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암자는, 내면으로 향하게 하는<br>자연과의 접속부사 같은 것

이학종 | urubella@naver.com | 2010-12-02 (목) 15:43

소설가 정찬주에게 공식처럼 따라붙는 상징어가 ‘성철’과 ‘암자’다. 최근 ‘법정’이 추가되기는 했지만 정찬주 작가의 대표 이미지는 누가 뭐래도 성철과 암자다.

특히 그가 펴낸 여러 편의 암자 순례기는 그에게 ‘소설가’와 함께 ‘암자순례자’라는 새로운 칭호를 가져다주었다. 그만큼 정찬주 작가의 암자사랑을 유별나다.

스님보다 암자를 더 많이 다닌 암자순례자 정찬주. 소설이든, 순례기이든, 수필이든, 칼럼이든 간에 그의 문장에서 심산유곡의 암자에서나 느낄 수 있는 청아한 바람소리와 물소리, 그리고 솔잎 향내가 물씬 풍겨 나오는 것은 순전히 암자순례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 이불재(耳佛齋)라는 이름의 ‘암자’를 짓고 사는 그. ‘글집’ 이불재는 화순 쌍봉사의 북암이라는 별칭을 얻었을 정도로 영락없는 암자의 모습이다. 정찬주 작가의 암자순례는 객의 입장에서 순례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암자가 되는 것이니, 게서 나오는 문장들이 암자 내음으로 충만할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스스로 ‘나그네’라고 부르길 즐기는 작가 정찬주는 “왜 산속에 집을 짓고 사느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한다. 인도의 바라문들은 자식을 다 키우고 난 후 숲속으로 들어가 사는 임간기(林間期)라는 전통을 지키고 살았는데, 작가 자신도 그런 셈이라고.

크게보기작가 정찬주가 암자기행 10년을 회향하는 책 『암자로 가는 길2』(열림원)를 펴냈다. 작가는 이 책의 머리 글에서 “어쩌면 이 책이 암자기행의 마지막 책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고 밝혔다. 새로 발간하는 책이 이미 내보낸 책보다 더 절절하지 못하거나 깊어지지 않았다면 독자에 대한 작가로서 예의가 아닐 것 같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 책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뜻이겠다.

“나그네는 부처의 미소를 접하는 순간 전율이 느껴진다. 무정의 바위에 어찌하여 유정의 미소를 새길 수 있다는 말인가. 미소가 있음으로 해서 바위는 살아 있는 생명이 되어 있다.”

작가는 경주 남산 칠불암에서 부처의 미소를 보고 이렇게 감상한다. 그리고는 그 감동으로 자신을 낮춘다. 그리고는 그 미소의 의미를 떠올린다.

“나그네는 일곱 부처의 미소 앞에 무릎을 꿇는다. 천년의 미소 앞에 삼배를 올린다. 옳거니, 어떤 상황에서도 휘둘리지 않고 빙그레 미소지을 수 있는 인격, 바로 그것이 부처가 도달한 경지가 아닐까.”

정찬주 작가의 암자순례에서만 보고 느낄 수 있는 표현이며 감동들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편하다. 암자를 보는 법, 암자를 읽는 법을 넘어 암자에 깃든 각종 성물들의 의미와 그것이 순례자에게 던져 주는 교훈들까지 정찬주의 암자순례기는 친절하게 해박한 불교에 대한 경륜과 특유의 유려한 문장으로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의 글을 읽고 출가를 하거나, 그의 책을 들고 암자 순례 길에 오른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이는 그의 글이 갖고 있는 힘이다.

어느 날 문득 이불재에 한 노신사가 찾아왔다고 한다. 점잖고 온화해 보이는 이였는데, 방으로 불러 차를 대접하니, 암 선고를 받고 난 후 암자를 순례 중인 노신사였다. 차 한 잔에 합장을 올리는 성정을 가진 이 노신사는 차를 마시다가 배낭 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보였는데, 그것이 바로 정찬주 작가가 쓴 ‘암자 순례기’였다. 6개월 남았다는 선고를 받고 암자를 찾아 6년째 다니는 중이라는 말을 듣고 작가는 자부심 대신 자신을 나무란다. “저 노신사의 생명과 바꾸어가며 읽는 글이 될 줄 알았다면 그때 좀더 정성을 다해 쓸 것을…. 노신사가 찾아다닐 수 있는 암자를 한두 군데라도 더 많이 소개할 것을”

이번 암자 순례기는 춘하추동 네 부분으로 나눠 구성되어 있다. 첫째 ‘나를 설계하는 봄암자’ 편에서는 천덕산 산성암을 비롯하여 가야산 금강굴, 선석산 중암, 승달산 목우암, 모악산 해불암, 백암산 약사암, 미륵산 사자암, 고령산 도솔암, 오봉산 홍련암 등이 다뤄져 있다.

둘째 ‘나를 성장시키는 여름암자’ 편에는 무척산 모은암, 호거산 북대암, 내연산 서운암, 추월산 보리암, 거령산성 영월암, 서천 영수암, 설화산 오봉암, 한라산 존자암이 소개되어 있다.

셋째 ‘나를 사색하는 가을암자’ 편에는 불광산 척판암, 영축산 비로암, 남산 칠불암, 백운산 상백운암, 성수산 상이암, 운장산 난암, 계룡산 대자암, 봉수산 대련암이, 넷째 ‘나를 성숙시키는 겨울암자’ 편에는 지리산 금대암, 지리산 문수암, 백운산 상연대, 두륜산 상원암, 달마산 부도암, 천봉산 만일암, 덕룡산 문성암이 실려 있다.

작가는 이 책의 끝부분 ‘작가의 오솔길’란에서 이렇게 말한다.

“산사의 기호는 침묵의 덩어리 같은 적막이다. 그 적막은 자기 자신을 내면으로 향하게 하고, 자연과 가까이하게 하는 접속부사이다. 사람이 입을 닫그 적막은 으면 자연이 입을 연다는 금언을 잊지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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