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에 가져가지 않으려 하니 더 이상 내 이름으로 된 출판물을 출판하지 말라. 맏상좌 덕조는 다른 생각하지 말고 10년간 오로지 수행만 할 것이며, 다른 상좌들과 합심하여 맑고 향기로운 도량을 일구어라.”

길상사(주지 덕현)와 사단법인 ‘맑고향기롭게’는 3월 17일 오후 3시 길상사 도서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정 스님의 유언 전문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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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유언장을 남긴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동안 두 가지에 대한 관심이 모아졌다. 우선 스님의 저서 가운데 지금까지 출판된 모든 책들을 더 이상 찍어내지 않는 것인지, 혹은 앞으로 새롭게 기획발간될 책들을 내지 말 것인지의 여부, 그리고 스님의 후계는 누가 계승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었다.

법정 스님은 입적하시기 약 2주일 전인 2월 24일 변호사의 공증 하에 일반 대중들에게 남기는 글과 상좌들에게 남기는 글 등 두 종류의 유언장을 남겼다.

스님은 ‘남기는 말’이라는 유언장을 통해 스님이 남긴 모든 재산을 (사)맑고향기롭게에 전한다는 것, 더 이상 당신의 저서를 출간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어 ‘상좌들 보아라’는 두 번째 유언장에서는 상좌들에게 “모두 스스로 깨닫도록 거들지 못하고 떠나서 미안하다”며 “내가 떠나더라도 마음속에 스승을 따라 청정 수행에 매진하여 자신 안에 있는 불성을 드러내기 바란다”고 간곡히 당부했다.

스님은 특히 맏상좌 덕조 스님에게 “다른 생각하지 말고 결제 중에는 제방 선원에서, 해제 중에는 불일암에서 10년간 오로지 수행에만 매진한 후, 사제들로부터 맏사형으로 존중을 받으면서 사제들을 잘 이끌어주기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이는 맏상좌 덕조 스님에 대한 법정 스님의 애틋한 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덕조 스님은 법정 스님의 병환 시에 길상사 창건주 계승 문제를 일으켜 길상사 주지 직을 박탈당하고 법정 스님으로부터 송광사 불일암에 근신할 것을 명받았다.

스님은 당신이 입적한 후 자칫 이 사건이 상좌들 간의 알력이나 불화의 씨가 될 것을 우려하여 덕조 스님에게는 따뜻한 채찍을, 나머지 상좌들에게는 맏상좌에 대한 존경과 신뢰를 당부함으로써 불씨를 제거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스님은 또 스님의 침상 머리맡에 남아있던 책들을 스님에게 신문을 배달해준 이에게 전할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법정 스님의 유언장 공개가 끝난 직후 (사)맑고향기롭게 윤청광 이사는 맑고향기롭게 이사회가 결의한 내용들을 발표했다.

윤 이사는 “(사)맑고향기롭게에서는 스님의 유지를 존중해 더 이상 출판사 측이 스님의 책을 발간하지 않을 것을 정중히 부탁드린다”며 “스님의 책을 읽고 싶어하는 독자들이 언제든지 스님의 글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사)맑고향기롭게 이사진들은 더 이상의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인터넷 웹사이트나 웹북을 통해 스님의 책을 무료로 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현장 스님, 이계진, 변택주, 윤청광 등 (사)맑고향기롭게 이사진들이 참석했다.

<다음은 유언장 전문>

남기는 말

1. 모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어리석은 탓으로 제가 저지른 허물은 앞으로도 계속 참회하겠습니다.

2.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있다면 모두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에 주어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데 사용토록 하여주십시오.

그러나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으려 하니 부디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 주십시오.

3. 감사합니다. 모두 성불하십시오.

2010년 2월 24일 법정 속명 박재철

상좌들 보아라.

1. 인연이 있어 신뢰와 믿음으로 만나게 된 것을 감사한다. 괴팍한 나의 성품으로 남긴 상처들은 마지막 여행길에 모두 거두어 가려 하니 무심한 강물에 흘러 보내주면 고맙겠다. 모두들 스스로 깨닫도록 열과 성을 다해서 거들지 못하고 떠나게 되어 미안하기 그지 없다.

내가 떠나더라도 마음 속에 스승을 따라 청정 수행에 매진하여 자신 안에 있는 불성을 드러내기 바란다.

2. 덕조는 맏상좌로서 다른 생각하지 말고 결제 중에는 제방 선원에서, 해제 중에는 불일암에서 10년간 오로지 수행에만 매진한 후, 사제들로부터 맏사형으로 존중을 받으면서 사제들을 잘 이끌어주기 바란다.

3. 덕인, 덕문, 덕현, 덕운, 덕진과 덕일은 덕조가 맏사형으로 존중을 받을 수 있도록 수행을 마칠 때까지는 물론 그 후에도 신의와 예의로 서로 존중하고 합심하여 맑고 향기로운 도량을 이루고 수행하기 바란다.

4. 덕진은 머리맡에 남아있는 책을 나에게 신문을 배달한 사람에게 전하여주면 고맙겠다.

5. 내가 떠나는 경우 내 이름으로 번거롭고 부질없는 검은 의식을 행하지 말고, 사리를 찾으려고 하지도 말며, 관과 수의를 마련하지 말고, 편리하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없이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하여 주기 바란다.

2010년 2월 24일 법정 속명 박재철

서울 성북구 성북동 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