님의 두시연구 저술로는 단번에 이름을 얻게 한《두시언해 비주》를 비롯한 《두시연구》,《시성두보》, 《한국문학상의 두시 연구》 등 있고, 수필집으로는 《세한도》가 있다. 〈석보상절 제23 ․ 24 해제〉와 《한국한시선》, 《한국한시의 이해》 등도 걸작으로 뽑는다. 두보시의 연구에 있어서만큼은 중국 본토에서도 선생님을 능가할 학자가 없다. 선생님은 당신의 두보연구 저서를 한문교육학과 제자들과 중국 성도(成都)에 있는 두보사당을 참배하고 그곳에 기증하여 진열하게 하였다.

선생님의 동국 사랑과 제자 사랑은 남다르다. 동국대학교 국문과 출신을 서울대학교 국문과 출신에 버금가는 많은 대학교수를 배출해 냈다. 제자를 훈도할 땐 엄격하면서도 속정이 깊었다. 교육대학원 한문교육과 출신들도 10여 명을 박사학위를 공부하도록 종용하고 지도하여 현재 대학교단에서 강의하고 있다. 선생님의 제자로는 한국 선시(禪詩)문학의 개척자인 소석(素石) 이종찬(李鍾燦) 선생을 비롯하여 기라성 같은 한문학자들이 있다. 현암(玄庵) 정상옥(鄭祥玉) 동방대학원대학교 총장은 대학을 설립하는데 있어 선생님의 훈수를 많이 받은 입설(立雪) 제자이다.

선생님은 대단한 장서가였다. 평소에 책 자랑을 많이 하셨고, 고서(古書)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 선생님이 생명처럼 아끼며 애지중지했던 도서들은 생전에 모교인 동국대학교 도서관에 기증했다.

선생님께서 제자들의 학위논문을 지도할 땐 원고에 빨간 싸인펜으로 잘못된 곳, 보충해야 할 것 등을 세세히 기록해 제자들을 격동시켰다. 선생님의 박학다식한 학문과 논문에 필요한 근거 자료의 제시는 논문의 품격을 높여 주었고, 스스로 학문하는 방법을 일깨워 주셨다.

필자는 선생님의 말석제자이지만 박사학위 논문인《휴정의 선시연구》를 제출할 때는 《청허당집》과 《사명당집》의 귀한 고판본을 주시면서 논문을 지도해 준 사랑을 받았다.

선생님으로부터 분에 넘치는 은혜를 입었다. 결혼할 때 주례를 해주셨고, 1992년 필자가 한자의 214부수를 108부수로 창신(創新)하여 5000여 한자를 육서(六書)의 원리에 의해 정리하고, 설문해자(說文解字)한《한글세대를 위한 한자공부》를 집필할 때는 《육서심원》을 소개해 주시면서 참고하라고 지도하고 훈수해 주셨다. 책의 서문을 써주면서 우리 동악의 신조인 “회당능절정(會當凌絶頂) 일람중산소(一覽衆山小)”(두보시 望嶽)의 실천자가 되라는 뜻에서 ‘일평(一平)’이란 호를 지어 주셨다.

스승의 은혜는 부모의 은혜와 같다는 뜻을 이제 스승님을 영영 이별하면서, 평소에 잘 모시지 못한 죄를 참회하면서 깨닫게 되니 더욱 슬프다.

그토록 동국대학교를 사랑하셨고, 두보(杜甫)의 시를 사랑하셨던 스승님, 이제 그곳에 가시면 애인 두보도 만나 뵙겠습니다. 부디 부처님나라 극락에 왕생하셔서 동국대학교가 한국 사학 4대명문의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도록 보우(保佑)하옵소서.

불초(不肖)제자 광산인(光山人) 김형중(金衡中) 곡배(哭拜)하며 추도의 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