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보기“상심? 이런 정도에 마음 상할 사람 아니다”

“봉은사에 대한 일방적인 직영사찰 지정은 단순히 한 사찰의 주지자리를 놓고 벌이는 다툼이 아니다. ‘한국불교의 희망의 싹을 지키느냐’와 ‘다시금 한국불교가 고질적인 부패와 비불교적 관행으로 점철되느냐’의 힘겨루기이다. 나는 이 싸움에서 결코 타협이나 정치적 거래를 하지 않는다. 이것은 한국불교의 미래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에 예속된 불교, 세력과 이권에 혈안이 된 사람들이 횡행하는 종단은 이 세상에 필요하지 않다. 한국불교의 모습이 그래야 한다면 차라리 이 땅에 없는 게 낫다.”

천안함과 함께 가장 뜨거운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는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을 4월 15일 낮 봉은사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차담이나 하자는 약속도 있었지만, 총무원 호법부에서 소환설이 흘러나오고, 종회의원들이 공개적으로 징계하겠다고 나서는 판에 명진 스님의 심경이 어떨지가 궁금했기에 봉은사를 찾은 것이다.

환한 미소로 기자를 맞이한 스님은 ‘요즘 심경이 좀 어떠시냐’는 질문에 “좋다. 뭐 내가 하는 일이 옳은 일 아니냐. 옳고 떳떳한 일을 하는데, 마음이 불편할 까닭이 없다. 이 정도에 마음이 상하고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이 기자도) 잘 알지 않느냐”고 답한다. 아마도 지금쯤은 좀 외로울 것이라는, 또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기자의 예단은 만나는 순간부터 여지없이 빗나갔다.

“봉은사를 정말 잘 발전시킬 수 있었는데…용서가 안 된다”

“봉은사를 정말 잘 발전시킬 수 있었는데…. 이제야 봉은사 25만 신도들이 주지를 믿고 스님들을 믿고 ‘우리가 한국불교의 희망이 되자’는 공감대로 하나가 되었는데, 그 싹을 이렇게 짓밟아버리다니…” 명진 스님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 점만큼은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다”고 여러 차례 되뇌었다.

이어 스님은 돈으로 기준을 삼는 것이 어쩔지 모르지만, 1년 예산이 수백억대 심지어 천억대에 이르는 대형교회들이 수두룩한데, 강남 한복판에 있는 한국불교의 최대사찰이라는 봉은사의 1년 예산이 100억대에 지나지 않는 것은 그동안 사찰운영에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며, 이제 봉은사는 사부대중이 서로 신뢰하고 희망과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춰가는 중이었고, 이번 일만 잘 수습되면 봉은사가 한국불교의 희망임을 보여줄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공찰을 불교 희망으로 발전시키는 일, 봉은사가 하지 않았나”

“신도가 많아 누구나 주지가 되고 싶어하는 공찰의 주지를 맡아 임기 동안 절을 발전시키는 것보다 적당히 지내며 돈이나 끌어 모아서 사설사암이나 짓는 정말로 나쁜 절집의 관행을 깨고 싶었다”는 명진 스님은 “그 쉽지 않은 일을 내가 봉은사에서 해내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처음 신도들에게 절 살림을 완전하게 공개하고 법당의 불전함 열쇠도 신도대표들이 관리하도록 하자고 했을 때 내부적으로 반대의 목소리도 많았지만, 그것이 한국불교가 나아가야 할 길이고, 한국불교가 사는 길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또 사부대중이 함께 운영하는 종단이라는 94년 종단개혁의 미진한 부분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이었기에 내 뜻대로 따르라”고 고집했다는 명진 스님은, “그런 결단이 있었기에 오늘날 봉은사가 불교계는 물론 한국사회에서 신선하고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는 사찰로 우뚝 서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청와대, 한나라당, 총무원, 원로회의, 중앙종회, 본사주지 등이 한 목소리로 내가 잘못되었다고 하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구체적으로 말해보라”고 지적한 명진 스님은 “나는 부처님께, 봉은사의 사부대중에게 당당하고 떳떳하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옳다고 확신하기에 그 길을 기쁜 마음으로 걸어갈 뿐이다. 내가 법정 스님의 추모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고 하는 모양인데, 법정 스님이 하지 말라는 행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아니라 그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호법부에서 소환? 잘잘못 따져볼 좋은 기회로 삼겠다”

