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사, 숭산선사 전법제자 대봉스님이 조실로 주석하는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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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질문을 하면, 또 다시 물음표가 돌아오는 곳. 무상사에 오면 항상 물음표 속에 머물게 된다.

계룡산 무상사는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수행자들의 ‘도래지’ 같은 곳이다. 숭산 스님의 외국인 제자들은 현재 세계 100여개의 수행공동체를 이끌며 세계일화(世界一花)의 꿈을 펼쳐나가고 있다. 외국에서 활동하는 스님과 재가법사들은 여름이나 겨울 안거철이 되면 한국으로 날아와 3개월을 지내고, 다시 자신의 활동 공간으로 돌아가곤 한다. 숭산 스님이 계룡산 기슭에 주장자를 꽂은 후, 콘테이너 박스에서부터 지금의 여법한 사찰이 들어서기까지 이곳을 지켜온 무상사 조실 대봉 스님. 동안거 결제를 3일 앞둔 2월 25일 무상사에서 대봉 스님을 만났다. 이번 동안거에는 스님 11명과 행자 3명, 재가자 19명 등 총 33명의 수행자들이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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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봉 스님은 숭산 스님의 외국인 제자 가운데 유일하게 전법게를 받은 제자로 유명하다.

숭산스님이 입적하며 남긴 편지에 “대봉스님 중심으로 관음선종 이끌라” 유지

숭산 스님은 입적 당시 당신이 세상을 떠난 후 3년 뒤 이 편지를 열어보라는 유언을 남기고 입적하셨다. 2년전 유럽의 한 도시에서 편지를 개봉했을 때 그곳에는 대봉 스님을 중심으로 관음선종을 이끌어 가라는 당부가 적혀 있었다. 그리하여 대봉 스님은 무상사 조실로서 뿐만 아니라 숭산 스님의 법을 잇는 전법제자로, 숭산스님의 제자들을 이끄는 지도자로 다시 한 번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스님은 어떤 인연으로 이곳까지 오시게 되었습니까.”

외국인 스님을 만나면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 대봉 스님에게 던져진 첫 번째 질문 또한 그것이었다.

예일대서 숭산스님의 “집착하면 미친 것” 법문 듣고 제자의 길 선택

1950년생인 스님의 어린 시절은 미국이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의 패권을 확보해나가던 시기였다. 스님의 집안은 유대인계로 사업에 크게 성공한 명문 집안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것이 풍족하던 시절, 그 어린 나이에 이미 스님은 세상에 많은 고통 있음을 발견했다고 한다. 11살 때 일본으로 여름캠프를 간 스님은 한 절에서 아주 커다란 불상을 처음으로 보았다. 20미터 높이의 큰 불상을 보자, ‘저분은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물론 그때는 불교가 무엇인지, 부처가 무엇인지 전혀 모를 때였다. 그 불상을 보면서, 언젠가 살아있는 부처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15년 후, 숭산 스님을 처음 만났을 때 무언가 얻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분을 따라 승려가 되었다.

대봉 스님이 숭산 스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77년 예일대 인근에서 열린 한 강연회였다. 그날 한 심리학 교수가 “정상은 무엇이고, 미친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대봉 스님은 ‘동양의 수행자가 어떤 대답을 할까’ 궁금해 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

숭산 스님은 “당신이 만약 어떤 것에 매우 집착하고 있다면 미친 것이다. 당신이 만약 어떤 것에 조금 집착하고 있다면 조금 미친 것이다. 그리고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고 있지 않다면 미치치 않은 것이다. 이 세상은 미친 사람으로 가득차 있다”라고 답했다.

