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 '무소유' 로 잘 알려진 법정(法頂) 스님(78)이 오늘 오후 1시 51분 성북동 길상사 행지실에서 상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반에 들었다. 병세가 위중한 상태로 그동안 삼성서울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오던 스님은 오늘 낮 길상사로 옮겨졌으며, 자신이 회주로 있는 길상사에서 끝내 열반에 들었다. 열반소식이 전해지자 조계종 중앙종회는 회기 중에 잠시 회의를 마치고 스님의 열반을 애도하는 묵념을 가졌다. 조계종은 잠시 뒤인 오후 3시 법정스님 열반에 따른 공식 기자브리핑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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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은 최근 3∼4년간 지병인 폐암으로 투병하면서 몇 차례 수술과 치료를 받았고, 지난 겨울 제주도에서 요양해왔으나 병세가 악화되면서 현재 서울 삼성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법정 스님은 입적 직전까지도 의식를 또렷하게 유지하며 입적후 장례 절차에 대한 유언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지근거리에서 법정 스님을 지켜온 한 관계자에 따르면 법정 스님은 생명연장을 위한 치료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법정 스님은 또 제자(상좌) 및 ‘맑고향기롭게’ 측근들에게 자신의 장례는 간소하게 치를 것을 당부했으며, 종단에서 공직을 맡지 않은 만큼 종단 차원의 장례는 치르지 말 것이며, 관도 짜지 말고, 수의도 따로이 마련하지 말고 현재 입고 있는 옷 그대로 다비할 것을 상좌와 측근에게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영결식을 따로이 하지 말고 다비식만 치르도록 하고, 일체의 꽃장식을 삼갈 것이며, 다비후 사리 등을 수습하지 말 것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스님은 오래 전부터 ‘죽고 싶어도 일주일 넘게 번다하게 장례를 치르는 게 꼴보기 싫어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다’는 말을 자주 남길 정도로 일부 스님들의 시끌벅적한 장례절차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있던 것으로 알려진다. 스님은 또 당신의 다비는 많은 나무(장작)를 태워 없애는 사찰식이 아닌 일반화장장에서 치르고 싶다는 말도 몇 차례 가까운 지인들에게 전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스님은 평소 홀가분하게 떠나는 방법은 제줏배(제주로 가는 배)를 타고 가다가 아무도 모르게 바다로 뛰어드는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하기도 했으며, 이런 스님의 말을 의식해 지난 겨울 제주도 요양을 위해 제주를 오갈 때에도 측근들은 배를 피하고 비행기를 이용해야 했다.

입적 직전까지 팔 다리가 석가모니 부처님의 고행상을 연상할 정도로 야위었던 법정 스님은 미음으로 식사를 대신하는 것조차도 내켜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법정 스님은 문병이 허가된 몇 안 되는 측근들에게 병세가 위중한데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문진을 하고 가면 ‘지금 저승사자가 왔다갔다’며 조크를 할 정도로 입적 직전까지 또렷한 의식을 유지하는 등 수행자다운 놀라운 정신력을 보여주기도 했다고 알려진다.

또한 스님은 입적 며칠을 앞두고 측근에게 ‘나 이제 빨리 가고 싶다’며 ‘이제 아무데도 쓸 데 없게 된 이 몸뚱이로 더 살려고 하는 것은 욕심’이라며 기도와 식도를 통한 음식물과 산소 투여를 일절 거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법정 스님의 상좌들과 맑고향기롭게 운영진 등 스님의 측근들은 스님의 뜻을 최대한 받들어 모신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측근들은 스님의 영결식은 송광사 장으로 하는 것으로 송광사쪽과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입적 후 법정 스님을 추모하고자 하는 불자와 일반 국민들을 위해 분향소는 서울 길상사와 송광사 두 곳에 설치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스님과 친분이 있는 종교계나 출판계, 문학계 등 사회 각계의 지인들과 추모객을 위해 다비식이 끝난 후 적절한 때에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추모의 밤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법정 스님은?

크게보기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1955년 출가한 법정 스님은 1976년 대표적인 산문집 '무소유'를 출간한 이후 불교적 가르침을 담은 산문집 '영혼의 모음', '텅빈 충만', '물소리 바람소리', '오두막 편지'등 산문집과 번역서 20여권을 내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또 1997년에는 기부받은 성북동 요정 대원각을 길상사로 탈바꿈시켜 개원한 이후 정기적으로 대중법문을 들려줬다.

1975년부터 17년간 전남 순천 송광사 불일암에서 지낸 스님은 1992년부터는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홀로 지내왔으나 최근 병세가 악화하면서 길상사의 정기법회에는 지난해 4월19일 봄 정기법회를 끝으로 참석하지 않았다.

법정스님은 자신의 건강상태를 의식한 듯 2008년 11월에는 길상사 소식지에 실었던 수필들을 모아 '아름다운 마무리'를 출간했고, 지난해 6월과 11월에는 2003년부터 했던 법문을 묶은 첫 법문집 '일기일회'와 두번째 법문집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