‘종단 호법부에서 소환할 거라는 이야기가 조계사 부근에서 돌던데…’라고 운을 띄우자, 역시 지체 없이 답이 나온다. “그거 얼마든지 환영이다. 부른다면 언제든지 가서 조사를 받을 것이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내가 잘못했는지 아니면 총무원장이 잘못했는지 조목조목 따져볼 생각이다.”

명진 스님은 현재 재가단체 등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에 관한 토론회’에도 적극적으로 응한다는 데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사실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은 명백하게 총무원장이 잘못한 것이라, 토론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공론화를 통해 문제를 풀자는 중재의 노력에 보답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절집의 일을 스님들이 알아서 막 처리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강조한 명진 스님은 “절의 주인은 실질적 주인은 신도이고, 불교의 주인은 1만여 승려가 아니라 천만 재가불자들이며, 이런 정신을 담은 것이 94년도 종단개혁의 정신과 상통하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종헌에 종단은 출재가 사부대중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고, 사찰운영은 신도가 참여하도록 의무화한 사찰운영위원회법이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봉은사를 사랑하는 사람들' 등 봉은사 신도를 자칭하는 일부 유령단체에서 명진스님에게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명진 스님은 봉은사 신도회 간부를 맡았던 김 아무개씨가 그런 짓을 하고 다니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한나라당 고위관계자와 긴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인데, 조계종중앙신도회에도 이름을 올리고 총무원쪽과 어울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신경쓰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극히 일부이고 봉은사 신도 절대적 다수는 총무원의 직영사찰 지정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일축했다.

“내가 꺾이더라도 종단 암적요소는 반드시 도려낸다”

“만일 이번 갈등에서 내가(봉은사 사부대중) 꺾인다면, 그것은 단순히 명진이라는 중 하나가 꺾이는 것이 아니고, 한국불교의 희망의 싹이 꺾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명진 스님은 “승려가 해서는 안 될 부패와 부정, 비승가적 행동을 저지른 암적 요소들은, 설사 내가 잘못되더라도 이 과정에서 반드시 도려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명진 스님은 이어 “봉은사 직영문제가 이 종단에서 정상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 종단에 남아 있지 않겠다는 그동안의 발언은 반드시 실천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렇게 썩은 집단이라면 남아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밝힌 명진 스님은 “그럴 경우 봉은사 신도들에게도 떠나기 전 내 자신의 입장을 소상하게 설명할 것이지만, 그런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자신했다.

지난 일요일(11일) 일요법회에서 밝힌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의 김영국씨에 대한 회유협박 발언과 자승 총무원장의 힐튼호텔 발언 등에 대해 누구의 말이 맞느냐를 놓고 진실게임의 양상이 벌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스님은 “이동관 수석이 나를 고발했는데, 고발대상은 사실 내가 아니다. 그러나 기왕에 고발을 했다니 진실을 밝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또 “힐튼호텔 자승 원장과 관련 발언에 대해서는 바로잡을 것이 있을 것 같다”고 말해, 일부내용의 정정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진 스님은 이와 관련해 18일 일요법회에서 밝힐 생각이며, 일요법회에서는 주로 법정 스님과 관련된 이야기를 전할 구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모든 일이 다 잘 마무리된 후 식사나 한 번 하자’는 약속과 함께 주지실을 나섰다. 배웅하러 마당까지 나온 스님에게 ‘이렇게 왔으니 사진이나 한 장 찍자’고 부탁해 평복 그대로 맨발에 고무신 차림으로 촬영을 했다. 차가운 날씨인데도 제법 강한 봄볕이 명진 스님을 특유의 미소처럼 환히 비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