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스님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입적을 했다고 치자. 평소에 건강했던 스님은 유언장을 남기지도 않았고, 사후 재산에 관한 일체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스님이 남긴 재산은 어디로 가게 될까. 조계종단? 상좌들? 혹은 스님이 속해 있는 사찰? 모두 아니다.

정답은 속가의 가족들이다. 조계종 스님은 자식을 남기지 않으므로, 그 재산은 민법에 의거해 스님과 가까운 혈연들, 즉 친지들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스님의 사유재산은 신도들이 불교를 위해 바친 일종의 보시물이다. 그러므로 속가의 재산에게 돌아갈 것이 아니라 종단에 귀속해 불교의 발전을 위해 쓰여야 한다.”

이같은 취지로 마련된 법안이 3월 31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 조계종 승려사유재산 종단 출연의 령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여론이 만만치 않다. 종단에서 현재 소유하고 있는 사유재산을 모두 관리 통제하는 것이 아니냐는 여론이 가장 크며, 승려들의 노후복지는 전혀 책임지지 않는 종단이 사후재산만 귀속시켜려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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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은 이 법안의 홍보를 위해 3월 23일 오후 2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사유재산 종단 출연령의 올바른 시행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는 조계종 총무부장 영담 스님이 이 제도의 시행배경에 관한 발제를, 김형남 변호사는 이에 관한 법률적 이해를, 김응철 중앙승가대 교수가 이웃 종교의 성직자 사유재산 출연 제도의 사례를 각각 발표했다.

영담 스님은 “이 제도는 스님이 생존 당시에 형성한 재산을 미처 사찰과 재적본사에 등록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입적 등으로 인한 재산 상속의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고, 승려복지와 승가교육의 재원으로 적립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며 “많은 스님들이 현재의 소유재산에 대해 종단이 간여를 하거나 강제로 빼앗으려고 한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거듭 설명했다.

이어 김형남 변호사는 “스님이 유언을 남기더라도 언제든지 유언을 철회할 수 있으며, 이 법령은 유증을 하거나 사인증여를 한 승려에 대해 어떤 법적 제약도 주지 않는 규정”이라며 “이 제도는 출가정신과 승가공동체의 존재이유에 대한 재인식의 기회를 주는 상징적인 의미의 법안이라고 보는 거의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웃 종단의 사례를 발표한 김응철 교수는 “가톨릭의 경우 의무적으로 미리 유언장을 써놓게 되어 있어 유언장에 특별한 지정이 없으면 성직자의 모든 재산이 교구장에게 귀속되도록 하고 있다”며 “가톨릭에서 이같은 전통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성직자로서의 활동기간 뿐만 아니라 퇴임 후 임종에 이르기까지 모든 의식주를 교구에서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세 명의 발제가 끝난 이후 교구본사 주지대표, 중앙종회의원 대표, 법규위원장, 선원대표, 비구니회 대표 등 각계의 대표들이 ‘승려 사유재산 종단 출연령’에 관한 의견들을 제시했다.

이들의 의견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졌다. 첫째 스님들 내부의 포괄적 논의가 없는 상태에서 너무 급하게 시행한다는 것, 둘째 법적으로 얼마나 효력이 있냐는 것, 셋째 승려법 30조에서 무소유를 정의한 내용과 사유재산령이 사실상 충돌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반대의 목소리가 큰 부분은 법령 시행에 관한 시기상의 문제였다.

전국선원 수좌 대표로 나온 강설 스님은 “우리가 출가하고 수행을 하는 모든 것이 자의에 의한 선택인데 반해 이번 제도는 타의에 의한 강요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며 “어른 스님들부터 자율적으로 유언장을 쓰자고 나서고 그 다음에 후학들이 이를 본받아 해야 하는것이 율장의 근본인데,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갑작스럽게 승려분한신고기간 동안 사유재산을 종단에 귀속한다는 약속을 하라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강설 스님은 “1700년간 이 법 없이도 한국불교는 잘 지내왔고, 10년 20년 더 늦어진다고 해도 문제가 될 것이 없다”며 “이 법의 시행을 백지화 시켜서 모든 대중 스님들이 자발적으로 이같은 제도에 동참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설 스님은 또 “사실 천주교에서는 사제가 되어서 죽을 때까지 종단에서 모든 것을 다 보장해 주지 않느냐. 그런데 조계종에서는 모두 본인이 알아서 해야 되는데, 혜택은 없고 의무만 따르는 제도를 일방적으로 시행하려다 보니 종단이 사유재산 뺏으려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며 “조계종 2500개 공찰만 잘 관리해도 승려 노후복지 정도는 충분히 보장해줄 수 있는데, 이를 관리 못하니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법령을 성급하게 시행하기보다 총무원에서는 복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부터 종도들에게 제대로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이 법안이 제대로 시행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국비구니회 재무부장 성관 스님도 “사유재산 귀속령 시행 이전에 승려들의 노후복지부터 보장해줘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성관 스님은 “삼보정재 유출되는 것 방지한다는 법령의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사유재산 증여가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여러 비구니들이 이를 사유재산을 빼앗기는 것으로 생각하고 이에 대해 불안감을 토로하는 문의전화가 비구니회 사무실로 연이어 걸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성관 스님은 “비구니들이 이같은 불안을 가지는 것은 비구니들이 노후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현실 때문”이라며 “승려들이 평생토록 수행정진을 하다 갈 수 있는 노후시설의 마련이 사유재산 출연령 시행보다 더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청정승가를 위한 대중결사 대표 진오 스님은 “이 법령을 당장 3월 31일부터 입법예고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는 여론이 많다”며 “올해 연말까지 적극적인 홍보를 하고, 충분한 등록 기간을 주어야 현 집행부 또한 대중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오 스님은 이어 “충분한 홍보기간을 거친 이후에는 강제적인 시행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진오 스님은 또 “이 법령의 취지가 승가 노후복지, 승려교육기금 마련에 있다면 경주 지역의 큰 사찰이나 총무원 직영사찰들에서 먼저 기금 모아서 노후복지, 무상교육 위한 혜택을 우선 마련하고, 사후가 아닌 생전에 이런 혜택 돌아옴을 보여줌이 어떨까 생각한다”며 “기금위원회의 구성 또한 총무원장을 비롯해 총무원 집행부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는데, 일반 스님들과 재가자들까지 위원회에 포함시켜야 기금위원회의 객관성 담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총무원장 영담 스님은 “의료보험을 비롯한 승려들의 복지문제는 현재 총무부에서 계속적으로 준비를 하고 있고, 우선적으로 수도권에 두 개의 승려 요양시설을 마련할 계획을 갖고 있다”며 “홍보와 여론조성에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으므로 초파일 이전에 오늘과 같은 토론회를 다시 한 번 마련해 여러 종도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