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승가교육이 300년만에 큰 변혁을 하게 됐다. 지난 300동안 유지돼온 치문-사집-사교-대교 시스템이 깨지고 초기 및 아비달마 불교, 선학, 염불 의례, 어학 등을 포함하는 현대식 교육체계가 마련된 것이다.

조계종 교육원은 4월 6일 오전 11시 30분 총무원 회의실에서 전날 열린 제1차 승가교육진흥위원회 회의결과를 전했다. 승가교육진흥위원회는 4월 5일 열린 회의에서 △한글화 교재 △초기불교, 선 및 인문교양 등을 포괄하는 커리큘럼, 계절학기 및 학점이수제를 통한 학습동기 유발 등을 골자로 하는 승가교육 교과 개편안을 마련했다.

조계종 승가교육은 그동안 치문, 사집, 사교, 대교 등 조선후기에 정착된 교과체제의 틀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이같은 한문경전 중심의 교육체계는 시대변화에 맞는 불교지도자를 양성하지 못하고 불교의 후진화를 가져오는 주범으로 비판받아 왔다.

최근 자승 스님의 총무원장의 취임과 함께 구성된 제33대 집행부는 ‘승가교육을 통한 불교중흥’을 위한 모토로 내걸고 교육원장 현응 스님을 중심으로 하는 승가교육 개혁을 추진해왔다. 지난달 발족한 승가교육진흥위원회는 총무원장, 교육원장, 총무부장 등 집행부와 더불어 종단의 중진급 스님들을 위원으로 위촉, 승가교육의 실질적인 견인차 역할을 위해 새롭게 마련된 기구이다.

한글교재로 경전 강의한다

4월 5일 승가교육진흥위원회에서 결정된 교과 개편의 가장 큰 특징은 그동안 한문경전 위주로 진행돼온 경전교육을 한글화 교재로 대폭 바꾸고, 초기불교와 응용불교 과목의 이수를 대폭 확대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조계종 내부에서는 산스크리트어, 빨리어 경전이 유입된 상황에서 한문경전 중심의 도제식 교육을 할 필요가 있냐는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이에 조계종은 한문텍스트 대신 한글경전을 교재로 채택하는 한편 영어, 한문, 일본어 중국어 등 어학교육을 확대함으로써 폭넓고 다양한 불교경전의 이해가 가능하도록 조정했다.

선 수행, 이론과 실참 함께 배운다

또 한가지 특징은 선(禪) 수행과 관련된 과목들이 처음으로 승가교육에 포함됐다는 점이다. 그동안 조계종 승가교육에서는 서장, 선요 등 선 관련 경전을 공부하는 과목은 있었지만, 수행과 학습이 이원화돼 있었다. 즉 이론은 강원에서 배우고 실참은 선원에서 하는 이원화된 형태로 진행돼, 수행이론과 실참이 분리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번 교육개편안에서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승가대학 교육과정에 수행이론은 물론 수행 체험, 수행지도를 연구하는 교과목들이 추가됐다.

또한 불교미술, 문화재, 불교 의례 등 불교문화에 대한 교과목을 채택해 승려들이 한국 역사와 문화 전반에 있어서 불교의 위상과 중요성을 이해하도록 하고, 이를 토대로 포교와 전법에 활용할 수 있도록 개편했다.

이와 더불어 포교, 사회복지, 심리상담, 설법방법, 종무 행정 등 응용 과목 등을 이수하게 함으로써 기본교육 이수 후에 포교와 전법을 담당할 종교지도자를 양성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주지 하려면 연수교육 이수해야

조계종 승가교육 개편은 비단 ‘사미·사미니’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조계종은 처음으로 주지를 맡는 승려들이 5박6일간 초임주지자격 연수교육을 이수하고 선원에 2안거 이상 성만해야 한다는 자격개준 개정안을 4월 6일 종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올해 처음 주지가 된 승려이거나 내년부터 주지를 맡을 예정인 승려는 올해 2차례에 실시되는 초임주지자격 연수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이는 지난해 열린 제182회 중앙종회에서 말사주지 자격이 승납 10년 이상에서 5년 이상으로 하향 조정됨에 따라 초임주지에 취임하는 자격 기준을 마련하고, 사찰 주지들이 사회변화와 사찰 기능의 다양화에 따른 실무력과 지도역량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조계종 교육원은 앞으로 초임 주지뿐만 아니라 3급 승가고시, 2급 승가고시 자격기준에도 교육원에서 실시하는 연수교육 이수여부를 반영할 계획이다. 이 제도가 정착되면 구족계를 받은 스님이라 하더라도 종무행정이나 포교에 필요한 교육을 지속적으로 받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에 대해 조계종 교육부장 법인 스님은 “현 교육원의 모토는 ‘출가에서 열반까지’로, 조계종 승려가 출가를 한 직후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 평생토록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이들이 정말로 스님 노릇을 잘 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필요한 과목들을 제공하고자 노력했다”며 “이같은 시행안이 강원에서 실시될 경우 나름의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시대에 부합하고 사회적 요구를 갖춘 우수한 승려들을 배출할 수 있는 훌륭한 커리큘럼이라는 점에서는 확신한다”고 밝혔다.

승가대학의 구조조정 불가피

하지만 승가교육진흥위원회에서 결정된 교과목의 개편안은 다양한 교수진과 우수한 교과내용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현재 승가대학 학인의 수가 적은 곳은 총 7명(선운사), 가장 많은 곳은 183명(운문사)으로 강원마다 편차가 매우 심하다.

특히 30여명 이하의 학인이 공부하는 강원은 교육원에서 제시한 다양한 커리큘럼을 이행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에 조계종은 4월 16일 교육위원회, 중앙종회 포교분과위원회, 교육분과위원회 등 3개 위원회 합동으로 연석회의를 마련해 지방 강원의 구조 조정을 논의할 계획이다. 이날 연석회의에서는 몇 개의 승가대학을 통합하는 한편, 승가대학 기능을 갖지 않는 강원의 경우 전문대학원으로 특성화시키는 방안을 토론하게 된다.

조계종 교육원은 또 4월 30일 공개토론회를 열어 승가교육 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승가교육 개선에 반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