대봉 스님은 “그 순간 10년 동안 해온 심리학 공부보다 스님 말씀에 더 마음에 와 닿았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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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돼도 미래는 늘 두려움 “결국 난 누군가? 찾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세계대공황을 겪고,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은 세대입니다. 그들 세대에는 더 좋은 세상, 더 잘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동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세대들은 이들이 일구어놓은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이런 부유함 속에 고통은 여전히 존재하고, 이 고통이 세계에서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여기 계신 분들의 부모님 세대도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입니다. 따라서 그분들도 더욱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커다란 동기 있었습니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을 한번 보십시오. 점점 더 잘 사는 상류층들이 늘어나지만, 젊은 세대들은 내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때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어떻게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그러자 또 다시 등장한 물음표. “Who are you?

“I don't know”가 아니라 “Just don't know”다

스님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에게 어김없이 질문을 던진다.

어떤 이들은 엉겹결에 ‘○○신문사 기자입니다’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킨다. 이미 수차례 당한 바 있는 기자들은 그 질문이 언제 날아올까 내심 조마조마해 하는데, 오늘의 답변자는 “I don't know”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그러자 스님은 “No, just don't know. 오직 모를 뿐이라고 말한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I don't know가 아니라 Just don't know입니다. 부처님도 그 해답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6년간 수행을 했고 어느 날 새벽에 별을 보고 우리의 본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우리 인간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첫 시작점은 우리의 본성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분을 깨닫게 되면 우리가 하는 일 무엇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기자도 좋고, 거리의 청소부도 다 좋습니다. 우리는 ‘오직 모를 뿐’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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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유지 따라 무상사를 누구나 함께하는 벽없는 선방으로 운영

무상사는 안거철에 재가자와 스님들이 함께 안거에 들어가는 유일한 곳이다. 대봉 스님은 이에 대해 “우리 스스로 벽을 갖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숭산 스님은 항상 우리에게 ‘뭘 짓지 말라’고 하셨어요. 뭘 지으면 공부하기 어렵게 된다고. 스님은 또 재가자들하고 너무 큰 벽을 짓지 말라고 하셨어요. 마음의 벽을 자구 만들면 우리에게도 큰 장애가 된다고. 재가자가 출가자가 모두 한 방에서 같이 정진하고 있습니다. 공안을 잘 타파하려면 내 머릿속에 뭘 자꾸 짓지 말아야 합니다. 내 마음 속의 벽, 재가와 출가, 나와 우리라는 벽이 무너져야 큰 진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무상사에는 내국인과 외국인, 출가자와 재가자의 벽뿐만 아니라 종교간의 벽도 없다. 유럽의 가톨릭 수사들이나 영국 국교회의 목사들도 이곳에 와서 안거에 참가한다. 하지만 스님들은 그들에게 별도로 직업을 묻지 않고, 그들 또한 자신의 종교를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대봉 스님은 “오계를 받고 계율을 실천하는 것이 불자이며, 그가 어떤 종교를 지녔든지 상관없이 누구나 수행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오직 모를 뿐 화두로 정진 중

“숭산 스님은 네가 만약 불자라면 100% 불자가 되어서 수행을 할 것이고, 기독교 신자라면 100% 기독교 신자가 되어 수행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믿는 종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참 본성을 갖고 수행하는 것을 강조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곳을 찾는 이들의 종교를 전환시키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아주 넓습니다. 바다와 같아서 어떠한 물도 다 그곳에 갈 수 있습니다.”

처음 대봉 스님이 이곳에 왔던 10년 전에 비해 무상사의 모습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그동안 대봉 스님 내면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달라진 것 없습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오직 모를뿐이라는 질문으로 정진하고 있습니다. 외관상으로는 매우 큰 차이 있지만, 우리가 수행자로 갖는 질문은 10년 전과 지금이나 같습니다. 제가 11년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아무런 건물이 없어서 처음으로 종무소를 지었습니다. 종무소는 법당, 법당, 요사, 목욕탕 역할가지 함께 했습니다. 그때는 화장실이 없어서, 뒷산이 모두 화장실이었죠. 공양간도 없어서 직접 마을로 내려가서 식사를 해결하고 왔습니다. 이젠, 선방도 생기고 우리를 지켜주는 주지도 있고, 공양간 등 모든 것이 부족함 없는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수행은 옛날과 지금이 똑같습니다. 우리가 깨달음을 통해 중생을 구제해야 한다는 목표가 똑같듯이.”

무상사 선방의 특별함은 공안과 점검이 살아 있다는 것

무상사 선방의 ‘특별함’은 사실 수행자들의 눈 색깔이나, 재가-승가의 구분이 없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곳의 진짜 특별함은 한국의 일반 선방에서 사라진 ‘공안과 점검’이 있다는 점이다.

무상사 선방에서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조실 혹은 주지와의 인터뷰 시간이 있다. 화요일에는 주지 대진 스님이, 금요일에는 조실 대봉 스님이 직접 모든 수행자들과 인터뷰를 나눈다.

이곳에 처음 온 사람들은 우선 무심 스님과 인터뷰를 한다. 무심 스님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태어나기 전 어디에서 왔느냐. 부모님 만나기 전 어디에서 왔냐. 당신이 죽으면 어디로 가나. 당신 마음 언제부터 시작했나. 그 마음 누가 당신에게 그 마음을 주었나. 그 마음 얼마나 크나. 당신 죽으면 그 마음 어디로 가나.”

인터뷰를 당한 사람의 입에서 “오직 모를 ”뿐이라는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질문들이다.

대봉 스님은 “공안의 본래 목적은 그의 깨달음을 점검하고, 또한 공안을 통해 깨달음의 씨를 뿌려 그 사람이 더 잘 크도록 하기 위해 제시했지만 무상사에서는 공안을 또 다른 이유, 또 다른 방법으로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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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산선사의 가르침은 공안인터뷰 통해 지혜 얻도록 도와주는 것

“공안의 첫 번째 목적은 수행자가 바른 수행방향을 갖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모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인터뷰 중에 수행자들은 화를 내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자신의 업을, 그동안의 경험을 드러냅니다. 이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수많은 이유로 수행을 하는데, 어떤 이는 마음의 평화를 위해, 혹은 편안한 마음을 갖기 위한 이도 있고, 어떤 사람은 초능력을 갖기 위해 수행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간혹 좀 더 높은 참선 수준에 올라가면 하늘을 날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 이후는 무엇을 하겠냐’고 되묻습니다. 그러면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이처럼 공안 인터뷰는 수행의 다른 방법을 제시하기 위함입니다.

공안을 제시하는 두번째 이유는 우리의 지혜를 좀 더 증진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지혜는 책 속의 지식, 머릿속의 지식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바른 행동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지혜가 됩니다. 우리는 매순간 지혜롭게 행동하기 어렵습니다. 매순간 탐진치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공안 인터뷰 통해 지혜가 튀어나오도록 도와주는 것은 숭산 스님의 가르침입니다. 전세계 숭산 스님 제자들이 그 방법을 사용합니다. 이것이 선수행과 일상생활 만나도록 해주는 길입니다.”

대봉 스님은 이어 ‘해제’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자는 것, 또한 배고픈 자 있으면 음식 주고, 고통 받는 자 도움 주는 것. 그것이 결제의 의미입니다. 여러분 가슴 속에 나라는 것이 들어있으면 그 이후 결제와 해제는 또 다른 의미가 됩니다. 만약 여러분 마음 속 아무것도 짓지 않는다면 결제와 해제 같은 것입니다. 밥 먹을 때 오로지 밥을 먹을 것, 좌선할 때 오로지 좌선 할 것, 염불할 때 오로지 염불을 할 것 ,108배할 때 오로지 108배 할 것을 강조합니다. 항선(恒禪)하는 정신으로 지내면 온 정신이 맑아집니다. 맑은 정신을 여러 중생들에게 베푸는 것, 그것이 바로 결제와 해제하는 큰 의미입니다. 중생들에게 맑고 깨끗한 정신 제공하는 것입니다.”

대봉 스님에게 “숭산 스님의 전법계를 받았는데, 전법과 인가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스님은 “고무신도 흰색, 운동화도 흰색”이라는 짤막한 대답만 내놓은 채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